나의 이야기 576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4)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4) (용산교∼관방제, 2022년 5월 28일∼29일) 瓦也 정유순 나주시 교동의 나주향교에서 가까운 거리에 나주읍성 영금문이 있다. 사적(제337호)으로 지정된 나주읍성은 고려시대부터 축조되어 남북으로 약3.53㎞로 평지에 조성된 긴 타원형 형태의 규모로 쌓았다. 동쪽은 동점(東漸)문, 서쪽에 영금(映錦)문, 남쪽에 남고(南顧)문, 북쪽에 북망(北望)문을 두었다. 일제강점기 때 동서남북의 모든 성문과 성루가 철거된 후 대부분 민가가 들어섰고 밭으로 경작되었으나 1993년에 남고문, 2006년에 동점문이 복원되었다. 서성(西城)문으로도 불리는 영금문은 2007년 발굴조사결과 지하에 유적이 잘 남아 있어 제 모습을 찾아 2011년에 복원하였다. 밖으로는 돌로 쌓은 옹성이 둘러있고..

나의 이야기 2022.06.07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3)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3) (용산교∼관방제, 2022년 5월 28일∼29일) 瓦也 정유순 평사낙안(平沙落雁)! ‘모래밭에 와서 앉은 기러기나 글씨와 문장이 대단히 잘 써진 모습’을 표현할 때 쓰는 사자성어로 극락강과 황룡강 물길이 합류하여 흐르는 승촌보 일대의 넉넉한 경관을 비유한 말이지만, 미인을 은유적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남구 승촌동의 승촌보 공원에 내려앉은 기러기는 나주의 것이 아니어도 광주에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는 공원지역이 하중도로 광주 땅이 알박기식으로 나주 땅으로 파고들어 왔기 때문이다. 평사낙안은 원래 중국 소상팔경(瀟湘八景) 중 하나로 산시청람(山市晴嵐), 연사만종(煙寺晩鐘), 소상야우(瀟湘夜雨), 원포귀범(遠浦歸帆), 동정추월(洞庭秋月), 어촌낙조(漁村落照) 강천모설(江天暮..

나의 이야기 2022.06.06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2)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2) (용산교∼관방제, 2022년 5월 28일∼29일) 瓦也 정유순 우리는 가끔 ‘먹기 위해서 사는지? 살기 위해서 먹는지?’헷갈릴 때가 있다. 어찌했던 오전 내내 영산강 물길 따라 걸었더니 시장기가 전해와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모 흑두부집으로 이동한다. 주변과 조화를 이룬 한옥은 소나무로 조경을 하여 멋을 부렸으며, 들어가는 길은 맷돌을 깔아 징검다리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중국에서 모조품으로 들여온 병마용이 보초를 선다. 병마용(兵馬俑)은 중국 시안(西安) 진시황 무덤의 도제(陶製) 부장품이다. 병마용 옆에는 붉은 찔레꽃이 유난히 더 붉다. 혹시 장미인가 싶어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1940년대에 민중가요인 가사에 나오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이 동기가 되어 전..

나의 이야기 2022.06.03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1)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1) (용산교∼관방제, 2022년 5월 28일∼29일) 瓦也 정유순 이른 아침부터 영산강 용산지구습지생태공원은 뭇 생명들의 맥박이 고동 친다. 어제도 흘렀고 오늘도 흐르고 내일도 흘러야 할 강물이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들을 보듬으며 세월이 함께 흐른다. 지난 달 영산강 1차 답사를 마감할 때는 옆으로 누운 오후 햇살이었으나 오늘은 머리 위로 솟구치는 찬란한 아침 햇살이다. 둔치에 마련된 용산야구장에서도 젊은 선수들의 기가 넘쳐흐른다. 용산교를 건너면 광주광역시 북구 용강동이다. 용강동(龍江洞)은 북구의 북쪽 끝에 자리하며, 영산강 줄기가 지나는 우치면 지역으로서 굽이쳐 흐르는 강가라 하여 용강(龍江)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입암리(立岩里)와 신평리(新坪里)..

나의 이야기 2022.06.02

우리가 산다는 것

우리가 산다는 것 瓦也 정유순 태초에 조물주께서 이 지구상에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생물을 주관하실 때에 ‘먹을 수 있는 능력’과 ‘종을 보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따라서 그들은 생명을 유지하기위해 먹이를 확보하고, 생식(生殖)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모든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조건으로 우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던지 먹을 수 있도록 권리와 의무를 주었다. 그래서 식이위대(食而爲大)라 하였던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먹는 것이 가장 크고 위대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먹는 것이 가장 큰일이다. 또한 섭생을 잘 해야 종을 보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들의 움직일 수 있는 요인은 ‘먹는 것’..

나의 이야기 2022.06.01

지구는 왜 더워지는가?

지구는 왜 더워지는가? 瓦也 정유순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삼면이 바다이지만 중국대륙과 맞닿아 해양성기후 보다는 대륙의 영향을 받는 대륙성기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봄부터 여름이 오는 문턱까지는 비교적 비가 오지 않는 갈수기(渴水期)로 비가 오지 않아 농업용수(農業用水)는 물론 식수까지 위협받던 시절이 있었고, 여름이면 장마로 이어져 홍수가 되어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다. 즉 가뭄과 장마가 매년 되풀이되어 가뭄대책과 장마대책을 매년 세워야 했다. 가을에는 비가 비교적 적게 내리고 맑은 하늘이 계속되어 붉게 물든 단풍과 어울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로 풍요를 만끽하는 전형적인 우리의 가을을 간직할 수 있었다. 겨울이면 삼한사온(三寒四溫)이란 특성으로 삼일은 몹시 춥다가 사일은 그런대로 ..

나의 이야기 2022.05.26

선자령과 대관령 옛길을 거닐며

선자령과 대관령 옛길을 거닐며 (2022. 5. 14) 瓦也 정유순 대관령(大關嶺 832m)은 백두대간의 중심 고개로 이곳을 기준하여 동쪽은 영동(또는 관동) 서쪽은 영서(또는 관서)로 구분된다. 강릉을 비롯한 영동지방 사람들은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 대관령 길을 넘어 다녀야 했다. 오죽헌에서 태어난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도 어머니인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손을 잡고 함께 넘었을 것이고, 관동별곡을 쓴 송강 정철(松江 鄭澈)도 이 길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며, 당시 물류의 주역인 보부상(褓負商)들도 대관령 옛길을 넘나들며 발품을 팔았을 것이다. 고개의 총연장이 13㎞이고, 고개가 아흔아홉 굽이에 이른다. 고개 마루를 넘어 영동고속도로가 지났으나 2002년 11월 ..

나의 이야기 2022.05.23

다시 찾은 백령도(3)

다시 찾은 백령도(3) (2022년 5월 9일∼11일) 瓦也 정유순 오늘은 백령도에서 마지막 날이다. 인천으로 오후 1시 30분에 출발하는 여객선에 승선하기 위해서는 정오까지 모든 일정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다. 그래서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여 숨 가쁘게 심청각으로 올라간다. 심청각(沈淸閣)은 대표적인 전래소설인 심청전 중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몸을 던진 인당수와 심청이가 환생했다는 연봉바위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심청각을 건립하여 전통문화를 발굴, 계승함과 아울러 ‘효’사상을 함향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또한, 망향의 아픔을 가진 실향민에게 고향을 그리는 대책사업으로 심청이 환생장면 등을 전시하며, 심청전에 관련된 판소리, 영화대본, 고서 등이 전..

나의 이야기 2022.05.20

다시 찾은 백령도(2)

다시 찾은 백령도(2) (2022년 5월 9일∼11일) 瓦也 정유순 황해남도 옹진군에서 솟아오른 찬란한 일출에 조반을 챙기고 어제 걸음을 멈추었던 백령면 남포리 오군포로 내려가는 길목으로 이동하여 콩돌로를 따라 발걸음은 백령도의 남쪽해안 쪽으로 들어선다. 저 멀리 장촌포구가 미세먼지에 희미하지만 으름 꽃은 잎 사이에 얼굴을 감추며 수줍음을 탄다. 한국의 바나나로 불리는 으름은 모양도 바나나와 비슷하지만 색깔이 옅은 황토 빛이며 길이가 짧고 껍질을 까면 씨앗이 들어 있다. 으름은 항염(抗炎)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고개를 하나 넘으니 장촌포구길이 시작된다.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코스지만 차도를 따라 걷고, 고개 하나를 넘어 구불거리는 차도를 따라 오르막길을 걷는데, 멀리 콩돌해안 끝이 살짝 보..

나의 이야기 2022.05.19

다시 찾은 백령도(1)

다시 찾은 백령도(1) (2022년 5월 9일∼11일) 瓦也 정유순 2018년 11월 중순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을 닮은 백령도(白翎島)를 갔다 온 적이 있고, 이번에는 두 번째 방문이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인천항 연안부두에서 아침 8시 반에 출항하는 정기여객선이 정시에 뱃고동이 울렸고, 쾌속선은 방파제 밖으로 빠져나와 인천대교 밑을 지난다. 지난번과는 달리 바다의 숨결은 그지 없이 잔잔하다. 소청도와 대청도를 잠시 들렀다가 백령도 거의 4시간 넘게 용기포신항에 도착한다. 백령도에 처음 문이 열린 것은 기원전 1000년경인 고조선 시대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진촌리와 용기포 조개더미에서 인류의 생활 흔적(빗살무늬토기 등)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특별한 유적과 유물이 확인된 바..

나의 이야기 2022.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