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대청호 오백리 길(열 번째)

와야 세상걷기 2016. 6. 30. 21:31

대청호 오백리 길(열 번째)

(안터선사공원청마리, 2016629)

瓦也 정유순

   오뉴월 반딧불이 향연이 펼쳐지는 안터마을을 가로질러 콘크리트로 포장된 농로를 따라 마을 뒷산으로 올라간다. 완만한 경사 길로 올라가지만 딱딱한 포장도로는 사람이 걷기에는 조금 불편한 것 같다. 산의 녹음은 푸르다 못해 짙은 녹색으로 검어진다.


<안터선사공원청마리 지도>

   조금 때 이르다 싶은 코스모스가 바람도 잠든 공간에서 하늘거리고 어느 집 싸리문 앞의 돌기둥에는 인동초가 있는 힘을 다해 기어 올라간다.

<인동초>

   전설에 의하면 "어쩌다 임금님의 성은을 입은 소화라는 궁녀는 임금님 오시기만 기다리다가 상사병에 걸려 세상을 하직하고, 임금님 오고가시는 길목에 꽃으로 피어났다"는 능소화가 힘겹게 위로 기어 올라가며 예쁘게 꽃을 피운다.


능소화 연가(이해인 시)

 

이렇게

바람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지를 뻗은 그리움들이

자꾸 자꾸 올라갑니다

 

나를 다스릴 힘도

당신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

침묵 속에도 불타는

당신의 그 눈길 하나가

나에겐 기도입니다

전 생애를 건 사랑입니다.

 

   능소화는 바람 부는 날에는 옆에 가지 마라. 소화의 원한이 꽃가루로 변해 독이 있다는 속설이 있지만 바람에 날리는 풍매화(風媒花)가 아니고, 벌 나비 등 곤충에 의해 옮겨지는 충매화(蟲媒花)이기 때문에 걱정을 안 해도 된단다. 다만 잘못하여 눈에 들어가면 충혈 될 수 있으나 오히려 독 보다는 생리불순 등 혈액을 맑게 하는 약으로 쓰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능소화를 보는 순간 이해인의 능소화 연가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능소화>

  포장된 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갈수록 자귀나무가 무리지어 닭 벼슬 같은 꽃을 활짝 피운다. 콩과식물인 자귀나무는 낯에는 잎이 빗살처럼 떨어져 있지만 밤이 되면 떨어졌던 잎들이 서로 마주보며 접혀진다. 그래서 부부의 금실을 나타내는 합환수(合歡樹)라 하여 산과 들에서 자라는 나무를 부부침실 앞 정원에 많이 심는다고 한다. 그리고 나무를 깎아 다듬는 자귀의 손잡이로 사용하기 때문에 자귀나무라고 한다.


<자귀나무>

   약간 숨을 헐떡이며 다다른 고개는 감사고개라는 곳이다. ‘감사라는 지명인지 또는 어떤 사연이 있어 감사를 드려야 할 사연이 있는 고개인지 설명이 없어 좀 답답하지만, 지나가는 나그네가 두 다리 쭉 뻗고 쉴 수 있는 공간이라서 감사 드릴만 하다.


<감사고개>


   숲 터널을 지나면서 산딸기로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리며 산길을 걸어간다. 길옆의 애기닥나무(?)는 딸기 같은 빨간 열매로 유혹을 한다. 동행한 어느 도반께서는 구지뽕나무 같다고 하는데, 구지뽕나무는 910월에 열매가 익기 때문에 가능성은 낮은 것 같다. 하여튼 우리와 공존하며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식물들의 이름을 몰라 미안할 뿐이다.


<애기닥나무(?)>


   데크로 만든 전망대에 오르니 대청호로 유입되는 금강이 산 아래 멀리 보인다. 유유히 흐르는 저 강은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을 어루만지며 역사와 애환을 간직한 채 오늘도 말이 없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강은 생명의 강이고 우리가 영원히 지켜야 할 생명의 원천이다.


<대청호로 유입 되는 금강>

   여러 가지 모든 여건으로 보아 오지로 밖에 볼 수 없는 생명강전원마을에는 생명강교회가 자리하고 있어서 생명의 진리를 전도하는 가 보다. 교회를 지나 피실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돌아 동이면 청마리로 방향을 잡는다. 비포장 길은 역시 땅의 포근함을 즉시 몸으로 전달해 준다.


<생명강 교회>


<생명강 전원마을 표지>

  발걸음이 가벼워서 그런지 숲속에 홀로 키를 세우며 꽃을 피운 하늘말나리가 보이는데 군초일화(群草一花)이다. 목이 긴 꽃대 밑에 612개의 잎이 치마를 두른 것처럼 받쳐주고 있어 일명 우산말나리라고도 하고, 이 꽃의 꽃말이 순수 순결을 나타내는데 갑자기 윤동주의 서시가 생각난다.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하 생략)


<하늘말나리>

  구름은 산 위로 또 하나의 산 그림자를 만들고 깊은 계곡 숲에는 칡넝쿨이 촘촘한 그물을 만들어 다른 나무들을 옥죈다. 어떤 사회이건 어느 하나가 우월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칡넝쿨이 다른 나무들의 서식지를 파괴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말티재 고개를 넘는다.


<숲을 점령한 칡넝쿨>

  청마리로 내려오는 길목도 칡넝쿨이 고개를 길게 뻗어 올가미처럼 발목을 휘 감으려 한다. 밑으로 내려올수록 개망초가 무리를 이룬다. 번식력이 강해 어느 곳이던 무리를 이루는 개망초는 농사를 짓다 묵인 밭에 더 빨리 자리를 잡는다. ‘화해라는 꽃말도 아무 곳이나 적응하는 습성 때문에 붙여진 것 같다.


<개망초>


  개망초 길을 따라 내려온 마을은 오늘의 종점 청마리말티이다. 마을 유래를 자세하게 새긴 비석이 우뚝하다. 돌무더미를 크게 만들고 이승복반공기념비가 있는 소공원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폐교된 청마리아자학교운동장 양쪽에는 플라타너스나무가 교정을 지키고, 옛 교실에는 옥천옻문화단지 옻배움터간판이 걸려 있다. 플라타너스나무 그늘 아래 우리는 옥천이 낳은 향토시인 정지용의 시 향수를 읊어보며 잠시 낭만에 젖어본다.


<돌무더미>


<플라타너스 나무>


<향수 열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