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섬진강 530리를 걷다(두 번째)

와야 세상걷기 2016. 3. 1. 12:13

섬진강 530리를 걷다(두 번째)

(옥정호남원대강면, 2016. 2. 272. 28)

瓦也 정유순

   섬진강은 데미샘에서 시작하여 남으로 힘차게 흘러 임실 사선대를 지날 때는 오원천(烏院川)이 되어 옥정호(玉井湖)로 들어온다. 옥정호는 1925년 일제 때 쌀 수탈을 목적으로 호남의 곡창지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운암댐을 건설하여 물길이 정읍의 동진강으로 돌려졌고, 1965년 섬진강다목적댐으로 확대 건설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 댐으로 생긴 거대한 인공호수(총저수량은 43천만 톤)가 되어 호남평야를 적시는 중요한 수자원(水資源)이 되었다 


  이 때 물속에 잠긴 산은 붕어섬(일명 외얏날)이 되었고, 물안개에 쌓인 자태는 계절마다 달라져 사진 찍는 사람들을 많이 끌어 모은다.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국사봉 전망대가 나오나 우린 올라가지 않았고 비교적 잘 보이는 국사봉 아래 길옆에서 안개에 쌓인 붕어섬을 감상한다. 그리고 호수주변으로는 물안개길(13km)’2012년에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흐르던 물길이 섬진강 댐에 의해 물길이 바뀌고 아래로 가야할 물이 줄어들어 일부 구간에서는 하천을 유지하기 힘들 때도 있어 댐 문을 열어 수량을 늘려 달라고 한다. 물이 부족한 하류에서는 오죽하면 섬진강발원지는 데미샘이 아니고 섬진강 댐이라고 할까? 최근에도 해당 시장과 군수들은 하루에 8만여 톤 방류하는 양을 30만 톤 이상을 흘러 보내달라고 댐을 운영하는 기관에 건의 했다고 한다. 물도 제 갈 길로 가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흐르면 문제가 되는데, 자연은 참으로 위대한 반면교사이고 우리들의 스승이다.


   섬진강휴게소가 있는 임실군 강진면으로 가는 삼거리를 지나 강변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면 덕치면사무소가 나오고, 우체국 앞에는 회문산 망루가 해방 후 근대사의 격변기 질곡의 역사를 안은 채 마을을 지킨다. 강 건너 물우리 마을은 비가 오면 내를 건너지 못해 근심만 쌓인다 하고, 섶다리 같은 잠수교를 건너 달빛이 파도를 타는 월파정(月波亭) 앞에서 숨을 고르고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진메마을로 간다.


   마을 입구에는 팽나무가 마을을 지키는데 시인의 서재에 걸렸던 관란헌(觀瀾軒)’이란 현판도 용도가 다 되었는지 한쪽 구석에 박혀있고, 주인도 보이지 않지만 흐르는 강물은 소리 없이 여울을 이룬다. 인간의 의도적인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섬진강은 그냥 바라만 봐도 마음이 포근하다. 마을 뒷산에는 남부군사령부가 있었던 회문산이 딱 버틴다


    내 발은 강 따라 바르게 걸어가는 것 같지만 지나온 자국은 뱀 같이 꼬불꼬불한 내 인생의 행적(行蹟) 같다. 강변길에는 김용택의 시비가 곳곳에 서 있어 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천담마을 지나 구담마을 가는 길엔 철 이른 매화가 활짝 웃으며 반겨주고 닥나무를 삶아 한지(韓紙)를 만들던 가마는 잡초에 휘감겨 잠을 잔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촬영한 당산나무들은 섬진강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굽어본다.





   넘어질듯 아슬아슬하게 징검다리 건너며 들어선 순창군 동계면 장군목마을에는 인적이 끊겨 폭삭 주저앉은 집이 터를 지키고, 낮은 언덕을 넘어 다리 밑 강 가운데 바위틈에 요강바위가 입을 딱 벌린다. 저렇게 깊게 파인 바위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흐르는 물과 씨름 했을까? 깊은 주름살처럼 패인 바위들이 요강바위 주변에 넓게 펼쳐진다.


   임실군에서는 오원천으로 불리다가 순창군부터 섬진강은 적성강(赤城江)으로 이름이 바뀐다. 그리고 강 건너가 적성면이다. 석산리 쪽으로 내려오니 큰 바위에 石門(석문)’이란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조선 현종(재위 16591674) 때 양운거(楊雲擧)라는 선비가 흉년이 들 때마다 이웃을 도와주어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임금이 관직을 하사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풍류를 즐기며 여생을 보낸 종호정(鐘湖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고 石門(석문)’이란 큰 글씨만 바위에 남아 있다. 징검다리로 강을 건너 섬진강마실휴양숙박시설단지 앞에서 첫날을 마감한다


    덤으로 숙소가 있는 회문산 고추장 익는 마을로 가는 길에 임실 덕치면에 있는 사곡리 남근석을 둘러본다. 이곳 지형이 여근곡(女根谷)을 닮아 재앙을 막고자 남근석(男根石)을 세웠는데, 경지정리(耕地整理) 할 때 훼손된 것을 수습하여 다시 마을입구에 세웠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이치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회문산 중턱에 있는 고추장 익는 마을에서 꿈도 익혀 가며 아침을 맞이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항아리로 웃음 형상을 만들어 놓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미소 짓게 만드는데, 가파르게 경사진 길을 바삐 오르내리기에는 숨이 차다.


   조반을 마치고 순창군 동계면으로 이동하여 봄비가 안개처럼 내리는 구암정으로 간다. 구암정(龜巖亭)은 아름다운 여울이 머물다 가는 만수탄(萬壽灘) 적성강변에 있는 정자로, 연산군 때 순창 출신 선비인 구암 양배(龜巖 楊培)가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와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로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고, 순창에 낙향하여 동생 양돈(楊墩)과 함께 낚시를 하며 세상의 시름을 잊고자 하였던 곳이라 한다. 그리고 남원양씨(南原楊氏)600년 터전인 무량산(無量山 586m)이 우뚝하다.


   풍수지리에는 문외한이지만 나오며 뒤돌아본 구암정이 있는 마을은 무량산은 배산(背山)이요, 적성강은 임수(臨水), 천지간의 기막힌 조화를 받아들이는 느낌을 받는다. 궂은비 내리는 섬진강 자전거 길을 따라 강 건너에 이르니 강경마을이라는 자연석 표지가 분위기를 압도한다. 길옆에는 거북바위 전설나무매 설화이야기 등 남원양씨의 세거지(世居地)가 된 전설들이 줄지어 서있다.


   하류로 내려올수록 보()가 있어 수량이 많아지고 흐르는 여울소리도 잦아진다. 내리는 비를 어떻게 하면 덜 맞을까 잔머리 굴리며 무심코 걸어가는데 한걸음 앞서 가던 도반께서 강 위의 작은 바위를 손으로 가리킨다. 처다 보는 순간 바위의 형상이 두꺼비다. 섬진강의 섬자가 두꺼비 섬()자인데 두꺼비 한 쌍이 비오는 봄날에 사랑을 나누는 형국으로 바라보는 마음은 엄청난 횡재를 한 기분이다.


   내월교()를 지나 하류 쪽으로 내려가면 상수원보호구역이 나오고 물을 가둬 놓은 보() 가운데에는 물고기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어도(魚道)를 꾸밈새 있게 만들어 놓았다. 강둑 옆 보리밭으로 뛰어들어 옛날 보리밭 밟기 하듯 자근자근 밟아보지만 질퍽한 흙만 발바닥에 달라붙는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버들강아지는 꽃술을 터트리고 발길은 어은정에 당도한다


   어은정(漁隱亭)은 구암 양배의 증손인 어은 양사형(漁隱 楊士衡, 15471599)이 친구들과 시주(時酒)를 즐기던 곳으로, 선조 때 영광군수 등 벼슬을 지냈고,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되었다고 한다. 주변에는 신주를 모시는 사당과 강진김씨(康津金氏)의 열녀정려(烈女旌閭)가 있다.


   빗방울이 멈추고 강바람 타고 올라오는 봄바람은 옷자락을 살랑거린다. 섬진강 하류로 조금 더 내려가면 임실군 오수에서 흘러 들어오는 오수천과 만난다. 본류인 섬진강은 댐에 막히고 보에 물의 흐름이 끊기는데 지천인 오수천은 막힘이 없이 힘차게 본류로 진입한다. 강둑을 따라 자전거 길도 마련되어 있지만 간간이 교량과 도로가 걸음의 리듬을 흩트려 놓는다.


   오수천과 만나는 합수지점 위로 뻗은 우평교 교각 밑으로 머리를 숙이며 지나온 강둑길은 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봄의 교향악이다. 파릇파릇 냉이가 솟고 쑥은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강변의 어느 아담한 집에는 벽난로용 장작을 조형미술처럼 가지런하게 쌓아 놓았다. 강둑의 소나무는 너울너울 춤을 추고 지북사거리 부근에 있는 모 매운탕 집 옆으로 지나는 잠수교의 물 흐름소리는 봄의 소리 왈츠다.


   향가유원지 인근에서 섬진강의 진미 메기매운탕으로 점심을 하고 향가터널을 지나 오전의 끝점인 상류로 올라 가다가 순창읍에서 흘러나오는 경천과의 합류지점에서 약간의 혼선이 오는 것 같다. 가로질러 가는 여울목 징검다리가 물이 차서 건너 갈 수가 없다. 그래서 향가터널로 다시 와서 하류로 방향을 잡는데, 왜정 때 강제로 동원된 사람들의 피맺힌 절규가 동굴을 통해 들려오는 것 같다.


   향가터널은 풍산면의 옥출산을 뚫어 만든 터널로 일제강점기 때 이 지방과 인근의 남원 담양 일대의 쌀을 수탈하기 위해 철로를 가설하다가 1945년 해방과 함께 철로가설이 중단되어 터널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철교를 놓기 위해 세워 논 교각이 방치되어 있다가 그 위에 나무로 자전거다리를 만들어 쉽게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중간에는 섬진강을 조망할 수 있는 유리바닥의 스카이워크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을 유혹한다. 향가목교를 건너자마자 남원시 대강면이다.


   오후로 접어들수록 강바람은 더욱 쌔진다. 옷깃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 끝도 분명 겨울 칼바람이 아니고 무언가 생명의 싹을 틔울 수 있는 포근한 바람이다. 강폭이 넓어지는 곳은 전남 곡성군 옥과에서 흘러드는 옥과천과 합수(合水)되는 곳이다. 그리고 강 건너에는 곡성의 입면농공단지와 우리나라 굴지의 타이어공장이 크게 보인다. 좌측으로 대강면 방산리 마을이 보여 그 마을을 가로질러 나갈 때 굵은 빗방울이 우두둑 떨어진다. 휴대폰에서는 중부지방 이북에 대설(大雪)이 내린다는 급한 소식이 온다. 가는 길에 많은 눈이 내려 역시 집으로 가는 길은 어느 날보다 무척 더디고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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