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함백산(咸白山)의 겨울

와야 정유순 2020. 1. 14. 19:55

함백산(咸白山)의 겨울

(2020111)

瓦也 정유순

   일제강점기 때 양질의 석탄을 수탈하기 위해 개발한 탄광을 많이 거느렸던 함백산을 오르기 위해 만항재로 이동한다. 만항(晩項)재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과 태백시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고개로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1,573m) 줄기가 태백산(1,567m)으로 흘러내려 가다가 잠시 숨을 고르는 곳이다. 이 고개는 해발 1,330m로 포장도로가 놓인 우리나라 고개 중 지리산 정령치(1,172m)나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선인 운두령(1,089m)보다도 높아 가장 높은 곳이다.

<백두대간 만항재 탐방로 표지석>


   만항재의 명칭은 고개 아래에 일제강점기부터 탄광 개발이 시작된 만항(晩項)마을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야생화 군락지로 손꼽힌다. 곧게 뻗은 소나무 숲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들은 계절에 따라 피고 지며 만항재의 운치를 더한다. 가을에는 형형색색의 채색(彩色)된 단풍들이 하늘을 수()놓고, 겨울이면 상고대 등 설경(雪景)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러나 기대했던 지금의 겨울 풍경은 기후변화 영향으로 눈이 많이 오지 않았고, 푸근한 날씨 때문에 적설량이 적다.

<만항재에서 함백산으로>


   길을 화려하게 빛내줄 야생화 대신 밟으면 뽀드득 소리내는 눈길을 걸으며 당도한 곳은 함백산 기원단이다. 태백산 천제단(天帝壇)은 국가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왕이 천제를 지내는 민족의 성지(聖地)였고, 이곳 함백산 기원단(祈願壇)은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빌던 민간신앙의 성지였다. 더욱이 함백산 일대에 탄광이 개발되면서 막장에서 근무하던 광부들이 지반 붕괴사고 등으로 목숨을 잃게 되자 가족들이 이곳에 찾아와 무사안일을 위해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드리던 곳이었다.

<함백산 기원단>


   걸을수록 함백산 정상은 점점 가깝게 보인다. 정상부 입구에는 <태백산국립공원> 푯말이 붙은 돌기둥이 양쪽에 서 있다. 19895월 강원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던 태백산(太白山) 20168월부터 우리나라 22번째 국립공원으로 될 때, 함백산도 국립공원 지역으로 편입되었다. 태백산국립공원 지역에는 천제단과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 등이 있으며, 야생화 군락지인 금대봉대덕산 구간, 태백산 주변의 주목 군락지, 세계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인 백천계곡 등 다양하다.

<함백산 정상 입구>


   멀리서 볼 때는 큰 곡선을 그린 완만한 경사의 포근한 산 같이 보였지만 정상으로 가까워질수록 숨은 더 가빠진다. 정상에 거의 다다를 무렵 오던길을 뒤돌아보니 함백산 동남쪽 자락에 태백국가대표선수촌(太白國家代表選手村)이 발밑이다. 이 선수촌은 스포츠 국가대표 선수의 훈련을 위해 19986월에 건립된 합숙 시설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1,330m)에 있는 훈련장으로 선수들의 심폐기능, 지구력, 경기력 향상에 효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훈련장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이 장관이라고 한다.

<태백국가대표 선수촌>

<중함백에서 본 함백산>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함백산 정상 바위에는 정초의 휴일을 맞아 찾아온 사람들로 무척 붐빈다. 정상의 돌탑에 올해 소원도 빌어볼 양이었지만 밀려오는 사람들로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순간의 공백을 이용하여 정상에 올라왔다는 흔적만 남기고 내려온다. <산경표(山經表)><태백의 지명유래> 등에는 묘범산(妙梵山묘고산(妙高山) 등으로 표기(表記)되어 있으나,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조선지형도>에는 함백산이라고 적혀 있다. 지하에는 무진장의 석탄을 저장하고 있다.  

<함백산 정상의 바위>

<함백산 정상>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는 용어는 고려 때부터 사용된 것으로 기록에 나오고 있으나 1770년경 조선 후기의 실학자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그의 저서 <산경표(山經表)>에서 체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금강산·오대산·태백산·함백산·소백산·덕유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우리 국토의 척추이자 4대강을 포함한 많은 강의 발원지로 이곳에서 수많은 생명이 태동하고 이어져 왔다. 따라서 자연환경과 생물들이 어우러지는 하나의 거대한 자연생태계의 보고(寶庫).

<백두대간 지도>


   함백산 정상에서 내려와 헬기장을 지나 한참을 능선을 내려가다 보면 앞에 높다란 중함백(1,505m) 봉우리가 나온다. 아마 중함백이란 표시는 함백산 봉우리 중 두 번째 높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함백산 능선에는 주목이 반겨준다, 주목은 높은 산, 숲속에 자라는 키 큰 침엽수로 가지는 넓게 퍼지고 굵은 가지와 줄기가 붉은빛을 띠기 때문에 주목(朱木)이라고 부른다.

<중함백>


   하산길 적조암삼거리에 내려서면 적조암 입구와 정암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시간이 늦어 들르지 못한 적조암은 동학 2대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1827~1898)18721015일부터 125일까지 49일간 특별기도를 드린 곳이다, 당시 최시형은 적조암에서 강수, 유인상, 전성문, 김해성 등 동학의 지도자들을 대동하고 특별기도를 드렸는데 이 특별기도로 진주민란 주모자인 동학교도 이필제(李弼濟)의 난으로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된 동학이 다시 일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적조암 터-네이버캡쳐>


   이 갈림길 이정표에는 <자장율사 순례길>이란 표시가 있다. 201968일에 개통된 이 길은 정선군 고한읍 정암사(淨巖寺)에서 만항(晩項)마을로 이어지는 총 4.2km의 자연친화적 생태탐방로다. 자장율사 순례길은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기다렸지만 남루한 모습으로 나타난 문수보살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낙담하여 함백산 깊은 곳에서 열반에 든 자장율사(慈藏律師)의 순례와 입적의 발자취를 기리며 조성되었다. 자장율사의 번뇌를 따라 걸어온 길의 끝에는 수마노탑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이 기다린다.

<자장율사 순례길 표지목>


   정암사 적멸보궁 뒤 산비탈에 세워진 수마노탑(水瑪瑙塔)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여 조성한 7층의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마노석(瑪瑙石)으로 만든 탑이라 하여 마노탑이라 하고, 마노 앞의 수() 자는 자장의 불심에 감화된 서해 용왕이 물길을 따라 이곳까지 무사히 실어다 주었기에 덧붙여졌다. 탑신(塔身)은 회녹색을 띤 석회암이다. 표면을 정교하게 정돈하여 벽돌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수마노탑은 5대 적멸보궁 가운데 유일한 모전석탑이다.

<수마노탑 전경>


   1층 몸돌의 남쪽 면에는 감실(龕室)을 마련했으며, 1장의 돌을 세워 문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는 철로 만든 문고리를 달았다. 화강암으로 6단의 기단(基壇)을 쌓고 탑신부를 받치기 위해 2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은 추녀 너비가 짧고 추녀 끝에서 살짝 들려있으며, 풍경이 달려 있다. 1972년 이 탑을 해체·복원할 때 탑의 내부에서 사리 및 관련 기록이 발견되었다. 꼭대기의 머리에는 청동으로 만든 장식을 올렸다. 사적기(史蹟記)에 신라 자장율사가 처음 세웠다고 하나, 고려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수마노탑>


   정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다. 자장(慈藏)636(선덕여왕 5)에 당()나라에 들어가 문수도량(文殊道場)인 산시성[山西省] 운제사(雲際寺)에서 21일 동안 치성을 올려 문수보살을 친견(親見)하고, 석가의 신보(神寶)를 얻어 귀국한 후 전국 각지 5곳에 이를 나누어 모셨는데, 그중 한 곳이 이 절이다. 신보는 석가의 정골사리(頂骨舍利)와 가사·염주 등인데, 지금도 사찰 뒤편의 수마노탑에 봉안되었으며, 법당인 적멸보궁(寂滅寶宮)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았다.

<정암사 전경>

<태백산정암사 일주문>


   만항재에서 출발하여 함백산 정상에 올라 백두대간의 정기를 가슴에 안고 중함백을 거쳐 자장율사순례길 따라 정암사로 내려오는 길은 조금은 지루하면서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신을 생각하게 하는수도(修道)의 길이었다. 얼음을 녹이며 흐르는 물소리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모든 소리가 머금었다 어우러져 울려 나오는 함성(含聲) 같다. 맑은 물에 세속에 찌든 마음을 씻어내고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세상의 모든 미움을 날려 보낸다. 천연기념물(73)로 지정된 정암사 열목어(熱目魚)도 긴 겨울잠에 빠져있다.

<정암사 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