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진주(晉州)라 천리길(2)

와야 정유순 2019. 10. 17. 13:43

진주(晉州)라 천리길(2)

(20191056)

瓦也 정유순

   땅거미가 질 무렵 어둠을 뚫고 일어서는 빛! 남강에 띄워 놓은 각종 조형물에서 진주의 생명이 꿈틀댄다. 1592년 진주성대첩의 함성이 남강에 불빛이 되어 피어오른다. 2차 전투 때 순절한 7만의 백성과 군사들의 혼령들이 진주의 밤하늘을 수놓는다. 바로 진주남강유등축제다. 이 축제는 2000년부터 이어진 것으로, 원래 진주에서 진행되는 <개천예술제>의 특별 행사로 다양한 등()을 전시하는 것부터 시작했다가 점점 규모가 커져 독자적인 축제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

<진주성 촉석루>

<남강의 용등>


  진주 남강에다 등을 띄우는 행사의 기원은 임진왜란이다. 촉석루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진주성 앞의 칠흑같이 어두운 남강에 유등을 띄워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 전술로 활용했으며, 동시에 성 밖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기도 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축제는 매년 10월 첫째 주에 10여 일 동안 열린다. 그러니까 오늘(105)이 축제의 절정이다. 남미의 페루에서 온 거리의 악사들도 그들의 민속 복장과 악기로 연주하고 춤을 추면서 흥을 돋군다.

<남강의 저녁>

<페루의 민속 춤>


   진주교를 건너 남쪽 남강 변으로 간다. 1927년에 건설된 진주교(晉州橋)는 중앙동과 칠암동을 연결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교통량이 많은 다리다. 칠암동 방면에서 진주교를 건너오면 진주 시내 중심부와 촉석루가 있는 진주공원과 각종 중심업무 기능들이 집중되어 있다. 진주교에는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할 때 낀 반지를 상징하는 황동반지가 교각 밑을 감싸고 있다. 심청이는 연꽃으로 환생했고, 논개는 황동반지로 환생하는 듯하다.

<진주교>


   저녁 식사 후 유등축제가 열리는 남강 변을 거닌다. 남쪽 둔치에는 소망 등 터널이 온 세상을 다 밝히듯 찬란하다. 매일 오후 1시부터 11시까지 소망 등 달기 체험이 진행된다. 오색영롱한 등에 소망을 매달아 걸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념이 더 생길 것 같다. 설령 소망 등을 직접 달지 않더라도 이 터널을 통과하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머리를 스친다.

<소망등터널>

<남강의 용등>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은 더 발한다. 소망 등 터널 앞 부교(浮橋) 옆에서는 유등(流燈) 띄우기가 한창이다. 매달려 있는 소망 등 체험보다 직접 등을 만들어 소망과 함께 남강에 띄워 보내는 체험으로 직접 강에 띄울 수 있는 것이 더 재미있는 체험 같다. 오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이어진다. 이 밖에도 진주성 촉석루 앞에서는 한복 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남강 부교>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진주시 남북을 연결하는 천수교(千壽橋)를 건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는 폭죽이 터진다. 오늘 행사의 절정인 것 같다. 펑펑 터지는 불꽃들도 누구 가의 소원을 담고 하늘로 솟아오르다가 타이밍에 맞춰 터지겠지? 꼬리를 흔들며 하늘로 솟다가 사방으로 퍼지며 폭발하기도 하고, 여러 개의 점을 찍다가 연속하여 시간 차이를 두고 터지면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발길을 멈춘 관람객들의 함성이 밤하늘을 꽉 채운다.

<유등축제 불꽃놀이>

<남강의 코끼리 등>


   나불천(羅佛川)이 남강과 합류에 있는 음악 분수대를 뒤로하고 숙소를 향해 이동한다. 시내를 벗어나 사위가 깜깜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해보니 진주시 대평면 내촌리에 있는 진양(晉陽湖) 주변의 농촌체험마을이다. 진주남강유등축제로 진주 시내에 있는 숙박 시설들이 동티가 나 예약이 어려워 겨우 이곳까지 왔다는 이야기다.

<대평면 내촌리 전경>

<진양호>


   고향 밥상 같은 조반을 마치고 진주시 평거동 자동차운전학원 앞에 도착한다. 바로 남강댐 바로 밑이다. 댐 아래로 조성된 진주남강습지원은 진주의 숨은 명소로 진주 현지인도 아는 사람만 아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진주시 평거동에 위치한 습지원의 자전거도로와 함께 조성된 징검다리는 어릴 적 추억으로 한발 한발 디디며 떠나는 아름다운 추억여행이다. 습지원의 끝 지점 남강댐에는진주시 어린이교통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남강 습지원>


   남강댐의 두 개의 수문에서는 문을 활짝 열고 하류로 물을 내뿜는다. 아마 남강 유등축제 기간에 하천 유지용수 확보를 위한 것 같다. 남강댐은 19624월에 착공하여 19707월에 완공했으며, 길이 977m, 높이 21m. 원래 이 댐은 일제강점기인 19201930년대에 실시한 낙동강개수계획(改修計劃)과 남강 홍수조절을 위한 단일 목적으로 1939년에 착공하였으나 방수로에 토석 약 200을 굴착 하고 중단되었다. 그 후 1949년에 재착공하였으나 댐코어 시공 도중 또다시 중단된 바 있다.

<남강댐 수문>

<남강댐>


   남강댐의 구축으로 조성된 진양호(晉陽湖)는 진주시 판문동(板門洞귀곡동(貴谷洞), 대평면(大坪面내동면 및 사천시 곤명면(昆明面)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다. 면적 29.4, 유역면적 2,285, 저수량 31000t이고, 12600 kW의 전력을 얻게 되었다. 홍수조절과 주변 일대의 상수도·관개용수·공업용수 등으로 이용되며, 물이 맑고 주변 경관이 좋아 진주시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주변에 선착장과 물홍보전시관·동물원·어린이동산 등의 위락시설이 있다.

<진양호와 남강댐>


   남강댐 위의 주차장까지 올라가서 칠봉산으로 기어오른다.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에 있는 칠봉산(七峰山, 141m)은 진양호 밑 남강 변에 벼랑이 병풍처럼 에워싸는 작은 봉우리가 일곱 개라서 칠봉산이라 부른다. 산등성이를 따라 소나무 숲속을 걸으면서 남강과 진양호 그리고 진주시가지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고, 등산과 더불어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칠봉산 입구>


   삼계리(三溪里)는 삼계마을에서 유래하였는데 약 200여 년 전에 태안박씨(泰安朴氏)가 정착하면서 서쪽으로 덕천강, 북쪽으로 경호강, 남쪽으로 유수천이 흘러 세 강이 합친 곳이라 하여 삼계(三溪)라고 불렀다 한다. 삼계리는 서쪽으로 진양호에 접하면서 가화천이 사천만 방향으로 흐르고, 북쪽으로는 남강댐과 남강에 접하고 있다. 남강에 접한 지역은 칠봉산 등 해발 고도 100m 내외의 산지이나 강변에서 급경사를 이뤄 절벽이다. 남강댐 건설에 따라 삼계마을 일부가 수몰되어 삼계이주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진양호와 평거동>


   숨이 막 차오르려고 할 때 산마루에 올라선다. 숲길 옆이 빼꼼하게 열린 사이로 진양호 제1 수문과 댐 둑이 한눈에 보인다. 진양호는 경호강과 덕천강이 합수하여 이루어진다. 경호강(鏡湖江)은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강정에서 진주의 진양호까지 80여 리(32)의 물길이다. 국가 하천인 남강의 상류부이며, 함양군 남덕유산(南德裕山, 1,507m)에서 발원하여 남류 하면서 지류인 덕천강(德川江)을 합하여 진양호를 이룬다. 경호강은 유속이 빠르면서도 소용돌이치는 급류가 거의 없어 래프팅 장소로 인기가 많다.

<남강댐과 진양호>


   덕천강은 지리산(智異山, 1915m)에서 발원하여 서남부 경남지역인 하동·산청·진주·사천 지역을 휘돌아 남강에 유입하기 때문에 이 지역 주민들에게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제공해 주는 젖줄이다. 현재는 국가 하천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질 등급은 1등급으로 상당히 깨끗한 편이다. 주변에는 덕천서원 등 남명 조식(南溟 曺植) 관련 유적과 겁외사(劫外寺) 등 성철스님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고, 문익점 면화시배지 등이 있다.

<댐 아래의 남강>


   칠봉산 북쪽으로는 남강이 유유히 흐른다면, 남쪽으로는 국도 제2호선이 호남과 영남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소통공간이다. 국도 2호선은 신안부산선이라고도 한다. 서해안 남부 도서 지역인 신안군을 기점으로 전라남도 남해안 지역과 경상남도 남해안 지역을 동서로 관통하여 부산광역시 중구까지 뻗어있는 도로다. 원래 기점이 국도 제1호선(목포신의주)의 기점인 목포시와 동일하였으나 압해대교가 개통되면서 신안군까지 연장되었다.

<칠봉산 정상>


   몇 개의 봉우리를 넘었는지 모르게 산마루를 조용히 걸으며 지금까지 내가 걸어왔던 발걸음들을 회상해 본다. 작은 돌로 정성껏 쌓아 올린 작은 돌탑처럼 내 발걸음도 곧고 바르게 걸어왔다고 자신해왔으나, 지나온 족적(足跡)들을 추적해보니 실타래처럼 심한 곡선을 그리며 꼬인다. 세상사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길이 아닌 길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길 따라 봉우리 같지 않은 봉우리를 몇 개 넘으니 칠봉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사각정(四角亭)과 체육기구 등이 설치되어있다.


<칠봉산 돌탑>


   칠봉산 정상에서 내동면 독산리 내동초등학교 쪽으로 내려와 다시진주 에나길 2코스인 망진산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진양호와 면해 있고, 남강의 남쪽에 위치하는 내동면(奈洞面)에는 광주 송정리에서 밀양의 삼량진까지 연결되는 경전선(慶全線) 철도가 지난다. 그리고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가 남북으로 이어진다. 내동면사무소가 있는 독산리(篤山里)는 해발 1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남북 방향으로 이어지면서 남강에 이르고 있으며, 그 사이에 계곡 선을 따라 경지가 분포되어 있다.

<내동면 독산리>


   피라칸타 열매가 가을빛 붉게 물들이는 내동초등학교 앞으로 하여 망진산(望晋山 또는 網鎭山, 178m)에 오르면 진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산 이름이 望晋山(망진산)이다. 한편으로는 진주의 주산인 비봉산은 봉황이 양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려는 지세로 동쪽 날개는 말티고개를 지나 선학산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두고개와 당산재로 뻗어있다. 이런 수호신과 같은 봉황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곳곳에 비보(裨補)를 설치했는데, 그중 하나가 비봉산 남쪽의 산에 그물을 쳤다는 뜻의 網鎭山(망진산)이다.

<망진산에서 본 진주시와 남강>


   이 밖에도 봉황이 까치를 보면 날지 않는다는 전설에 따라 들판 이름을 까치 작자를 써서 작평(鵲坪), 새장에 가두어 두려는 의미에서 대롱사(大籠寺)와 소롱사(小籠寺)를 지었고, 봉황을 먹이로 유인하기 위해 대나무를 심었으며, 놀이터로 오동나무를 심었다. 남강을 따라 대나무 숲이 형성되어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또한 알 자리가 있으면 날아간 봉황도 다시 돌아온다는 전설에 따라 봉란대(鳳卵臺)도 만들었다고 한다.

<망진산 정상>


  망진산에 있는 봉수대(烽燧臺)1895(고종 32) 폐지 전까지 수 백년 동안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통신수단 기능을 가져 민중의 소리를 나타내기도 했다. 19968월 폐지된 지 1백여 년 만에 진주시민의 힘으로 '망진봉수' 로 복원되어 현재 첨단통신 시설 중계탑인 진주 MBC의 망진산 송신소와 진주 KBS의 망진산 중계소가 설치돼 있다. 이 봉수대 복원은 통일의 염원으로 백두산·한라산·지리산·독도·진주의 월아산 돌을 모아 기단에 두었고, 금강산 돌은 통일되는 날 두기로 하였다.

<망진산 봉수대>


   12일 진주에 머무르면서 꼭 맛을 봐야 할 음식이 진주냉면이다. <동국세시기(1849)>에 언급되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냉면이며, 조선 시대의 진주지역의 양반가와 기방(妓房)에서 한량들이 기생들과 어울려 질펀하게 술판을 벌인 후 선주후면(先酒後麵)의 식사법에 따라 입가심으로 즐겨 먹던 고급 음식이었다. 죽방 멸치와 바지락 등으로 육수를 만든 진주냉면 한 그릇으로 늦은 점심을 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한껏 경쾌했다.

 <진주냉면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