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알프스 칠갑산
(2015년 12월 5일)
瓦也 정유순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노래로 더 유명한 칠갑산(561m)은 충청남도의 중앙에 위치하여 동쪽이 두솔성지(자비성)와 도림사지, 남쪽의 금강사지와 천정대, 남서쪽의 정혜사, 서쪽의 장곡사가 연계된 백제인의 얼이 담긴 사적지로, 1973년 3월에 충청남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그리고 백제 때에는 이 산을 사비성(지금의 부여)의 진산(鎭山)으로 성스럽게 여겨 칠갑산을 향해 제천(祭天)의식을 행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만물의 7대 근원인 ‘땅(地) 물(水) 불(火) 바람(風) 공기(空) 보고(見) 앎(識)’ 등 일곱(七)자와 ‘싹이 난다(草本初生之莩 始也)’는 뜻의 갑(甲)자로 하여 생명의 시원(始源)이라는 뜻으로 ‘일곱 가지가 으뜸’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칠갑산이었다고도 하고, 또는 일곱 장수가 나올 명당이 있는 산이라 하여 칠갑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충남의 알프스라고는 하나 산세는 그리 험하지 않고 사방으로 쭉쭉 뻗은 능선이 아름답다.
공주∼서천 간 고속도로 청양IC에서 빠져 나오면 바로 청양군 정산면이 나온다. 정산(定山)은 한때는 청양보다 더 큰 고을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청양군에 편입되어 면이 된 지역이다. 정산면 서정리에는 고려 초기에 세워진 9층 석탑이 논 가운데에 서 있다. 부근에 백곡사(白谷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절터는 흔적이 없고, 주변의 논에는 백련(白蓮)을 심어 연 밭으로 만들어져 있다.
정산면 마치리로 이동하여 한티재 입구에서 칠갑산으로 들어간다. 산 밑으로 대치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청양∼공주 간 연결된 36번 국도였다. 간혹 이 길을 이용하는 자동차가 왕래를 하지만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한적하다. 울창했던 나뭇잎은 세월의 무게에 버티지 못하여 땅으로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사이로 속살을 내 비친다. 한티재 고갯마루 정상에는 주차장과 가게 등 편의시설이 있지만 면암 최익현선생의 동상이 압권이다.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 1833∼1906)선생은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구한말 외세의 역풍으로 국운이 흔들릴 때 관직을 뿌리치고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에 앞장 서 국기를 바로잡으려 혼신의 힘을 다했으며, 일본에 의해 나라가 기울자 이곳 청양으로 세거지(世居地)를 옮겨 의병활동으로 지키려 했고, 끝내는 전북 태인에서 궐기하였다가 일군에 패하여 대마도에서 옥살이를 하시던 중 단식으로 병을 얻어 향년 74세로 순국(殉國) 하신다.
해방 70년이 넘도록 친일청산을 못하는 후학들에게 면암선생은 가슴을 치며 통곡 하실 것 같아 선생을 대하기가 참으로 면구스럽다. 지금은 목면 송암리에 있는 면암의 고택에 모덕사 (慕德祠)라는 사당을 마련하여 위패를 모시고 매년 3월 14일에 항일의거 기념 추모제를 지낸다고 한다.
올라가는 길목에 천문대가 있다. 생명의 시원(始源)인 칠갑산에 천문을 관측할 수 있는 천문대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조금 더 올라가니 삼국사기에 나오는 자비성 자리에 1998년 4월에 준공한 자비정이 나온다. 보통의 정자는 육각정 또는 팔각정으로 짓는데, 이 자비정은 칠각정으로 지은 게 특징으로 칠갑산의 ‘칠’자를 차용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마지막이 경사가 가파러 숨이 차다. 정상에는 헬기장이 조성되어 평평하게 다듬어져 있다. 흐린 날씨에 사방이 어둡게 보이는데, 남쪽의 금강은 한줌의 햇살이 비춰져 수면의 물살이 금빛처럼 반짝인다. 맑은 날씨에는 부여가 한 눈에 다 보일 것 같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이 보아도 백제 사비성의 진산(鎭山)으로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장곡사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오는 길목에는 연인이 사랑스럽게 포옹하듯 소나무가 부둥켜안은 연인송 모습이 눈에 띤다. 어제 내린 눈으로 가끔 미끄러지는 연습을 하며 장곡사로 내려오니 뒷문이 나온다. 산비탈의 경사를 이용하여 가람을 배치한 장곡사는 나름대로 아름다움이 있다.
장곡사는 850년(신라문성왕 12년)에 보조선사가 세웠다고 하나, 고려 때 유물이 대부분이다. 삼성각 앞으로 하여 맨 꼭대기에 있는 전각이 대웅전이다. 이곳에 모셔진 철조여래불상과 석조대좌가 있는데, 불상은 보물이고 대좌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계단을 이용하여 아래로 내려오니 그곳에도 위 대웅전과 방향이 다른 대웅전이 또 나온다. 이상하게 여겨 살펴보니 대웅전이 상∙하 두 채로 나누어 있는데 참으로 특이한 구조다. 그리고 대웅전에는 석가여래를 모셔야 하나 하대웅전에는 약사여래, 상대웅전에는 비로자나불과 약사불 등이 있고, 석가여래불은 보이질 않는다.
오후에는 대치면 장승거리에 36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천상천하축괴대장군’장승이, 건너편에는 ‘동서남북축괴대장군’장승이 마주보며 서있다. 장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었고, 나그네의 이정표였다. 공주로 가는 길 마티재고개 부근에 있는 천장호 출렁다리와 산책길로 갔으나 보수중이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였으며, 다시 정산 쪽으로 내려와 정산향교로 향했으나 그것도 문이 잠겨 내부를 보지 못하고 정산 오일장을 둘러본다. 정산면사무소 정자 쪽으로 옮겨 휴식을 하는데 향나무는 두 손을 뻗어 잘 가라고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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