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휴전선 155마일을 걷다(여섯 번째)

와야 정유순 2015. 10. 28. 18:47

휴전선 155마일을 걷다(여섯 번째)

(진부령통일전망대, 2015. 10. 2425)

瓦也 정유순

   어젯밤 늦게 도착한 만해마을의 아침은 가을 색을 덧칠하는 가랑비가 내려 며칠 전부터 기승을 부리던 미세먼지를 깨끗하게 청소한다. 산골짜기 사이로 흰 구름이 안개 꽃 피듯 하늘로 솟고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도 감미롭고 청아하다. 만해마을이 있는 내설악의 가을은 흐름의 미학이 있고, 기다림의 아름다움이 배어있다.

 

 

   지난 5월 파주 문산의 반구정에서 시작한 휴전선 걷기의 시작은 이번이 여섯 번째로 동쪽의 끝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향해 진부령(520m) 고개를 넘는다. 인제군 북면에서 고성군 간성읍으로 가는 고개 정상으로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지나간다.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려 적설량측정대도 설치되어 있고, 미술관과 쉬어 갈 수 있는 쉼터와 식당이 있다. 그리고 고성8경의 하나인 마산봉설경(馬山峰雪景) 입구다. 진부령은 자동차도로로 확장개설 되면서 사람이 걸어 다니던 옛길은 사라져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진부령 넘어 첫 방문지는 금강산건봉사(金剛山乾鳳寺). 건봉사는 휴전선 북단 향로봉을 배경으로 남방한계선과 매우 가까워 한때는 민간인 출입이 제한되던 때도 있었다. 사찰경내 입구에는 자작나무 숲이 있어 얇은 나무껍질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편지를 마음속으로 써본다. 그리고 조금 지나 이곳에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사명대사 유정(四溟大師 惟政)의 좌상이 위엄 있게 설법하는 것 같다.



   길가 옹벽의 틈새에는 감국이 노란 꽃을 활짝 피어 가을 향기를 발산하고, 금줄이 쳐진 곳에 48기의 부도와 31기의 비석은 부도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신라 법흥왕 7(520)에 아도(阿道)가 창건할 때는 원각사(圓覺寺)였는데, 758(경덕왕17)에 발징(發徵)이 중건하여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우리나라 최초로 열었다고 한다. 그리고 도선이 중수하여 서봉사(西鳳寺), 나옹이 재중수하여 지금의 건봉사가 되었다고 한다.



   잘 보이지 않는 홍예교(虹霓橋 무지개다리)를 밟으며, 만해의 시비 사랑하는 까닭을 감상하고, 625 한국전쟁 때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능파교 건너에 자리하고 있는 대웅전으로 간다. 임진왜란 때 왜구가 양산통도사에서 가져간 부처님 진신사리 12과를 사명대사가 찾아와 이곳에 봉안하여 신도는 물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친견을 할 수 있는 친견장이 대웅전 옆에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대웅전 뒤 능선 위로 남과 북을 갈라놓은 철조망이 숲 사이로 어른거린다.




   건봉사에서 바삐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으로 이동한다. 청간정(淸澗亭)은 설악산에서 발원하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작은 바위언덕에 세워져 있어 동해와 어우러지는 아침 일출이 일품이어서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았다고 하나, 정자의 건립연대는 알 수가 없으며 갑신정변 때 화재로 없어진 것을 지역주민들이 1930년대 재건하였고, 1955년 대통령 이승만의 지시로 보수한 것을 1981년 대통령 최규하의 지시로 해체 복원하였다고 한다. 두 대통령이 쓴 현판이 정자 안에 지금도 걸려있다.




   곧 이어 약3km쯤 떨어진 천학정(天鶴亭)으로 간다. 마을 고샅길 같은 길을 따라 좀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바위와 소나무가 우거진 곳이 나오고 다시 계단을 통해 바다에 접한 바위 끝에 천학정이 나온다.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동해바다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는 모든 근심걱정을 사라지게 한다. 청간정 못지않은 자연과의 조화를 뽐낸다. 교암항으로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훨씬 수월하다. 그리고 바다에 펼쳐진 모래사장은 동해의 숨은 해수욕장 같으나, 정자 주변을 둘러싼 경비용 철조망이 작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새벽 비 탓인지 오후 하늘이 너무 곱다. 푸른 하늘이 원을 그려 저 멀리 맞닿은 곳이 수평선이다. 철조망 길 안으로 통일전망대를 향해 북으로 발길을 옮긴다. 고운 모래는 반쯤 빠진 발을 더디게 하고 파도는 숨바꼭질 하듯 달려든다. 명태 축제 준비에 바쁜 거진항 포구에는 어젯밤에 조업을 하였는지 어선들이 빽빽하게 정박하여 있고, 갈매기도 휴식을 취하는지 바위와 물가에 앉아 아는 척도 않는다.




   등대 올라가는 길을 지나 거진항을 뺑 돌아 인공암벽장 앞을 거쳐 걸어가는 해안 길은 거진해맞이봉으로 들어가라고 밀어붙인다. 급경사 계단위에는 샘터와 백섬전망대가 있으며, 능선 길 산책로에는 주민을 위한 체육시설도 있어 이용하기에도 편할 것 같다. 빨래골체육공원에는 십이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저마다 자기 띠의 석상 앞에 포즈를 취한다.



   화진포 소나무 숲 쪽으로 내려오니 화진포호가 반갑게 맞이한다. 화진포호는 동해안에 잘 발달된 대표적인 석호(潟湖)이다. 석호는 원래 육지 안으로 쑥 들어온 바다였으나 조류(潮流)작용 등에 의하여 모래 둑이 쌓이어 호수가 된 곳으로, 둑 밑으로 바닷물이 드나들어 바다 생물과 육지생물이 공존하는 특이한 구조다. 프랑크톤 등 조류(藻類)가 풍부하고, 봄이면 숭어 등 바다어류들이 산란(産卵)을 위해 모여든다. 경포호, 송지호, 영랑호, 청초호 등 18개의 석호가 있었으나, 화진포호만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사람의 손에 변형되거나 없어져 수 백 만년 이상의 위대한 자연유산을 훼손하고 있다.




   호수를 돌아 바다 사이에 잘 발달된 모래밭을 따라 다시 남쪽으로 돌아서면 김일성별장이 있는 화진포성이 자리한다. 화진포 주변은 호수와 바다와 노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원산으로 이주한 일본사람들이 이곳에 별장촌을 만들어 휴양하던 곳으로, 해방 후에는 한국전쟁을 일으켜 동족상잔의 비극을 불러온 북한의 김일성, 한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한국전쟁 때 야반도주하고 한강다리를 폭파하여 무고한 생명을 수장시킨 이승만,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1960315부정선거를 자행하여 419혁명을 유발시키고 결국은 아들의 손으로 집단자살한 부통령 이기붕이 사용한 별장이 있다.




   호수 위로 길게 뻗은 석양은 소나무 그늘을 더 늘어뜨리고, 화진포 앞 바다의 거북이 형상의 금구도가 광개토대왕의 능으로 밝혀져 학계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으며, 이곳 화진포 구두쇠 부자 이화진의 쇠똥시주와 착한 며느리에 얽힌 유명한 설화를 전설 속에 오늘을 묻는다.




  

   오늘은 독도의 날(1025)’이다. 고종황제가 19001025일에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2010년 제정된 날이다. 일본은 지금도 역사를 날조하며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독도는 엄연한 우리 땅이다. 그 독도가 있는 동해에서 숨이 멎을 것 같은 황홀한 광경이 펼쳐진다. 수평선 위로 구름 몇 점이 떠 있기는 하나 바다가 이글거리며 붉은 태양이 알몸으로 솟아오른다. 여러 번 일출을 보긴 했어도 구름에 가려 제대로 보기 힘들었는데, 이아침에 찬란하게 솟는 저 태양을 바라보며 힘차고 즐거운 하루를 예약한다.



   화진포 북쪽 끝에 있는 초도항 해변부터 고성통일전망대를 향해 첫발을 내민다. 파도는 어제보다 거세어 가까운 바위를 넘어 삼키는 것 같다. 갈매기도 거센 파도를 피해 바위에 옹기종기 모여 휴식을 취한다. 동해안 최북단 어항인 대진항에서는 물질을 언제 했는지 싱싱한 돌멍게의 향긋한 향이 소주 두 잔을 목구멍으로 넘기게 한다.



   대진항 북쪽 언덕에 있는 등대를 향해 오른다. 고르지 못한 해안 길은 철조망이 바다를 막고 있어 조망도 가려지고 지지대가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녹슨 철조망 사이로 파도가 춤을 추고, 북으로 갈수록 오래된 철조망의 교체작업이 한창이다. 작업을 하던 병사가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더니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말라며 전진을 제지한다. 갑자기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뒤로 발길을 돌리기에는 너무 깊이 들어 온 것 같다. 밭에서 일을 하시는 분에게 물어 봐도 뾰족한 대답이 없다. 철조망 따라 가던 길을 좌측 산으로 돌린다. 밭을 지나 산에 접어드니 오솔길이 나와 안심하였으나 어느 산소로 가는 길로 묘 앞에서 또 길이 뚝 끊긴다. 그래도 가시덤불을 재끼며 산비탈을 헤쳐 나간다. 군사지역이라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어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터덕거리며 작은 언덕 위를 오르니 길을 안내하는 푯말이 나온다.

   명파해변 길을 따라 안전지대로 나오니 곳곳에 이곳은 군사작전지역이니 출입을 금한다라는 안내판이 눈에 보인다. 마음이 진정되니 사물이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붉게 물든 단풍도 보이고, 가을의 전령 감국, 쑥부쟁이, 구절초가 향으로 코끝을 자극하며 가는 길을 안내한다.

   민통선지역인 마차진에서 명파해변 입구까지 약4km를 걸으면서 중간지점에서 길을 잃고 해매며 걸어 온 것이다. 멀리 서쪽으로는 북에서 남으로 뻗은 향로봉 능선이 보이고 북으로는 통일전망대가 보인다. 7번 국도는 북쪽으로 확장공사 중인데, 그냥 북한으로 쭉 뻗어 원산, 함흥, 청진을 거쳐 두만강 너머 러시아의 연해주로 향했으면 좋겠다.

   삼대전통막국수전문점에서 점심을 하고 휴전선 동쪽 끝 지점인 통일전망대로 걸어서 갈 수 없기 때문에 차량 이동을 한다.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에 소재한 통일전망대는 DMZ와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해발 70m의 높이에 위치하여 금강산의 구산봉과 해금강이 지척에 보인다. 그리고 오늘 같이 맑은 날에는 전방 10시 방향으로 신선대, 옥녀봉, 채하봉, 일출봉, 집선봉 등 천하절경 금강산이 보인다.

 

 

   전망대에서 손가락으로 금강산, 해금강, 낙타바위, GP, 남방한계선, 북방한계선 등을 가리키며 갈 수 없는 우리 땅이 여기에 있음을 실감한다. 내려오는 계단 옆에 서 있는 부처님 상과 성모마리아 상이 북쪽을 바라보며 우리의 통일을 염원하는 것 같다. 7번국도 중단된 지점에서 여섯 번에 걸친 휴전선 155마일 걷기를 회상해 본다.

 


   세상일이란 원래 끝도 시작도 없는 것(無始無終)”인데, 우리는 기를 쓰고 시작과 끝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고, 시작은 바로 끝을 의미한다. 그리고 매 순간순간 마주치는 것이 운명이다. 앞에서 오는 운명을 어찌 피할 것인가. 그래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나보다. 비록 행군도중 길을 잘못 들어 어려움을 잠깐 겪기도 했지만, 그것은 새로운 길을 찾는 행운이었다.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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