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詩詩한 캠프-소소한 삶을 흔들다’ 참관기

와야 세상걷기 2016. 9. 13. 12:24

詩詩한 캠프-소소한 삶을 흔들다참관기

瓦也 정유순

   경상북도 칠곡군과 이야기경영연구소에서 주관한 詩詩한 시 낭독 캠프-소소한 삶을 흔들다2016967일 이틀 동안 휴대폰이 가끔 안 터지는 깊은 산 속의 칠곡군 송정자연휴양림에서 열렸다.

<시시한 캠프 현수막>

   함께한 시인은 문정희, 정호승, 장석주, 송찬호, 고두현, 김선우, 박준 등 일곱 분이 참석하여 자신들의 시() 세계를 들려주었으며, 시인과의 그룹별 대화가 있었고, 또한 그룹별과 개인별로 나누어 시 낭독 대회가 있었는데 참가자 모두 수준급 이상이다. 그리고 칠곡할머니들의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세계를 그들의 시를 통해 보았다. 모두가 소탈하고 유용한 시간이었다.

<앞줄 좌로부터 문정희, 정호승, 장석주시인>

   문정희시인은 어린 날 홀로 큰 바다에 던져져서 극도의 외로움 속에 빠진 것이 내가 시를 쓴 계기라면, 전쟁과 분단과 군사독재로 이어진 사회 환경은 나로 하여금 인간의 자유와 생명의 문제에 깊이 눈 뜨게 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전통의 억압과 불합리한 모순을 향해 저항하며 사회적 타자로서의 여성의 아픔을 시로 쓸 수 있어 역설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인데, 산을 오르고 나면 또 다른 산이 더 우뚝하게 서 있어서 정상을 정복하는 것은 영원히 힘들다라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생전에 최고의 명작은 영원히 나오지 않는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 같다.

 <문정희시인(우측에서 두번째)과 함께>


   정호승시인은 나는 분노보다 상처 때문에 시를 쓴다. 기쁨보다 슬픔 때문에, 햇빛보다는 그늘 때문에 시를 쓴다.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듯이 나의 시 또한 고통일 뿐이다라며 상처 없는 사람은 결코 먼 길을 떠날 수 없고, 이미 먼 길을 떠난 사람에겐 오히려 그 상처가 힘이 된다. 나는 그 상처의 힘으로 시의 길을 가고 있다. 세상에는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길이 있지만 꼭 가야할 길이 있다. 그 길이 내겐 시의 길이다라고 하며 시는 고통의 꽃이라고 이야기 한다.

<대구수성천변 정호승시비 앞에서-2016.8.18> 

   장석주시인은 시는 욕망이 아니라 욕망에 대한 욕망이며, 꿈이 아니라 꿈에 대한 꿈이다. 시는 겹의 욕망, 겹의 꿈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그것을 결핍에 대한 보상이라고 이해했다라고 고백하며, “시는 심미 본능에서 발현하는 언어 예술이지만 아름다움 그 자체가 시의 목적은 아니다. 시는 일체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곳에 존재한다. 뜻의 곡진함, 말법의 새로움, 생동하는 기운이 한데 어우러질 때 시는 제빛을 낸다. 그래서 시를 아는 것은 전부를 아는 것, 곧 우주를 아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휴양림의 너와집>


   송찬호시인은 무엇인가 맞춘다는 것은 목적이 있다. 신데렐라 언니들이 뒤꿈치를 깎는 것은 왕자의 비가 되기 위함이다. 시에서 화자는 무엇 때문에 발톱을 깎고 복숭아뼈를 깎는 것일까? 사랑? 정말 사랑일까?”라며 의문을 제기하면서 사랑의 속성을 알아야 한다. 사랑에는 일방적인 것도 있다. 그러나 그 일방적인 것이 희생만 강요한다면, 그 사랑은 온전한 것이 못된다. 그러므로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다. 교환이란 마음을 말하는 것이지만 마음은 어렵고 물건은 쉽다. 물건에 사랑을 담았다면 괜찮겠지만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하는 교환은 그 물건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강조하며 꽃 등 사물을 통해 세상을 프리즘 적으로 비춰보며 시의 세계를 그렸다고 한다.

 <마가목>

   고두현시인은 초등학교 2학년 말에 부모님이 심하게 편찮으셔서 학교를 그만 두고 남해 금산 보리암 아래 작은 절로 이사를 가서 산에서 2년 가까이 고사리와 산나물을 캐러 다니고, 버찌 머루 다래 같은 걸 따며 청설모처럼 온 산을 휘젓고 다녔다. 밤에는 어스름 달빛을 받으며 계곡 물에서 늦도록 참게를 잡았다며 호연지기를 이야기 한다. 이렇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남해 노도(櫓島)에 귀향 왔던 서포 김만중을 꿈에서 보고, 아름다운 물미해안의 자연 속에서 시인의 꿈을 키웠다고 이야기 한다.

  <남해금산 쌍홍문>


  김선우시인은 시를 짓는다. 시를 받는다고도 한다. 시와 논한다고도 하고, 시에게 나를 빌려 준다고도 한다나는 그냥 시를 쓴다고 말한다. ‘쓴다고 말할 때, 시 쓰는 나와 세계 사이의 거리는 아득히 넓고 거친 격랑 속이다라고 말하며, “나는 나이고 나 아니기도 한다. 나와 다른 너와, 너이기도 한 너를 우리라고 할 수 있다면, 시 쓰기는 우리의 쓸쓸함과 슬픔과 아름다움에 몸을 바싹 붙이는 일. 몸과 몸의 경계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경계를 지우거나 넘어서는 일이라고 힘을 준다.

 <배롱나무 꽃>

   박준시인은 나는 시를 쓸 때 마다 꼭 유서(遺書)를 쓰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는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기에, 그리고 나는 어느 누구보다 그것들과 쉽게 친해졌으므로 나의 시는 창작보다는 취재나 대필에 가깝다고도 생각했다. 쓰는 게 아니라 그것들의 유언을 받아 적는 것이다라고 고백하며, “내가 사라지는 것들의 말을 받아 적는 이유는 그것들을 기념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기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조금 잔인하게 말하자면 나에게 시는 그것들을 안락사 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한 존재가 온전히 존재하려면 온전히 소멸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하며 감정이 너무 강렬하면 시가 부서지고 감정이 흐릿할 때는 억지와 작위가 생긴다고 심경을 솔직히 토로한다.

 <치악산 구룡사계곡>

   나도 고즈넉한 숲속에서 조용히 생각하며 한껏 여유를 부리려고 참가했으나 시인들의 소탈한 고백을 들을 때마다 나의 심연의 세계에서 나를 찾는 작업을 열심히 더 해야겠다는 욕망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저녁에 정호승시인과의 대화때 나는 나의 이야기를 수줍게 꺼냈다.

  <정호승시인(우측 두번째)과 그룹별 대화>

  나도 벽촌에서 세상물정 모르고 자라나 그냥 그저 좋아서 글을 끄적거리기 시작 했고, 교지(校誌)에 시를 올리기도 했으며, 농사가 싫어서 고등학교 졸업 하자마자 서울로 도망치듯 올라 왔고, 바쁘게 생활 하면서 글 쓰는 것을 한동안 잊어 버렸으나, 부모님이 떠난 고향 빈집에 어렸을 때 써 놓았던 두꺼운 노트가 용마루로 스며든 빗물에 다 녹아 뭉그러져 버려 그 꿈을 그리려고 다시 글을 썼노라며 나의 졸작 낯익은 길을 낭독 했다.

 

낯익은 길

정유순

숨차게 달려간 고향집

옛 발자취까지 잡초에 묻힌 채

녹슨 자물통 힘겨워 삐걱 소리도

내지 못하는 안채와 한 뼘 건너

사랑채의 침묵하는 문이 있고

 

세월에 흩날린 용마루 안으로

빗물 스며들어 쓰다만 일기장처럼

모아 두었던 어린 꿈 다 적셔놓았다

 

어젯밤 미풍에 허물어진 흙벽을 보며

할아버지 손때 서린

멍석들이 서러워한다

 

옛터를 지키던 담장 밑 벽오동

주인 잃은 열매만 말라 터져 덩그렇고

열일곱 새악씨 같던 모란은

모진 한숨으로 지 새운다

 

찬 서리 내릴 때까지 손 타지 않은

늙은 감나무 홍시는 옛 주인 대신

까치만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다

 

그래도 옛 고향집은

사공 없는 나룻배로 묶이어

바람이 흔들고 세월이 밀쳐도

내 푸른 꿈이 묻힌 그냥 그 자리에서

 

청년이 지나고 장년이 되는 내게

지나간 날과 만나야할 날들까지

겸허하게 살라고 말해주고 싶은

스승 같은 마음이 있다.

 

   낭독을 하고나니 얼굴이 화끈 거린다. 괜히 앞서 나갔나 하고 자책도 해본다. 그러나 이런 기회에 한 번 하는 것도 기회가 아닌가 하며 자위도 해본다. 아침에 다시 보는 송정자연휴양림의 숲은 더 푸르고 계곡을 흐르는 물은 더 맑게 보인다. 지금 활짝 피어나는 꽃무릇처럼 잎과 꽃이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서로 그리워만 하는 상사화가 될지언정……

  그러나 역시 나는 아직 멀었다.

  정복당하지 않는 산처럼 멀기만 하다.

<꽃무릇(상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