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끼며 힐링하는 치악산 구룡사계곡 길
(2016. 9. 10)
瓦也 정유순
영동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 새말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치악산국립공원’인 ‘구룡사’ 입구에 도착하여 ‘세렴폭포’까지 도보를 시작한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청와대습격사건인 ‘김신조’일당의 영향으로 사병생활을 3년 꽉 채워야 했던 원주. 그때 산악훈련으로 누벼야 했던 꿩의 전설이 깃든 치악산이 오늘은 거인이 되어 나타난다.
<탐방로 안내판>
치악산은 초입 계곡부터 역시 거인답게 오만하지 말라고 조용히 타이른다. 자연은 나에게 겸손하라고 가르친다. 구룡사 대웅전 팔작지붕은 그대로인데, 삼라만상의 모든 소리를 안고 떨어지는 계곡의 물소리도 예년과 다름없는데, 전설을 물위에 띠우고 흐르는 잔잔한 물도 변함이 없는데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나만 옛날의 내가 아닌 것 같다.
<치악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스트레칭으로 간단히 몸을 풀고 도로를 따라 길을 따라 나선다. 한 두 걸음 나서자 바깥 주차장 가까운 아래에는 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구룡 자동차야영장’이 치악산의 찬란한 아침을 맞이한다. 길옆 밭에는 뼈를 튼튼하게 한다는 오갈피가 열매를 맺어 익어간다.
<구룡 자동차 야영장>
<오가피>
조금 더 올라가니 ‘금강소나무 숲길’이 나온다. 금강소나무는 금강산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상북도 지역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산 사면과 능선에 자라는 소나무로 수피(樹皮)가 붉은 색을 띠는 나무다. 금강소나무 중에서도 가장 질이 우수한 나무를 ‘황장목(黃腸木)’이라 하여 궁궐의 신축이나 보수를 할 때 사용하는 나무로 이를 보호하기 위해 금표(禁標)를 정하여 엄격하게 관리하기도 했다. 황장목은 나무의 중심부분이 황색을 띠며 나무질이 단단한 좋은 소나무를 가리키며, 치악산에도 두 개의 ‘황장금표’가 있다고 한다.
<금강소나무 숲길 입구>
<황장금표>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금강소나무’라는 예쁜 우리 고유의 이름을 놔두고 수피가 붉은 색을 띤다는 이유로 적송(赤松)으로 통칭하는 것은 삼가해야할 일이다. 일설에는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식물 분포를 조사하면서 금강소나무를 일본식 ‘적송(赤松)’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강한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작은 것에서부터 숨어 있는 우리 것을 찾으며 극일(克日)하는 것도 굴욕의 역사를 지우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금강소나무 군락>
<금강소나무의 포옹>
앞서 가던 일부 일행은 반듯이 올라가다 강원도자연학습원 쪽으로 길을 잘못 들어 뒤돌아온다. 다시 강원도자연학습원 입구에서 오른 쪽으로 돌아 숲속으로 들어선다.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에 맞춰 새들이 노래하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소리는 자연이 연출하는 오케스트라이다.
<구룡사계곡 작은폭포>
구룡사계곡을 건너는 ‘구룡교’는 거북 등에 올라 탄 용(龍)이 머리를 밖으로 내민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를 이룬 숲은 세상의 모든 근심을 잊게 하는 것 같다. 계곡은 작은 폭포를 이루어 소(沼)를 만들고 골짜기 마다 생명의 박동소리가 골을 따라 메아리친다. 촉촉한 물기가 있는 곳에는 물봉선이 제철을 만나 꽃을 활짝 피운다.
<구룡교의 용머리>
<물봉선>
전나무 숲이 우거진 구룡사 입구에서 길을 따라 세렴폭포로 바로 올라간다. 낯선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에 다람쥐는 반기듯 자주 나타나는데 사진이라도 촬영하려고 하면 재빠르게 사라진다. 여러 생물들이 공존하는 것은 생태환경이 잘 발달되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며 ‘사다리병창길’로 가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 직진하니 조용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반긴다. 바로 세렴폭포다.
<전나무 숲>
큰 것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에게 이것도 폭포라고∼∼∼” 한 마디 할 것 같은 작은 규모의 아름다운 폭포다. 2단으로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낙수(落水)가 환상적이다. 세렴은 무슨 뜻인가? 세상의 모든 속된 것들을 이곳에 와서 “깨끗이 씻고 맑은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뜻의 씻을 세(洗)자와 청렴할 렴(廉)자를 써서 세렴폭포(洗廉瀑布)가 아닌 가 내 멋대로 생각해 본다.
<세렴폭포>
잠깐 한숨을 돌리며 폭포 앞에 앉아 이미 지나간 세월들을 되 짚어본다. 내 자신은 반듯하게 옳은 길로 살아왔다고 생각 하지만 지나온 점들의 흔적들을 한 줄로 이어보니 현란할 정도로 심한 곡선을 그리는 것 같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다 ‘치악산 대영야영장’에서 각자 준비한 도시락으로 오전을 마감한다.
<치악산 대영야영장-돌탑>
치악산 대영야영장 위 상단에는 정성들여 쌓아 놓은 돌탑 3기가 나란히 있고, 주변에는 정자와 평상들이 준비되어 있다. 야생식물 제배지에는 과남풀이 자주색 꽃망울이 주렁주렁 맺혀 있고, 참당귀 꽃대도 가을 하늘로 키를 키운다. 뒤 켠 ‘멸종위기 토종 파충류 인공증식 장’에는 우리나라 토종 구렁이가 허물을 벗고 남긴 하얀 허물만 길게 풀 속으로 뻗쳐 있고, 구렁이는 사람이 두려운지 보이질 않는다.
<과남풀>
<참당귀>
<멸종위기 토종 파충류 인공증식장>
다시 현수교(懸垂橋)를 지나 구룡사로 방향을 잡는다. 구룡사(龜龍寺)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는데, 전설에 의하면 원래 대웅전 자리에는 연못이 있었고 그 곳에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고 하는데, 의상은 연못자리가 좋아 절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시합을 하여 용들을 물리치고 절을 지었고,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 하여 구룡사(九龍寺)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현수교>
<구룡사>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찰이 퇴락하게 되는데, 어느 날 한 노인이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약해진다 하여 혈을 끊었는데 이후 절이 더욱 쇠약해져 더 이상 운영이 어려워 폐사 되려할 때 한 도승이 나타나 혈맥을 끊어 생긴 일이라 하여 거북바위를 살리는 뜻에서 절 이름을 구룡사(龜龍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한조계종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末寺)이며 조선 초기에 개축된 대웅전은 동향(東向)으로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예스런 모습이 다소 감했지만, 배흘림기둥 팔작지붕으로 못 하나 쓰지 않고 지은 건물이기 때문에 지금은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구룡사 대웅전>
절 입구 마당에 있는 소나무 한 그루는 반쯤 잘린 가지에 또 다른 가지가 아래로 뻗어 하향(下向)의 세계를 만드는 조화를 부리고, 200년이상 된 은행나무는 구룡사의 사연을 가슴에 안은 채 말이 없다. 절 초입에 있는 일주문인 원통문(圓通門)은 이 절을 오고가는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과 원활하게 소통하라’고 기원하는 것 같다.
<하향(下向) 소나무>
<200년 이상된 은행나무>
<원통문(일주문)>
올라갈 때 나무마다 완장을 두른 듯 밑 둥에 무엇인가를 둘러메어 놓은 것을 보았는데, 내려오면서 자세히 보니 참나무에만 걸리는 ‘참나무시들음 병’ 방제를 위한 ‘끈끈이롤트랩’을 설치해 놓은 것이다. 한 여름 무더위에 온몸으로 호흡하며 세상을 버티며 살아야 하는데 얼마나 답답했을까? 부디 답답함을 잘 견디어 시들음 병을 퇴치하고, 더 푸른빛을 내어 치악산의 녹음(錄音)을 유지하기를 빌 따름이다.
<구룡사 관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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