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3)

와야 정유순 2022. 6. 6. 23:10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3)

(용산교관방제, 2022 5 2829)

瓦也 정유순

  평사낙안(平沙落雁)! ‘모래밭에 와서 앉은 기러기나 글씨와 문장이 대단히 잘 써진 모습을 표현할 때 쓰는 사자성어로 극락강과 황룡강 물길이 합류하여 흐르는 승촌보 일대의 넉넉한 경관을 비유한 말이지만, 미인을 은유적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남구 승촌동의 승촌보 공원에 내려앉은 기러기는 나주의 것이 아니어도 광주에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는 공원지역이 하중도로 광주 땅이 알박기식으로 나주 땅으로 파고들어 왔기 때문이다

<평사낙안>
 

  평사낙안은 원래 중국 소상팔경(瀟湘八景) 중 하나로 산시청람(山市晴嵐), 연사만종(煙寺晩鐘), 소상야우(瀟湘夜雨), 원포귀범(遠浦歸帆), 동정추월(洞庭秋月), 어촌낙조(漁村落照) 강천모설(江天暮雪) 등이 함께 한다. 소상은 중국 호남성의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의 평사낙안은 전북 선유도가 더 유명하지만, 쌀을 형상으로 만든 승촌보 조형물이 보기에 따라서는 기러기가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으로도 보인다.(*붙임참조

<승촌보>

 

  광주광역시의 승촌공원은 나주시 노안면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노안면(老安面)은 나주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금성산 동쪽에 있고, 망산과 왕산이 서쪽을 둘러싸고 있다. 조선시대 나주목의 이로(伊老금안(金安복암(伏岩)면에 속했으며, 이들이 1914년 개편 때 합쳐지면서 이로와 금안이 합성되어 노안면이 되었다. 면 소재지인 금동리를 비롯하여 13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금안동은 중국에서 한림학사를 지낸 정가신(鄭可臣, ?1298)이 금안장에 백마를 타고 금의환향한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승촌공원 지도>

 

  맞은편 강 건너에는 나주시 금천면(金川面)이 있고 무등산 남쪽 화순에서 발원한 지석천(砥石川)이 영산강과 합류하면서 넓은 들이 전개되고 있어 쌀·보리의 주산지이며, 원예농업지대이다. ·동부지역은 30m 내외의 구릉지로, 배수가 좋고 토질이 비옥하여 과수(果樹)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나주배의 주산지로 배박물관, 배연구소, 배유통센터, 호남원예고등학교 등이 소재하며, 복숭아·포도를 비롯해 국화와 장미 등의 많이 생산된다

<영산강문화관>

 

  영산강 서안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나주시 삼도동이다. 삼도동(三都洞)은 원래 나주군 동부면(東部面)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외도리(外都里진변리(津邊里죽림리(竹林里)와 신촌면(新村面) 방목리(放牧里)가 통합됨에 따라 삼도리가 되었다가 1986 1월 금성시가 나주시로 개칭되어 나주시 삼도동이 되었다. 삼도동에는 광주와 목포를 잇는 국도 제1호선의 나주대교가 금천면 사이의 영산강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다. 길이 720m,  31m의 왕복 6차선이다

<나주대교>

 

  나주대교 옆 영산강 하천부지에는 <나주대교전망대카페루(Lou)>라는 전망대 겸 카페가 있다. 원래 이 건물은 1964년에 지어져 1996 1월까지 상수도 취수탑으로 사용했으며, 이후 국가수질자동측정소로 활용되었으나, 관리가 잘 안 돼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던 것을 2011 7 4대강 사업으로 전망대 및 수위관측소로 리모델링했다. 현재 1층은 수위관측소와 갤러리이며, 2층에는 2020년에 개업한 나주카페가 자리한다. 주변 풍경이 아름답고, 그 풍경을 카페 안에서 360도 바라볼 수 있게 설계되었다

<나주대교 전망대>

 

  삼도동을 지나면 나주시 토계동과 빛가람동을 연결하는 빛가람대교가 있다. 빛가람동은 2014년 조성한 혁신도시로 한국전력공사와 한국농어촌공사 등이 이전해온 곳이다. 이 지역은 대부분 농경지와 구릉지, 자연취락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나주시 금천면 일부와 산포면 일부를 편입하여 조성된 동()이다. 2013년 명칭 공모를 통하여 결정된 <빛가람동>이란  가람(강의 순우리말)’을 조합한 것으로, ()의 북쪽 너머로 흐르는 영산강과 빛 고을 광주의 빛이 하나 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또 한국전력을 상징하는 과 한국농어촌공사를 상징하는 (가람)’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빛가람대교>

 

  토계동(土界洞)은 원래 나주군 동부면(東部面)에 속하였으며, 토계촌 또는 토끼촌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교촌이 통합됨에 따라 토계리가 되었다. 1931 11월 나주면이 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나주읍 토계리가 되었으며, 1981 7월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하여 금성시(錦城市)가 되고 동제(洞制) 실시로 금성시 토계동이 되었다가 1986 1월 나주시로 개칭되어 나주시 토계동이 되었다. 이 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송월동(松月洞) 관할이다. 천년고도인 나주에는 볼거리가 너무 많아 잠시 걷기를 멈추고 차량으로 이동한다

<영산강(토계동)>

 

  나주시 동문 밖 석재당간(石材幢竿, 보물 49)은 길고 가는 석주(石柱)의 상·하면을 반씩 깎아 내어 접착시킨 형식의 높이 11m 당간이다. 나주의 지세가 배 모양이어서, 배가 뒤집어지지 않고 안정되기를 빌기 위하여 돛대의 의미로 이 당간을 세웠다고 전한다. 화강암으로 만든 당간지주는 마주보는 안쪽 면은 물론 바깥 면이나 옆면에도 아무런 조각이 없는 간결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정상 부분의 윗면은 평평한 편인데, 바깥 면 가까이에 이르러 둥글게 곡선을 그리면서 바깥 면과 접하는 모서리를 깎아냈기 때문에, 앞뒤에서 보면 곡선이 뚜렷하게 보인다

<나주 석당간>

 

  나주목사고을시장에 들러 시장구경을 하고 전라남도유형문화재(128)로 지정된 나주향교로 간다. 나주(羅州)는 전주(全州)에 이어 천 년을 이어온 전라도(全羅道)의 중심축에 있는 고을이라 향교의 규모도 서울의 성균관 다음으로 크다. 향교(鄕校)는 조선시대 지방에 설립한 국공립 교육기관으로 공자를 중심으로 한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며, 지방인재를 교육하고 교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육기관이다. 사립교육기관으로는 서원(書院)이 대표적이다

<나주향교 배치도>

 

  나주향교(羅州鄕校) 987(고려 성종6) 8월에 창건되어 1398(태조 7)에 중수되었다고 전해진다. 향교나 서원의 건물 배치는 지형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평지인 경우에는 전묘후학(前廟後學)배치 구조로 제사지내는 공간이 앞에 있고, 학문을 배우는 공간이 뒤에 있으며, 경사진 경우에는 그 반대로 전학후묘(前學後廟)배치를 한다. 평지인 경우에는 제향공간을 강학공간의 앞쪽에 두어 제향공간의 위상을 높게 하고, 경사진 곳은 반대로 제향공간을 보다 높은 터에 두어 높은 위상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나주향교 외삼문>

 

  나주향교의 구조는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진 외삼문이 먼저 나오고 내삼문을 통해 대성전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으나 이 문은 내삼문과 함께 굳게 닫혀 있어 우측으로 돌아가 평소에는 측문인 영난문(迎欄門)을 이용한다. 대성전은 향교의 중심 건물로 공자(孔子)를 비롯한 4명의 성인과 주자(朱子)를 비롯한 송조사현(宋朝四賢), 우리나라의 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 등 동국십팔현(東國十八賢)  27위의 위패를 모신 공간으로 봄가을에 석전대제(釋奠大祭)가 거행된다

<나주향교 대성전>

 

<나주향교 영난문(측문)>

 

  대성전 뒤에 있는 명륜당(明倫堂)은 스승과 학생이 모여서 공부하는 자리이며, 일반적으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는데, 이는 명륜당이 교육장소인 동시에 스승의 거처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전국의 향교 가운데 나주향교는 서울 성균관의 명륜당을 모방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즉 중앙에 세 칸의 건물이 있고, 양쪽으로 세 칸의 날개 건물인 익사(翼舍)를 두었는데, 성균관과 다른 점은 건물 사이에 약간의 사이를 둔 것이다

<나주향교 명륜당>

 

  명륜당의 명륜(明倫)’이란 인간 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이다. 이 명륜당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으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두어 교생들의 기숙사를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신분과 관계없이 양반은 물론 양인의 자제도 입학할 수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문과공부를 주로 하던 양반자제들은 동재를, 무과나 잡과를 공부하던 양인자제들은 서재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성균관이나 향교에 가면 은행나무가 있는 이유는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양성했다는 유래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나주향교 서재(기숙사)>

 

  1597(선조 31) 당시 대성전 수복(首僕)이었던 김애남(金愛南)이 정유재란으로 향교가 없어질 위험에 처하자 죽음을 무릅쓰고 위패를 금성산으로 옮겼다가 왜병이 물러간 뒤 다시 안전하게 봉안하게 되었다 하여 그를 위해 사우를 건립하도록 하였다는 내용의 충복사유허비(忠僕祠遺墟碑)가 있다. 현종·숙종 때에도 중수와 중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성전은 이때 중수된 듯하며, 성균관의 명륜당이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을 때 나주향교의 명륜당을 참고했다고 한다

<나주향교 충복사유허비>

 

 

 

(*)소상팔경(瀟湘八景)

 

<1>. 산시청람(山市靑嵐)은 산마을과 그를 둘러싼 산의 짙푸른 기운.

  산 속에 열리는 시장이란 뜻인데 산()은 성()이고 시장은 속()이니 인생이란 성속(聖俗)을 넘나드는 그 가운데 있음을 말한다.

<2>. 연사만종(煙寺晩鐘)은 안개 낀 산속 절에서 들리는 저녁 종소리.

  절이란 구도자(求道者)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인 바, 안개 낀 삶의 길 위에서 저녁 종소리를 길 안내로 하여 목표를 찾아가는 마음이다.

<3>. 소상야우(瀟湘夜雨)는 소상강에 내리는 거센 밤비.

  소상강에 휘몰아치는 거센 밤비로서, 삶의 도중에서 만날 수 있는 뜻하지 않은 시련과 다 풀어내지 못한 한()의 정서를 의미한다.

<4>. 원포귀범(遠浦歸帆)은 저 멀리 포구로 돌아가는 배.

  부귀와 공명을 얻기 위해 세상에 나갔다가 더러는 뜻을 이루기도 하고 더러는 실의의 낙향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원 자리로 돌아오는 마음을 의미한다.

<5>. 평사낙안(平沙落雁)은 강변 모래사장에 내려앉는 기러기.

  강변 모래사장에 내려앉는 기러기 무리인데, 기러기 역시 자유롭게 하늘만을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모래사장에 내려와 먹을 것을 찾아야 하니 이상과 현실의 갈등 또는 조화를 의미한다.

<6>. 동정추월(洞庭秋月)은 동정 호반에 뜬 가을 달.

  동정 호반에 뜬 넉넉한 가을 달이니 어느 정도 삶의 성취를 이룬 후에 맞이하는 한가로운 한 때를 뜻한다.

<7>. 어촌낙조(漁村落照)는 한가한 어촌 마을에 내리는 저녁 놀.

  한가로운 어촌에 내리는 저녁노을인 바, 어촌은 한가로운 생활이고 저녁노을은 인생의 만년이니 이제 인생을 어느 정도 관조(觀照)할 수 있는 마음의 경지를 뜻한다.

<8>. 강천모설(江天暮雪)은 겨울 강 위로 내리는 저녁 눈.

  겨울 강 위로 내리는 저녁 눈이니, 나이 들어 모든 것을 초월한 경지에서 겨울 강위에 배를 띄워놓고 내리는 눈을 보며 즐기는 경지를 말한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5)  (0) 2022.06.08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4)  (0) 2022.06.07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2)  (0) 2022.06.03
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1)  (0) 2022.06.02
우리가 산다는 것  (0) 2022.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