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물길 따라(두 번째-2)
(용산교∼관방제, 2022년 5월 28일∼29일)
瓦也 정유순
우리는 가끔 ‘먹기 위해서 사는지? 살기 위해서 먹는지?’헷갈릴 때가 있다. 어찌했던 오전 내내 영산강 물길 따라 걸었더니 시장기가 전해와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모 흑두부집으로 이동한다. 주변과 조화를 이룬 한옥은 소나무로 조경을 하여 멋을 부렸으며, 들어가는 길은 맷돌을 깔아 징검다리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중국에서 모조품으로 들여온 병마용이 보초를 선다. 병마용(兵馬俑)은 중국 시안(西安) 진시황 무덤의 도제(陶製) 부장품이다.
<식당전경>
<병마용>
병마용 옆에는 붉은 찔레꽃이 유난히 더 붉다. 혹시 장미인가 싶어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1940년대에 민중가요인 <찔레꽃> 가사에 나오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이 동기가 되어 전라남도 신안군에서 특별히 종을 개발했다고 전해 준다. 이 꽃을 보기 전에는 만리타향에서 정든 고향을 그리며 핏빛으로 물든 가슴의 멍을 찔레꽃에 덧칠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었다. 풀피리 불며 어린 찔레 순 꺾어 먹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붉은 찔레꽃>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눈길을 끄는 게 또 있었는데, 뽕잎을 갉아먹는 누에가 보인다. 전문적인 양잠(養蠶)은 아니지만 조그마한 그릇에 뽕잎을 넣고 그 속에서 누에가 자라고 있었다. 197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누에고치로 비단을 직조(織造)하여 수출을 하였으며, 누에고치에서 나온 번데기로 단백질을 보충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번데기 한 사발 삶아 놓으셨다가 학교에서 오면 조용히 불러 입에 넣어 주시던 울 엄니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
<누에>
배부르고 등 따시면 틀림없이 찾아오는 졸음을 뿌리치고 다시 광산구 신촌동 영산강 물길 옆에 선다. 신촌동(新村洞)은 원래 광산군(光山郡) 소내상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송정면(松汀面) 신촌리로 되었다가 1988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촌동이 되었다. 신촌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신흥동(新興洞) 관할이며, 동 이름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광주공항과 송정공원 등이 있으며, 송정공원에는 활터인 송무정이 있다.
<영산강 산책길(신촌동)>
영산강이 광주광역시 구간으로 들어오면 무등산 용원동 용두골 일대에서 발원하여 시의 중심부를 흘러 서구 치평동 일대에서 영산강과 합류하는 광주천(光州川)이 있다. 시가지를 가로질러 서북으로 흐르다가, 서쪽에서 영산강과 합류하여 넓은 평야를 이룬다. 예전에는 여름 내내 붉은색 꽃이 피는 배롱나무가 많은 개울이라 하여 자미탄(紫薇灘)이라고 불렀다. 광주천 주변에는 소쇄원(瀟灑園)·환벽당(環碧堂)·취가정(醉歌亭)·식영정(息影亭) 등 유명한 원림(園林)과 정자가 모여 있어 또 다른 문화를 형성한다.
<극락(영산)강 습지>
광주천이 영산강과 만나는 지점부터 황룡강을 만나는 지점까지를 극락강(極樂江)으로도 불리고 있으나, 이는 부분 명칭으로 법정 하천명은 아니다. 극락강의 구간길이는 약 7㎞이며, 관련 지명으로는 극락대교와 극락강기차역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이곳에 ‘칠천(漆川)’이라는 지명이 기재되어 있어 또 다른 부분 명칭이 사용된 것 같다. 광주천의 발원지인 무등산과 극락강은 불교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무등산>
발걸음은 서창교를 건너 신촌동에서 서구 서창동으로 옮겨진다. 서창동(西倉洞)은 조선시대 때 광주목(光州牧)의 서쪽에 조창(漕倉)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서구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가장 면적이 넓은 동이다. <해동지도>에는 서창은 당부면의 하천변에 입지하고 있다고 기록한다. 1914년 광주군 서창면 세하리·벽진리·매월리·마륵리·용두리·서창리로 통합되었다가 1988년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으로 되었다.
<서창교>
강둑을 타고 광주시 남구 화장동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황룡강과 만나고 강 이름도 극락강에서 영산강으로 환원된다. 황룡강(黃龍江)은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병풍산(屛風山) 북쪽 용흥사 계곡에서 발원하여 장성호에 유입되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장성읍과 황룡면을 지난 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리를 지나 송대동에서 극락강과 합류한다. 황룡강이라는 이름은 장성군 황룡면을 지나면서 얻은 이름이다.
<황룡강과 합수지점>
그런데 이 황룡강 때문에 영산강의 발원지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다. 그동안 영산강의 발원지를 담양군 용면 용연리 가막골의 용소(龍沼)로 알려져 왔으나, 정부 발행 <한국하천일람>에 수문학적 관점에서 영산강 본류보다 더 거리가 길게 측량된 황룡강 발원지인 병풍산(屛風山) 북쪽 용흥사 계곡을 공식적인 발원지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한강의 발원지가 당초 오대산 우통소에서 태백의 금대봉 검룡소로 바뀐 사례가 있기는 하다.
<강변산책로 쉼터>
남구 화장동(禾場洞)은 원래 광산군(光山郡) 계촌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지동리(支洞里)·농막리(農幕里), 동각면 본동리·서호리 등의 일부를 합하여 대촌면(大村面) 화장리가 되었다. 1988년 광산구가 신설되면서 광주직할시 광산구 화장동이 되었으며, 1995년 남구의 신설로 광주광역시 남구 화장동이 되었다. 화장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대촌동(大村洞) 관할 하에 있다.
<영산강(화장동)>
화장동의 강 건너인 광산구 본덕동에는 호가정이 란 정자가 있는데 멀리서 가늠하여 바라만 본다.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제14호)로 지정된 호가정(浩歌亭)은 극락강(極樂江)과 황룡강(黃龍江)의 합류점이 내려다보이는 높평산 기슭에 있는데, 경관이 빼어난 곳이라고 한다. 건물은 1558년(명종 13)에 설강 유사(雪江 柳泗)가 지은 원래의 정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 지금의 정자는 1871년(고종 8)에 중건한 것이다.
<호가정-네이버캡쳐>
유사(1502∼1571)는 1528년(중종 23)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무장현감(茂長縣監), 전라도사(全羅都事), 종성부사(鍾城府事)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만년에 당시의 권신(權臣) 이량(李樑)의 모함을 받아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이황(李滉), 이언적(李彦迪), 오겸(吳謙)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하며 유유자적하였다. 호가정이라는 이름은 중국 송나라의 소강절(邵康節)이 말한 ‘호가지의(浩歌之意)’에서 취한 것이라고 한다. 정자는 정·측면이 다같이 3칸인 정사각형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영산강>
“돌베개에 소나무 그림자 아른거리고/바람 치는 난간에 들 빛이 둘러있네/차가운 강물 밝은 달빛 속에/눈빛 같은 작은 배가 온다//아래는 구강(九江) 있고 위에는 하늘인데/늙은이 일이 없어 풍연(風煙)만 바라본다/바빴던 지난 일을 어찌 생각하리요/강 언덕 조는 새와 말년 벗을 맺었노라” 설강 유사의 <호가정>이란 시가 승촌보로 인도한다. 유사(柳泗)라는 이름이 다소 생소하지만 서산유씨로 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서 태어났다.
<호가정 시비>
승촌보(昇村洑)는 남구 승촌동의 영산강에 있는 보(洑)로 나주평야 일대 농업용수 확보와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보(洑)다.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 10월에 착공하여 2011년 10월 완공되었다. 길이 512m의 보는 가동보 구간 180m, 고정보 구간 332m로 차량통행이 가능하며, 높이는 9m다.
<승촌보>
보의 형태는 나주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형상화하여 디자인 되었다. 가로길이 50m와 30m의 2가지 형태의 수문이 각 2개씩 4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900만㎥의 저수량을 확보한다. 보의 좌측에는 800kw 소수력발전소가 설치되어 연간 464만kwh의 전력을 생산한다. 인근에는 영산강문화관, 승촌보캠핑장, 축구장 등이 있는데 기우는 햇살에 눈 도장만 찍는다.
<승촌보 조형물과 공도>
<영산강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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