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봉도에는 봉황이 날고
(2020년 6월 27일)
瓦也 정유순
승봉도(昇鳳島)!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 승봉리에 있는 섬이다. 면적 2.22㎢, 해안선 길이 9.5㎞, 산 높이 93m,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42km 지점에 있다. 북쪽으로는 자월도, 서쪽으로는 대이작도를 마주한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수도권의 제일가는 관광지인 덕적도(德積島) 남동쪽으로 14km 해상에 있는데, 이 섬을 찾아가기 위해 대부도(大阜島) 방아머리항으로 새벽길을 달린다.
방아머리항은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의 북측에 위치한 소규모 어항이다. 이 지역이 원래는 방아머리섬[대두도(碓頭島)]이었으나 1940년에서 1950년 사이에 염전을 만들면서 대부도와 연결되었다. 방아머리는 구봉염전 쪽에 있는 서의산으로부터 바다로 길게 뻗어 나간 끝 지점으로 디딜방아의 방아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시화방조제가 건설된 뒤 시화호환경문화전시관, 방아머리 선착장 등이 생겨 덕적군도와 풍도로 가는 배가 다닌다.
항구로 이어지는 좁은 도로변에는 승용차를 비롯한 자동차들이 장사진을 이뤄 버스를 입구에서 내려 길을 따라 약800여m 남짓 걸어간다. 승선권 구입과 신분증 확인 등 절차를 마치고 배에 올라 출항을 기다린다. 해무(海霧)가 옅게 낀 바다는 시야를 짧게 하지만 인근의 구봉도 낙조전망대와 멀리 대부도와 영흥도를 이어주는 영흥대교가 보인다.
아침 08시 30분 방아머리항을 출발한 배는 1시간 30분 동안 갈매기의 호위를 받으며 물살을 가르고 오전 10시경에 섬의 북서쪽에 위치에 있는 승봉리 선착장에 도착한다. 여기서 서쪽으로 보이는 섬이 대이작도이다. 선실은 너른 마루로 되어있어 많은 인원이 편한 자세로 앉거나 누울 수 있고, 선실 밖으로 나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주변을 구경할 수 있다. 승봉리 선착장 부근에는 제법 큰 콘도미니엄 숙박 시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찾아오는 손님이 제법 있는 것 같다.
승봉도는 서울 여의도의 4분의 1 크기에 해당하는 섬으로 TV 드라마 <느낌>, <마지막 승부> 등을 촬영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을은 전체적으로 구릉의 기복이 심하나, 중앙부는 분지가 발달하여 농경지로 이용된다. 승봉도 마을은 논밭과 민가, 펜션 등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곳 주민들의 주업은 어업(20%)이 아니라 농업(80%)이라고 할 정도로 농경지가 잘 발달 되었다. 논의 벼들도 이제 뿌리를 땅에 내려 가을의 풍년을 기약한다.
선착장에서 남안(南岸) 방파제를 따라 1㎞쯤 떨어진 곳에는 승봉리 마을이 있고, 이 마을을 왕래하는 자동차들도 분주하다. 비록 넓지 아니한 농토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관광객들을 맞이하기도 하고, 청정해역에서 물고기와 바지락, 굴, 꼬막을 잡거나 캐기도 하며 주민들은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마을 풍경에서 드러난다. 보건지소를 지나 이일레해변에 들어설 때는 석화(石花) 껍질이 많은 것으로 보아 수산자원도 풍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이 승봉도를 가리켜 축복받은 섬이라고 하는가 보다.
마을 남쪽 해안은 승봉도의 상징인 <이일레해수욕장>이 있다. 길이 1.3㎞, 너비 40m의 이일레 해수욕장은 여름이면 피서객으로 붐빈다고 한다. 그러나 이일레해변의 분가루 같던 곱디고운 모래가 점점 줄어들고 불규칙한 돌맹이들이 점점 많아져 잠식해 있다. 주민들의 말로는 건축업자들의 무분별한 모래 채취 때문에 생긴 변화라고 한다. 이러한 급속한 변화는 바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인이 될 수 있어 안타깝다. 모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뭇 생명이 함께 공유해야 할 소중한 자연자산이다.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가 깔린 해수욕장 뒤편 당산으로 올라가는 산림욕장 산책로에는 곰솔이 우거져 있다. 곰솔은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여 해송(海松)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잎이 곰 같이 억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수피(樹皮)가 검다고 하여 검은소나무, 먹솔, 흑송(黑松)이라는 여러 이름이 있다. 초기의 성장 속도는 일반소나무 보다 훨씬 빠르게 자라지만 나중에는 성장 속도가 느려 일반 소나무에 뒤진다고 한다.
당산(堂山)은 가장 원초적인 민간신앙의 하나로, 옛날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마을 근처의 산과 언덕에 대해 외경심(畏敬心)을 가지고 나 자신은 물론 마을 사람들의 평안을 지켜주는 힘을 가진 존재라고 믿어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승봉도 당산(93m)도 옛날에 이곳에 처음 정착한 신씨와 황씨가 이 산에 오르다가 사람 눈물 같은 송진을 뚝뚝 흘리는 소나무를 보고 봄철마다 재를 지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당산이라고 한다. 당산 정상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고 바로 아래에 쉴 수 있는 정자만 있다.
당산에서 데크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온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수줍게 꽃망울을 터트린 해당화는 향기가 매혹적이다. 나무 밑으로는 야생화들이 제철을 만난다. 꽃이 필 때는 흰색이었다가 가루받이[수분(受粉)]가 되면 황금색으로 변하여 금은화로 불리는 인동덩쿨도 한창이다. 천남성류의 독초도 자주 눈에 띈다. 이에 질세라 참나리도 하늘로 솟구친다.
삼림욕장 길을 따라 내려오면 부두치해변이다. 파도가 많이 부딪힌다 해서 ‘부디치’라고도 부른다. 모래와 자갈, 조개껍데기가 섞인 신비로운 해안이다. 그 앞에 작은 돌섬 하나가 있는데 밀물 때는 섬처럼 보이고 썰물에는 모래톱이 드러나는 형태의 목섬이다. 조그만 섬 물이 빠지면 섬까지 건너갈 수 있다. 그 뒤로는 금도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데크 길을 따라 위로 올라오면 동족 끝 지점에 신황정(申黃亭)이란 정자가 있다. 옛날에 신씨와 황씨 성을 가진 사람이 고기를 잡던 중 풍랑을 만나 대피한 곳으로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들어 정착하여 처음에는 신황도로 불리다가, 이 섬 지형이 마치 봉황의 머리 모양과 같다 하여 승봉도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신씨와 황씨는 승봉도 산에 오르며 신황정에서 정화수(井華水) 떠 놓고 기도를 드려 자식을 얻었다는 전설이 구전되어 지금도 임신, 승진, 시험합격 등을 기원하는 곳이라고 한다.
신황정에서 내려와 해변으로 나가면 섬 모퉁이에 촛대바위가 있다. 데크로 이어진 입구에는 삼형제바위가 있고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야 한다. 삼척의 추암 촛대바위와 남해안 홍도 촛대바위보다는 작지만 섬 끝자락 풍경에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섬 주위로 운항하는 선박들의 안전운항을 기원하며 꺼지지 않는 영원한 촛불이어라. 삼형제바위 틈에서 생존하는 온갖 생명들의 강인함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것 같다.
다시 해안과 능선을 넘으면 버끈내해변이 나오고 그곳에는 부채바위가 있다. 측면에서 보면 부채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햇살이 쏟아지면 황금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어느 선비가 유배생활을 달래며 이곳에서 시를 썼고, 다시 유배가 풀려 장원에 급제하곤 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부채바위를 지나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승봉도 최고 절경으로 꼽히는 남대문바위가 있다. 들어갈 때는 덩치만 큰 기암(奇巖)인줄 알았는데, 정면에서 바라보면 해안선에 수평으로 구멍이 나 있는 모양이 남대문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볼수록 코끼리처럼 생겼다. 조선 시대 사랑하는 연인이 다른 섬으로 시집가려 하자 두 사람이 이 문을 넘어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다 해서 지금도 젊은 연인들이 이 문을 지나며 사랑을 꿈꾼다고 한다.
봉황은 상서롭고 고귀한 뜻을 지닌 상상의 새로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 한다. 그리고 ‘새 중의 왕은 봉황’이라고 했는데, 봉황은 모든 새의 우두머리로 여겨지며, 우리의 의식에서 상당히 비중 있는 민속 상상 동물이다. 봉의 앞부분은 기러기, 뒤는 기린, 뱀의 목, 물고기의 꼬리, 황새의 이마, 원앙새의 깃, 용의 무늬, 호랑이의 등, 제비의 턱, 닭의 부리를 가졌으며, 오색(五色)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오늘 승봉도에서의 하루는 봉황의 등을 타고 천계(天界)를 유람하는 황홀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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