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열한 번째-1)
(가양대교∼보구곶리, 2019년 12월 14일∼15일)
瓦也 정유순
강변 보도(步道)로 나가기 위해 지하철 9호선 마곡나루역에서 서울식물원 습지공원을 통해 나간다. 이곳은 옛날 김포공항으로 가기 위해 공항대로를 달리다 보면 한강 쪽으로 들판이 펼쳐지던 곳! 삼[마(麻)]을 많이 심어서 마곡동으로 부르던 곳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어 빌딩 숲을 이룬다. 지하철 9호선 1단계가 개통된 2009년 7월에는 지하철역이 없었으나, 2014년 5월에 개통되었으며, 2018년 9월 인천국제공항철도가 교차하게 되어 환승역이 되었고, 2018년 12월부터는 급행열차도 정차하게 되었다.
<마곡나루역>
서울식물원은 식물원과 공원을 결합한 이른바 ‘보타닉공원’으로서 면적은 축구장 70개 크기에 달한다고 한다. 멸종위기 야생식물 서식지를 확대하고 번식이 어려운 종의 증식 연구, 품종개발 등 식물의 육성이라는 식물연구보전기관 본연의 역할은 물론, 도시 정원문화 확산의 교두보이자 평생교육 기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식물원은 열린숲과 주제원, 호수원, 습지원 등 4개 공간으로 나뉘며 그 중 하이라이트는 식물문화센터와 야외정원이라고 한다.
<서울식물원-2019년 3월>
<식물문화센터-2019년 3월>
밤새 내린 비로 살얼음판이 된 길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나가는데 동쪽으로 서울 궁산(宮山, 74.4m)이 힐끔거린다. 한강 변에 있는 궁산[양천산성(사적 제372호)]은 오랜 세월동안 행주산성(사적 제52호), 오두산성(사적 제351호)과 함께 한강하구를 지키는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은 양천현감을 지내면서 이곳 궁산에 올라와 한강 변의 풍광에 반해 <경교명승첩 京郊名勝帖>·<양천팔경첩 陽川八景帖>·<연강임술첩 漣江壬戌帖> 등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풍의 화첩을 남겼다.
<서울 궁산>
1977년 근린공원으로 지정된 궁산은 현재 서울역과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마곡대교가 궁산 앞으로 지난다. 2010년 12월에 개통된 마곡대교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동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현천동 사이를 연결하는 총길이 1,090m의 철교다. 한강에 놓인 다리 가운데 한강철교와 지하철 2호선의 잠실과 당산철교에 이어 4번째 철도전용 다리다. 그리고 하류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전용인 방화대교가 나란히 한다.
<마곡대교>
방화대교는 서울특별시 입구에 1999년 준공된 다리다. 민간자본 제1호로 한강에 27번째 세워진 다리이며 총 연장거리 약2.6㎞다. 특히 중앙부 540m의 아치트러스트는 비행기 이·착륙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미관이 뛰어나며 남쪽의 개화산과 북쪽의 덕양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인천공항 전용 고속도로이기 때문에 한강 남·북의 자유로나 올림픽도로와의 진·출입이 불가능하여 한강 변 간선도로 간의 교통 분산효과는 미미하다.
<방화대교>
방화대교 밑에는 <고려사절요>에 나오는 “투금탄(投金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고려 공민왕 때 이조년(李兆年)과 이억년(李億年) 두 형제는 어느 날 길을 가다 우연히 금덩이를 주워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양천나루에서 배를 탔는데 배가 강 가운데 이르자 아우가 갑자기 금덩이를 강물에 던진다. 형이 이유를 묻자 금덩이 때문에 형제의 우애를 해칠 것 같아 버렸노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형도 자신의 것을 강에 던진다. 그 후 이 여울을 두고 투금탄이라 불렀다. 이는 물질보다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라는 뜻이다.
<투금탄(投金灘) 조형물>
강 건너에는 행주산성 대첩비가 보인다. 덕양산 정상에 있는 행주산성은 삼국시대 초기 산성으로 추정하나,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 및 한산대첩과 행주대첩 등 3대 대첩으로 더 유명하다. 권율의 지휘하에 한강에서 올라오는 3만의 왜적을 물리친 곳으로 행주치마가 이곳 부녀자들이 앞치마로 돌을 날라 전쟁을 도왔다 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근거는 미약하다. 덕양산 정상에는 조선의 명필 석봉 한호가 쓴 대첩비가 탑처럼 높게 서 있다.
<덕양산(행주산성)>
<방화대교와 덕양산>
겸재 정선은 궁산에 올라 덕양산 아래 한강을 바라보며, 행호관어도(杏湖觀漁圖)를 그렸다. 살구꽃 피는 봄날 덕양산 아래 한강에서 봄의 별미 웅어(위어)를 잡는 그림이다. 겸재 정선은 양천현감 재직 때 웅어를 잡아 임금께 진상하고 나머지는 지인들께 보냈다. 음력 4월 행호의 웅어는 중앙에서 관리가 파견되어 위어소(葦魚所)를 설치하고 상주할 정도로 중요한 진상품이었다. 이로 미루어 행호관어도에 나온 배들은 한창 제철을 만난 웅어잡이 배로 보인다. 행호관어도는 경교명승첩(京校名勝帖)의 19개 작품 중 하나다.
<행호관어도-간송미술관 소장>
강서지역 한강공원은 지난여름에 무성했던 갈대도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옆으로 길게 누워 내년의 풍요를 기약한다. 여의도에서 김포 하구까지 강변으로 잘 발달 된 갈대밭은 자전거 전용도로와 보행자도로로 바뀐 지 오래다. 갈대밭 사이로 난 보행길은 갈바람 품에 안으며 자연과 속삭일 수 있는 공간이다. 한강 하류로 조금 더 내려오면 행주대교고, 서울의 서쪽 끝인 강서구를 지나고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에 들어선다.
<강서지역 한강공원>
김포국제공항이 위치한 강서구는 서울 서남권의 산업·상권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김포공항을 중심으로 남부순환로, 공항로, 올림픽대로, 자유로, 신공항고속도로 등 사통팔달한 도로망과 지하철 9호선, 5호선, 인천 신공항철도가 이어져 교통소통을 자랑한다. 그리고 한국·중국·일본·대만을 잇는 항공 셔틀 노선을 운항 중이고, 공항 주변은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 호텔, 테마공원, 영화관 등이 집중되어 있다.
<김포국제공항-네이버 캡쳐>
행주대교는 서울 강서구 개화동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을 잇는 다리로 3개가 놓여 있다. 처음 다리는 1978년에 너비 10m, 길이 1,400m의 단순 장대교량이 건설되었다. 한강 횡단 교량으로는 천호대교에 이어 열 번째로 가설되었으나, 교량의 노후화로 인하여 1992년부터 10톤 이상의 차량에 대한 통행제한을 실시하였다. 한편 주변에 시가지 개발이 활발해짐에 따라 증가하는 교통량을 흡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행주대교>
이에 따라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198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92년에 완공할 목표로 신교 건설공사를 시작하였으나, 1992년 7월 31일 구조상의 문제로 일부 구간이 무너져 내려 복구공사를 실시한 후 1995년 5월에 하류 쪽(고양시에서 서울 방향) 교량을 완공하였고, 상류 쪽(서울에서 고양시 방향) 교량은 2000년 12월에 완공되었다. 이에 따라 신행주대교는 각각 3차로로 일방통행하게 되어 왕복 6차로의 교량이 되었으며, 구 행주대교는 폐쇄되었다. 그리고 1997년 5월 한강 다리 중에서 최초로 조명시설이 설치되었다.
<행주대교 아래 한강공원>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게 아라뱃길이다. 그리고 강변을 따라 이어지던 보행길이 뚝 끊긴다. 겨우 가파른 도로 절벽을 기어올라 길을 찾아 나선다. 이정표가 없거나 걸어오면서 보지 못한 결과다. 아라뱃길은 원래 있었던 굴포천의 홍수 때 바다로 물을 빼던 방수로를 좀 더 확장하여 2012년에 한강과 연결한 운하로 길이 18km, 폭 80m, 수심 6.3m 규모다. 땅을 파서 육지로 물길을 낸 것은 1638년(조선 인조18)에 안면반도를 끊어 섬으로 만든 이후 처음이다.
<경인아라뱃길-2019년 1월>
한강과 서해를 안전하면서도 빠른 뱃길로 연결시키려는 경인아라뱃길 개척시도는 800여 년 전인 고려 고종 때 시작되었다. 당시 각 지방에서 거둔 조세를 중앙정부로 운송하던 뱃길은 김포와 강화도 사이의 염하강을 거쳐 경창(京倉)으로 들어가는 항로였으나, 염하강은 만조(滿潮) 때만 운항이 가능했고 손돌목(강화군 불은면 광성리 해안)은 뱃길이 매우 험했다.
<경인아라뱃길 갑문 관리사무소>
이에 안정적인 조운(漕運)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당시 실권자인 최충헌(崔忠獻)의 아들 최이(崔怡)는 손돌목을 피해서 갈 수 있도록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직접 연결하기 위해 인천시 서구 가좌동 부근 해안에서 원통현(일명 원통이 고개)과 지금의 굴포천을 거쳐 한강을 직접 연결하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운하를 시도하였지만, 원통현 400m 구간의 암석층을 뚫지 못해 결국 운하건설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아라뱃길 관재소>
그러다 1987년 굴포천유역의 대홍수로 큰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하자 방수로를 신설하여 홍수량 일부를 서해로 방류하는 내용의 굴포천 치수대책을 수립하게 되었고, 또한 방수로시작점(굴포천유역)에서 한강 쪽으로 조금만 더 연결해주면 홍수대비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운하로 활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민자사업자까지 선정하여 사업이 탄력을 받는 듯 하였으나, 환경단체의 반대와 경제성 논란 등으로 사업은 수년간이나 지연되었고, 굴포천유역의 홍수피해가 계속되자 임시방수로공사만 우선 착수하게 되었다.
<경인아라뱃길-김포>
이후 오랜 기간 경인운하사업계획 및 타당성에 대한 재검토가 계속되었고 두 번에 걸친 용역수행 결과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됨에 따라 2008년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민자사업에서 공공사업으로 전환하여 사업시행자를 한국수자원공사(K-water)로 변경, 2009년 3월 착공하여 2012년 5월 25일 준공 되었다. 그리고 아라뱃길의 ‘아라’는 민요 아리랑의 후렴구인 ‘아라리요’의 ‘아라’에서 따온 말이자 바다를 뜻하는 옛말이다.
<경인아라뱃길 정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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