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양양의 휴휴암과 속초의 영랑호를 가다

와야 정유순 2016. 1. 11. 01:12

양양의 휴휴암과 속초의 영랑호를 가다

(201619)

瓦也 정유순

   양양의 동해안 절벽 위해 세워진 관음성지 휴휴암(休休庵)을 가는 길목에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을 쓴 교산 허균(蛟山 許筠, 15691618)이 태어난 강릉시 사천면 사천리에 들른다. 교산(蛟山)은 오대산에서 뻗어 나온 산자락이 마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형태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교산 아래 허균의 외가인 애일당(愛日堂)이란 곳에서 태어났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고, 허균의 시비만 외롭게 서있다. 

 

반 항아리 차를 달이고

​한잡음 향 피우고

외딴 집에 누워

건곤고금을 가늠하노니

사람들은 누실이라 하여

살지 못하려니 하건만

나에게는 신선의 세계인저

   시비에 있는 "누실명"이란 시 구절이나 음각으로 새긴 글씨의 골이 얕고 빛에 반사되어 읽기가 매우 어렵다. 만약에 허균의 호나 태어난 곳이 이무기()가 아니고 용()자가 들어 간 곳이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마을 앞으로 내려와 주문진항으로 이동한다.

 

   오징어 형상을 한 주문진항 간판을 지나 항구주변에는 출어를 앞둔 어부들의 손길이 잠시도 멈추질 않고, 밤새 잡아 올린 생선들은 주인 찾기에 여념이 없다. 194010월에 읍으로 승격한 주문진(注文津)은 구 명주군에 속해 있다가 도농통합 때 강릉시로 편입된 곳으로, 지금은 강릉시의 외항으로 오징어 청어 고등어 등의 집산지이다. 옛날에 그 많이 잡히던 명태는 기후변화의 영향인지 눈에 띠질 않는다고 한다. 오래 전 출장길에 오징어물회(일명 오징어국수)로 속을 풀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주문진에서 약1.5km쯤 떨어진 소돌해안은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소돌(牛岩)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주변에는 산책로, 전망대, 성황당, 아들바위 등 볼만한 기암괴석 들이 많이 있다. 입구에는 부딪쳐서 깨어지는 물거품만 남기고 가버린 그 사람을 못 잊어 웁니다.∼♩∼♩배호의 파도라는 노래비가 구슬픈 노래 가락으로 불러 보게 하는데, 실제로 500원 동전을 주입구에 넣으면 배호의 노래가 파도소리와 어우러져 바다로 퍼진다.

 

   노래비 옆으로 너럭바위를 지나 계단과 다리로 연결해 놓은 바위를 밟고 다니며 공원과 바닷가의 풍경을 만끽한다. 파도와 바람에 의한 해식작용(海蝕作用)에 의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아들바위, 코끼리바위 등 절묘한 바위들이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아들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그 외 다른 바위들도 자연이 빚어낸 작품처럼 파도와 속삭이는 저마다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아들바위 앞 물속에는 기도에 의해 태어나는 아기모습의 동자상은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이 바위는 옛날 노부부가 백일기도를 하여 아들을 얻었다는 소문이 난 후 더 유명해져 자식을 원하는 부부들과 특히 신혼부부들이 자주 찾아와 득남을 원하는 기도를 많이 올린다고 한다.

   남애항을 지나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 7번 국도에서 낮은 고개를 넘으니 동해의 숨겨진 비경이라 할 만한 휴휴암이 바로 나온다. 휴휴암(休休庵)에는 바다 속에 거북이 모양을 한 넓은 바위가 평상처럼 펼쳐져 있고,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부처가 누워있는 모습의 바위가 보인다고 하는데, 업보가 많아서 그런지 잘 보이질 않았다.

 

   해변의 너럭바위 위에는 동해해상용왕단에게 언제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단이 차려져 있으며, 그 옆으로 큰 바위 3개는 가운데 바위가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다. 우측의 다른 너럭바위 위에는 높이 53척의 해수관음보살상이 이곳을 찾는 이들의 안녕을 발복하는 것 같다. 해변으로 나가는 중앙 길목에는 어느 대기업이 이 암자와 부동산 매입관계로 분쟁 중에 있는지 길을 막은 철조망과 관련 글귀가 볼썽사납다.

 

 

 

   해방 후 우리국토의 분단선이었던 38도선을 지나 속초에서 생선구이로 오전을 마무리 하고 영랑호반 둘레 길을 걷는다. 영랑호와 청초호는 화진포호, 경포호, 송지호 등과 같은 석호(潟湖). 석호는 원래 육지 안으로 쑥 들어온 바다였으나 조류(潮流)작용 등에 의하여 모래 둑이 쌓이어 호수가 된 곳으로, 바다로 연결되는 수로나 둑 밑으로 바닷물이 드나들어 바다생물과 육지생물이 공존하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는 생태계의 보고다.

   영랑호(永郞湖)는 옛날 화랑이었던 영랑(永郞)이 술랑(述郞) 안상(安詳) 남랑(南郞) 등 다른 동료들과 금강산에서 수련을 마치고 명승지 삼일포에서 헤어져 동해안을 따라 서라벌로 돌아가는 길에 이 호수를 발견하게 되는데, 명경과 같이 맑고 잔잔한 호수에 반했다는데서 유래한다고 하였으며, 그때부터 영랑호는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오후의 강렬한 햇볕은 쌀쌀한 날씨를 상쇄한다. 수면 위에는 오리 때가 한 무리를 이루고 백로도 옹기종기 모인다.

 

   호반 길을 거의 한 바퀴 돌 즈음 커다란 바위가 앞을 막는데 이것이 범바위다. 범바위는 카메라 한 컷으로 잡기 힘들 정도의 크기로 위용을 자랑한다. 바위 사이 입구를 따라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설설 긴다. 바위의 넓은 엉덩이에는 하트문양이 문신처럼 박혀 있다. 설악을 배경으로 맑은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울산바위 옆으로 미시령 고갯길이 여인네 허리처럼 잘록하다. 내려오는 계단 옆으로 옛 금장대 터에 영랑정을 2005년도에 신축하였다고 한다.

 

 

 



   속초의 내항으로 이용하고 있는 청초호 입구로 이동하여 동력 없이 줄로 이동하는 갯배를 타고 약100여 미터를 아바이 순대마을로 간다. 이북이 고향인 주민들은 한국전쟁 때 오셨다가 휴전선으로 길이 막혀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정착했다고 하는데,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못 가는 마음이 얼마나 애처로울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고향에서 즐겨 먹던 순대와 가제미 식혜, 명태회 등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어 상품화 되었다. 좁은 골목에서 순대 한 접시와 막걸리 한 사발에 태양은 설악산(雪嶽山)으로 기우는데, 괜히 발걸음만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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