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제주도와 한라산 속살 엿보기(3)

와야 세상걷기 2017. 6. 17. 19:30

제주도와 한라산 속살 엿보기(3)

(201764, 영실윗세오름어리목)

(201765, 돈네코탐방로사려니오름 입구)

瓦也 정유순

   첫날은 한라산 등정을 위한 워밍업이었다면 어제는 영실을 거쳐 윗새오름을 오르고, 진달래 능선을 따라 백록담 남벽까지 갔다가 어리목으로 내려오는 장정을 위한 몸 풀기였나 보다. 철쭉꽃이 활짝 핀 영실 큰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로 영실입구까지 이동한다.

<영실 입구 철쭉>


   영실(靈室)은 백록담 서남쪽 해발 14001600지점의 거대한 계곡 우측에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을 말한다. 웅장하고 둘러친 모습이 마치 석가모니가 불제자에게 설법하던 영산(靈山)과 비슷하다고 해서 영실이라 했다고 한다. 또한 기암괴석은 나한을 닮았다 하여 오백나한(五百羅漢)이라고도 하고, 우뚝 선 모습이 장군을 닮았다 하여 오백장군이라고도 한다.

<영실 표지석>


   그러나 영실기암에 얽힌 전설은 한 어머니에게 오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들에게 죽을 먹이기 위해 큰 가마솥에 죽을 끓이다가 실수로 어머니가 솥에 빠져 죽었다. 외출 후 돌아온 아들들은 여느 때보다 맛있게 죽을 먹었다. 마지막으로 귀가한 막내가 죽을 뜨다가 뼈다귀를 발견하고 어머니의 고기를 먹은 형들과 같이 살 수 없다 하여 차귀도에 가서 돌이 되어 버렸고, 너머지 499명은 한라산으로 올라가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영실계곡>


   영실(1280)에서 탐방로를 따라 발을 내딛는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오백나한들의 위엄은 더 가깝게 다가온다. 자연에서 뿜어 나오는 기는 내 몸을 사로잡는다. 영실기암은 다양한 형태의 바위들이 하늘로 치솟고 그 위용은 장엄하다.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보리수()나무는 향기로 함께 휘어잡는다.

<영실기암>


   영실계곡의 둘레가 약2, 계곡 깊이가 약350그리고 오천여 개의 기암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는 한라산을 대표하는 절경이다. 이 절경을 지키고 있는 병풍바위는 머리에 붉은 철쭉이 피어 갈기를 아래로 뻗어 장식을 하고 제주도의 모든 바람을 잠재울 것 같은 위세여서 영실계곡은 고요하다. 붉은병꽃의 도열 속에 뒤로 산방산이 멀리 보이는 대신 백록담의 암벽은 더 가까워지며 윗세오름대피소에 도착한다.

<한라산 철쭉>

<병풍바위 위의 철쭉밭>

<영실 병풍바위>

<한라산 붉은병꽃>


   윗세오름은 1100고지 부근의 세오름 보다 위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붉은오름, 누운오름, 족은오름을 함께 부르는 이름이다. 윗세오름 전망대에 올라서면 선작지왓의 넓은 고산평원과 백록담 화구벽, 만세동산과 볼레오름 등의 오름 군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범섬, 마라도, 차귀도, 비양도 등 제주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광이 아름답다.

<윗세오름전망대>

<서귀포시-윗세오름전망대>

<산방산-윗세오름전망대>


   선작지왓은 한라산 고원 초원지대의 작은 돌이 서 있는 밭이라는 의미를 지닌 곳으로 키 작은 관목류가 넓게 분포되어 있는 가운데 다양한 식물들이 서식하는 고원습지로서 생태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특히 한라산 고원 초원지대 중 영실기암 상부에서 윗세오름으로 이어지는 4월부터 6월까지의 털진달래의 연분홍색과 산철쭉의 진분홍색이 뒤덮는 장관이라고 하는데, 털진달래는 시절이 지난 것 같고 철쭉은 지금 막 제철이다.

<선작지왓>

<선작지왓>


   그저께(62) 한라산 정상에 올라섰을 때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날씨가 너무 좋았는데, 오늘도 맑은 날씨라 화구벽의 땀구멍까지 훤히 보이는 것 같다. 25년 전인가 옆 지기와 제주도에 휴가 차 왔다가 마지막 날 영실에서부터 한라산 등정을 하다가 남벽 바로 앞에서 비행기 시간 때문에 되돌아서야 했던 기억이 방정맞게 되살아난다. 아마 그 때도 철쭉만 바람 때문에 키를 낮추고 구름은 화구벽을 자주 가렸었다.

<백록담 남벽>

<백록담 남벽>


   오늘은 남벽을 통해 백록담으로 가는 길이 폐쇄되어 되돌아와 방아오름전망대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오전을 마감한다. 방아오름전망대에서 방아 대신 도시락을 까먹는 다는 것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순간이 아니었던가. 방아오름은 남벽 아래에 있는 오름으로 모양이 방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그저께 한라산 정상을 다녀왔기 때문에 오늘의 이 광경은 덤으로 받는 소중한 선물이다.

<백록담 남벽과 방아오름(남벽 아래 푸른부분)>

<노루샘>


   백록담 화구벽 위로 흰 구름이 부챗살처럼 퍼지는 광경이 아름답고 바위 틈새에 뿌리를 박고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철쭉 등 뭇 생명들을 뒤로하며 다시 윗세오름휴게소로 내려와 숨을 고른 후 어리목탐방로를 따라 내려온다. 모노레일은 휴게소에서 필요한 물건을 운반하는지 산에 들어와 처음 들어보는 기계소리라서 생소하기 까지 하다.

<백록담 화구벽>

<윗세오름>

<윗세오름 모노레일>


   조금 내려오니 만세동산전망대가 나온다. 백록담(화구벽) 좌측으로는 장구목오름과 민대가리동산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방금 다녀온 위세붉은오름이 보인다. 장구목오름은 삼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장구 같이 좁아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민대가리동산은 정상부분에 나무가 자라지 않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만세동산은 옛날에 한라산에서 소와 말을 방목했을 당시에 높은 곳에서 우·(·)를 감시했다고 하여 망동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백록담(중) 장구목오름(좌) 윗세붉은오름(우)-만세동산전망대>


   제주도 한라산은 지구상에서 오직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구상나무가 사는 곳이다. 구상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늘 푸른 나무로 힘찬 기상을 가진 우리 토종나무이다. 지리산과 덕유산 등에도 구상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가장 많이 자라고 있는 곳은 바로 한라산이다. 백록담을 중심으로 해발 약1400이상 약6의 넓은 면적에 숲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는 구상나무를 살아 백년 죽어 백년이라고 하는데, 이는 구상나무가 죽어서까지 한라산을 지킨다는 뜻일 것이다.

<구상나무 꽃과 열매>

<구상나무 고사목>


   만세동산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오면 사제비오름 또는 사제비동산이 나온다. 오름의 형상이 죽은 제비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제비동산은 만세동산과 함께 윗세오름과 어리목구간을 오르고 내려갈 때 주변의 조망을 보며 쉬어가는 곳이다. 어리목탐방로는 한라산 서북쪽에 있는 탐방로이다. 영실부터 백록담 남벽 밑에 까지 갔다가 윗세오름을 경유하여 어리목까지 이어지는 오늘의 대장정을 마감한다.

<어리목의 한라산 표지석>

<한라산 화산암>


   밤새 깊은 잠을 잤는지 몸이 한결 가뿐하다. 조반을 마치고 한라산둘레길 수악길로 가기 위해 돈네코탐방로안내소 쪽으로 간다. 가는 길목에는 처음에는 은()색으로 피었다가 수분(受粉)이 되면 금()색으로 바뀌는 인동초(일명 금은화)가 제주 돌담에 피어 있고, 그 담장 안에는 어느 집안 조상의 산소(山所)가 공원묘지처럼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돈네코탐방로 안내소>

<인동초-금은화>

 <가족공원묘원>


   돈네코탐방로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꺾어 들어가면 백록담 남벽분기점이 나오지만,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한라산둘레길로 접어든다. 한라산둘레길은 한라산국립공원 내 해발 600800의 국유림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80의 숲길로, 일제강점기 때 병참로와 임도, 표고버섯재배지를 연결하는 운송로 등을 활용하여 연결한 산책코스이다.

<돈네코탐방로 이정표> 


   한라산둘레길로 접어들자 수악(水岳)길 방향표지판이 나온다. 수악길은 돈네코탐방로에서 사려니오름 입구 사이의 16.7의 구간으로 물오름(수악), 보리오름, 이승이오름 등이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수악길 중간에 있는 신례천은 성판악에서 백록담으로 가는 중간지점에 있는 사라오름에서 발원하여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로 흐른다. 이 계곡은 천연기념물 제204호인 팔색조 도래지로 알려져 있다.

<수악길로 가는 길>

<팔색조-네이버캡쳐>


   숲속으로 들어갈수록 원시림에 가까운 숲들이 하늘을 가린다. 제주도에 온 첫날부터 숲속의 나무무리들 중에 생김새가 고무나무와 비슷한 나무가 자주 눈에 띤다. []속에서도 푸르름을 자랑한다는 굴거리나무이다. 햇빛을 받으면 광택이 나는 넓고 두터운 가죽질의 잎으로 겨울 추위 속에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다가 봄이 되면 기지개를 펴듯 피어난다고 한다. 굴거리는 상록활엽수로 따뜻한 지역에 사는 나무이지만 추위에 강하여 한라산 해발 1200고지에서도 잘 자란다.

<굴거리나무>


   겉에서 보기에는 어둠속으로 들어가는 숲이었으나, 숲으로 들어갈수록 푸른빛이 더 빛나는 산소(酸素)궁전이다. 누구의 간섭 없이 자기들끼리의 생존경쟁에 의해 적자생존(適者生存)한 생물들이 그들의 질서를 유지해 가며 살아가는 평화의 세계이다. 새들이 노래하고 또 노래한다. 등이 굽어 목마가 되어버린 나무가 있어도 누구 하나 시비를 걸지 않는다.

<목마가 된 나무>


   숲속에서 원족(遠足)온 기분으로 도시락으로 오전을 마감하고 이승이오름(이승이악) 순환코스로 가기 위해 제주도 지방 1131호 도로를 건너간다. 당시 해안도로로 다섯 시간 이상 걸리던 제주시서귀포시를 한 시간여로 횡단할 수 있는 1131호 도로는 지금도 일명 516도로라고도 부른다. 1961516쿠데타가 발생한 후 병역을 기피한 자들을 병역 대신 노역으로 대체 투입하여 19623월에 기공, 196910월에 완성된 도로이다. 이후 확장공사가 이루어져 현재의 넓은 도로가 되었다.

<1131호 도로-일명 5.16도로>


   숲속으로 흐르는 신례천은 제주도의 지질 특성상 건천(乾川)으로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이다. 이는 제주도의 화산암류와 화산쇄설물은 투수력(透水力)이 좋아 지하수를 함양하는 능력은 우수한 반면, 지표수를 차집(遮集)하여 강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빈약하여 물이 항상 흐를 수가 없다. 따라서 집중호우 시에 지하수의 과포화로 형성된 지표수와 한라산 고지대 상류부 대량의 물을 바다로 급속하게 운반시켜 주는 배수로 역할만 수행한다. 이러한 현상을 내 터지는 현상이라고도 한다.

<신례천-건천>

<신례천과 나무>


   또한 숲속에는 낮은 돌담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이를 구분담이라고 한다. 구분담은 일제강점기 때 국유지와 사유지를 구분하기 위해 쌓은 돌담이다. 당시 일제는 토지조사를 실시한 후 토지소유자가 명확하지 삼림지와 국영목장지 일부를 국유지로 편입하여 국유지와 사유지를 구분하기 위해 경계선을 따라 돌담을 쌓도록 하였다. 이것은 식민지 당국과 주민 간에 발생할 수 있는 토지소유권 분쟁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이곳의 구분담은 신례리 주민들이 마을에서 돌을 운반해와 직접 쌓았다고 한다.

<구분담>

<구분담>


   이승이오름(이승이악)에도 첫날 갔던 거문오름처럼 2개소의 일본군 갱도진지(坑道陣地)가 있다고 한다. 1개소는 갱도 내부까지 확인하였는데, 다른 1개소는 갱도 진입부만 굴착하다 중단했다고 한다. 또 가까운 곳에는 숯가마터[木炭窯]가 있다. 전체적인 형태는 반원형을 띠고 있으나 연소부는 중앙으로 오목하게 만입되어 있고, 가마는 반지하식의 석축요(石築窯)이다.

<갱도진지 안내판>

<제주 산간의 집터>


   이승악에서 확인되는 화산분출물 중에 눈에 띠는 것은 오름의 북편 아래에 군집을 이루는 거대한 바위덩어리이다. 이것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에서나 봄직한 뿌리가 화산암을 길게 감싸고 내린 나무뿌리와 성장한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승악에서 내려와 팽나무 숲을 지나 삼나무 숲을 빠져 나오면 사려니오름 입구에 당도한다.

<나무뿌리에 감긴 화산암>

<삼나무 숲과 기생초>

<사려니오름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