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제주도와 한라산 속살 엿보기(5 完)

와야 세상걷기 2017. 6. 20. 21:22

제주도와 한라산 속살 엿보기(5 )

(201767, 삼다수숲길물영아리오름)

瓦也 정유순

   배낭 속까지 흠뻑 젖은 짐들을 챙기며 제주의 마지막 밤을 뒤척인다. 젖은 몸에 한기까지 찾아와서 혹시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었는데, 몸이 더 가뿐하고 상쾌하다. 단 며칠간이라도 출퇴근하듯 조석으로 드나들었던 숙소도 정이 들었나 보다. 애써 아쉬운 마음을 감추며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삼다수 숲길로 이동한다.

<숙소> 


   한라산 북동쪽에 위치한 교래리는 중산간마을로 약700여 년 전 화전민들이 평평한 땅을 개간하여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 같다. 옛이름은 도리이며 주민들은 도리마을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 남서쪽 대원목장에서부터 하동(뒷숭문)에 이르는 약1의 암반이 길게 다리 모양의 형체를 하고 있어 다리 삼아 건너다녔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결국 다리 교() 올 래()자를 써서 교래리가 되었다.

<교래리 설촌 유래>

 

   이 지역은 한때 마을이 번창하여 중산간마을 중에 선흘리 다음으로 큰 마을이었던 교래리도 43사건의 영향으로 마을이 전소되고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져 폐촌(廢村)되었다가 최근에 복구되었다고 한다. 선흘리는 한라산 기점으로 교래리 보다 고도가 낮은 곳에 위치한 이웃마을로, 우리가 제주도 첫날에 찾았던 선흘곶 동백동산이 있는 마을이다.

<삼다수 숲길 입구>

   삼다수 숲길은 200911월부터 20107월까지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와 교래삼다수마을에서 과거에 사용되던 임도를 활용하여 조성한 숲길이다. 1코스 5.2, 2코스 8.2의 완주코스로 봄에는 복수초 군락이 아름답고, 여름에는 산수국군락이, 가을에는 하천을 따라 물드는 단풍이 절경이라고 한다. 이 길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분재형 숲으로 수목이 지니는 경관미와 가치, 난대 낙엽활엽수림의 가치 등을 인정받아 2010101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천년의 숲 부분 어울림상을 수상했다.

<삼다수 숲길 안내도>


   삼다수 숲길에 들어서서 목장입구에 다가서자 흰 토끼가 풀을 뜯다 인기척에 놀라는 눈치이지만 초등학생 시절에 토끼를 키웠던 옛날 생각이 불현 듯 스쳐지나간다. 마장(馬場)안에는 여러 마리의 말들이 아침 구보(驅步)를 하는지 종횡무진하게 빨리 달린다.

<토끼>

<달리는 말>


   남서쪽으로 한라산을 바라보며 삼나무 숲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쭉 뻗은 삼나무는 군더더기 없이 세상을 수직으로 바꿔 놓는다. 1970년대 말 산림녹화(山林綠化) 사업으로 조성했다고 하니 거의 40년이 가까워진다. 사려니 숲에서도 이미 보았지만 삼나무 숲 밑에는 다른 식물들의 개체 수가 적고 독성이 강한 큰천남성류의 식물들이 군락을 이룬다.

<삼나무 숲길>


   안으로 더 들어갈수록 숲 그늘이 더욱 짙어지며 빽빽한 삼나무 그늘 때문에 빛 한줌 들어오기 어려운 모양새다. 그러다가 삼나무 숲을 돌아 나가면 키 작은 조릿대가 풍경을 바꿔 놓는다. 조릿대는 우리나라 산중턱 이하의 숲이나 개활지에서 자라는 관엽식물로 물 빠짐이 좋고 반그늘 또는 양지에서 잘 자란다. 줄기는 곡식을 이는 복조리를 만들고 잎과 줄기는 해열제 등 약용으로 쓰인다.

<조릿대>


   복조리는 섣달 그믐날 눈이 하나인 야광귀(夜光鬼)가 나타나 신발을 신고 달아나기 때문에 신발을 감추고 대신 채나 복조리를 대문이나 방문 위에 걸어 놓으면 채나 복조리의 올을 밤새 세다가 첫닭이 울면 미처 신을 신어보지 못하고 달아나 버린다고 믿었다. 일 년 동안 매달아 둔 복조리는 내려서 곡식을 이는데 썼다고 한다.

<복조리-네이버캡쳐>


   그러나 한라산에서는 이상번식으로 조릿대공원이 되어 국립공원에서 제외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지적을 환경부로부터 받고 심각한 고민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2016년을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한 조릿대 제거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한라산 식생복원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느 한 종이 어느 한 지역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물군들이 분포하면서 경쟁하며 공존해 가는 것을 말한다. 아울러 고사목이 되어 개체수가 점점 줄어드는 구상나무도 함께 복원한다고 한다.

<한라산 원경>


   삼다수 숲길은 곶자왈 지형으로 용암이 굳어서 생긴 크고 작은 바윗덩어리들이 부서져서 생긴 지형이다. 이곳의 물은 하늘에서 내린 비가 땅속으로 스며들면서 화산송이와 암반에 걸러져 제주 지하수의 원천이 되고 있다. 곶자왈은 자왈의 합성어로 된 제주 고유어로서 곶은 숲을,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뒤엉켜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표준어의 덤불에 해당된다.

<곶자왈 길>


   아마 요철(凹凸)이 심한 길에는 야자수 메트를 깔았는지 포근한 길을 따라 반환점을 향해 간다. 어떤 나무는 주변의 나무들처럼 곧게 자라지 못하고 흉내 내기도 힘든 허리가 꼬인 자세로 하늘을 향한다. 어쩌다 꼬인 것인지 우리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깊은 사연이 있는 가 보다. 코스 자체가 한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어서 교행하는 다른 사람은 만나기가 매우 힘들 것 같다. 고독을 즐기며 사색하기에는 딱 좋은 길이나, 혼자서 걷기에는 좀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기둥이 꼬인 나무>

<삼나무 숲길 반환점 표지>


   반환점을 돌아 출구를 나와 약1쯤 더 걸어서 휴게소가 있는 교래리 퐁낭에서 제주 특미인 흑돼지수육으로 몸보신을 하고, 오후에는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 있는 물영아리오름으로 이동한다. 수망리 마을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남동쪽에 위치한다. 어제 비를 흠뻑 맞고 걸었던 머체왓 숲길이 있는 남원읍 한남리는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바로 이웃하고 있다. 수망(水望)물영아리오름의 옛 이름인 물보라오름의 한자차용표기이고 물영아리오름 앞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여 수망리(水望里)라 붙여진 이름이다.

<수망리 마을 안내도>

<물영아리오름과 목장>


   표시된 길을 따라 들어가자 소들이 한가롭게 꼴을 뜯는 넓은 목장을 좌측으로 끼고 돌아 물영아리오름 숲길로 접어든다. 오름으로 가는 길은 좌측이나 우측으로 우회하여 가는 길도 있으나, 우리는 거리가 가장 가깝고 경사가 심하다는 직선코스를 택하여 올라간다. 목장을 벗어나면 우거진 삼나무 숲이 나오고, 숲 사이로 거의 50° 경사에 가까운 나무계단은 좀 숨이 차다.

<물영아리오름 코스>

<물영아리오름 직선코스>


   몇 차례 숨을 고르고 오른 정상(508)에서 다시 분화구 쪽으로 내려간다. 수령산(水靈山)으로도 불리는 물영아리오름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소화산체이다. 분화구 내의 습지를 중심으로 주변지역들이 습지보존법이 제정된 이후 처음으로 2000년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독특한 지리학적 특성과 생태의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20066월에는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어 보호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물영아리오름 분화구 습지>


   물영아리오름 산정부에 있는 함지박 형태의 산정화구호(山頂火口湖)는 넓은 초원으로 보이지만 다양한 습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물영아리오름 전체가 예덕나무, 참식나무, 때죽나무 등 상록활엽수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고, 숲 그늘 밑에는 섬새우난, 큰천남성, 금새우난, 사철난 등이 자생하고 있으며, 야생동물인 노루와 오소리 등 척추동물, 독사와 꽃뱀 등 파충류, 개구리와 두꺼비·맹꽁이 등 양서류가 다양하게 고루 분포되어 있어 자연생태계의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물영아리오름 분화구 습지>

<물영아리오름 분화구 습지>


   다시 분화구에서 정상부로 올라와 전망대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온다. 계단 옆에는 팔뚝의 근육을 자랑하는 나무가 눈길을 끈다. 전망대에 당도하니 제주도의 북동부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표선면 가시리 쪽의 모 항공사 비행훈련원 항공대와 제주도의 바람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간다.

<팔뚝 근육형 나무>

<항공사 비행훈련원>

<풍력발전 단지>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잣성이 있다. 잣성은 조선시대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 국영마목장인 십소장을 설치하면서 축조한 것이다. 잣성은 위치에 따라 제주도 중산간 해발 150m250m 일대의 하잣성, 해발 350m400m 일대의 중잣성, 해발 450m600m 일대의 상잣성으로 구분하고, 하잣성은 말들의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상잣성은 말들이 고산지역으로 들어갔다가 동사(凍死)피해를 막기 위해, 중잣성은 상잣성과 하잣성 사이에 돌담을 쌓아 만든 것이다. 십소장(十所場)은 제주도지역에 1430년부터 세종의 지시로 세워진 10개의 국영목마장이다.

<잣성 설명문>

<잣성>


   물영아리 탐방안내소 쪽으로 내려와서 이번 7일 간의 제주도 트레킹을 마감한다. 그러나 제주도에 올 때마다 마음에 앙금처럼 남는 게 43사건이다. 43사건은 194731절 기념행사에서 약간의 소동으로 경찰이 발포하여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을 기점으로 19484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9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한라산 중산간지역으로 피신한 제주주민들-두산백과>


   좌·우 이념이나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수 만 명의 생명들이 주검으로 변했다는 것이 우리들의 슬픈 근대사다. 이곳 주민들도 1978년 현기영(玄基榮, 1941. 1. 16)의 소설 <순이삼촌(順伊三寸)>이 발표되면서 그나마 봉했던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순이삼촌은 제주도의 역사적 43사건을 작품소재로 삼아 문학을 통해 민중의 역사를 재조명한 소설이다. 현기영은 이 작품으로 필화사건을 겪는 등 개인적인 고통이 따르기도 했다.

<집단학살 후 마을을 불태우는 순이삼촌 장면-제주의 소리>


   이 사건으로 제주도민들은 피해자가 분명함에도 43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때에는 주변의 눈치를 많이 살핀다. 돌아서서 목 놓아 울망정 되도록이면 말을 아낀다. 하룻밤 사이에 평화롭던 마을이 사라지고 이웃집의 친근한 아저씨나 사내이면 삼촌이 되었던 그들이 주검으로 변하여 흔적조차 사라져 버리는 그 슬픈 삶을 겪어야 했던 제주도사람들이 진정으로 말을 아낀다.

<제주 43평화공원 전경-네이버캡쳐>


   우리가 제주도에 와서 일주일 내내 다녔던 선흘곶동백동산과 거문오름(1), 한라산 백록담(2), 사려니 숲길(3), 영실과 윗세오름, 어리목(4), 돈네코탐방로와 사려니오름 입구(5), 머체왓숲길과 서중천(6) 그리고 오늘 갔던 삼다수숲길과 물영아리오름 등도 43사건과 관련된 곳들이다. 그리고 유독 돌이 많은 제주도에서 배운 것은 걸을 때 발에 걸리면 걸림돌이 되고, 발로 밟고 가면 디딤돌이 된다는 것을……

<숙소에서의 일출-6월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