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구룡령 옛길을 따라

와야 정유순 2022. 7. 12. 06:49

구룡령 옛길을 따라

(2022 7 2)

瓦也 정유순

  모든 생물들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하고, 그 움직일 때 그 궤적이 길이 된다. 그 생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인(動因)은 첫째는 먹이[()]를 찾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생식(生殖)을 위해 이동으로 생기는 게 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물의 일원인 사람도 식()과 생식(生殖)을 위한 활동으로 길을 만들었고, 그 다음으로는 이웃과의 소통(疏通)을 위해 길이 생긴다. 그래서 이란 인간의 생존을 연결하는 공간적 선형으로 인류사와 함께 생성·발전한다

<구룡령 옛길>

 

  장마철에 새벽 공기를 가르고 찾아온 <구룡령 옛길>도 백두대간 마루금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어진 영동(양양)과 영서(홍천)를 잇는 소통의 길이었고, 중요한 상품을 교환하는 옛길로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찾아 넘나들었던 길이다. 산세가 험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보다 산세가 비교적 평탄하여 양양·고성 지방 사람들이 주로 이 길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구룡령 능선>

 

  또한 구룡령은 아홉 마리 용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지쳐서 갈천리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아흔아홉 구비가 용의 형태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양양, 고성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한양으로 갈 때 용()의 영험함으로 과거 급제를 기원하며 일부러 넘나들었던 길이다

<구룡령 옛길>

 

  지금의 구룡령 길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동해안 물자를 수탈하기 위해 1908년 홍천군 내면 명개리와 양양군 서면 갈천리를 잇는 도로를 개설하면서 기존의 길은 잊혀 지기 시작하여 사람만 다니던 구룡령 길은 옛길이 되어 버렸다. 옛길은 자동차가 다니는 지금의 구룡령의 위치에서 점봉산 쪽으로 백두대간을 타고 조금 올라가면 나온다. 그래서 구룡령은 자동차가 다니는 정상(1,031m)과 옛길 정상(1,089m)으로 구분해야 이해가 될 것 같다

<국도 56호 구룡령-2015년 9월>

 

  우리가 탄 버스는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를 타고 서양양 나들목을 나와 국도 제56호로 양양 쪽에서 구룡령 정상을 넘어 홍천군 명개리에 도착하였고, 두 발로 <구룡령 옛길>을 따라 다시 양양군 갈천리로 넘어 간다. 1981 3월에 지정된 국도 제56호는 철원 김화에서 시작하여 춘천과 홍천을 지나 양양까지 이어지는 일반국도로 오대산과 점봉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구간을 단절시켰는데, 2000년도에 도로 위로 생태통로를 개설하였다

<구룡령 생태통로-2015년 9월>

 

  버스에서 내려 명개리 명지마을의 명지거리길로 들어섰으나 구룡령 옛길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다시 나와 양상치를 재배하는 고랭지 채소 밭고랑을 따라 촉촉이 젖은 숲길로 들어선다. 어제 내린 비로 물을 머금은 채소들은 마냥 즐거워 환한 얼굴로만 보이는데, 길옆에는 빈 집인지 짓다 만 건물인지 알 수 없는 흉물이 기괴(奇怪)하다. 사연이야 다 있겠지만 무슨 일이던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마무리하는 모습이 아쉽다

<구룡령 옛길 입구 명지마을>

 

  명개리(明開里)는 해발 600m이상의 고지대에 있으며, 우리나라 읍, 면 중에서 면적이 가장 넓다. 명개리는 본래 메밀앗골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옛날 이곳에 어떤 사람이 메밀 아홉 이랑을 심어 아홉 섬을 수확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고랭지 채소와 감자, 풋고추 등을 재배한다. 또 명개리는 멸종 위기종인 열목어가 서식하여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고냉지 채소 밭>

 

  전날까지 장마 비가 내린 뒤라 산과 밭의 목초(木草)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생기가 돌아 생글생글 웃고 있었으며, 맑은 하늘엔 하얀 구름이 곱게 수놓은 미소로 조용히 환영하는 모습이다. 구룡령 옛길 등산로 안내판은 이렇게 커다랗게 버티고 섰는데 정작 들머리를 찾기가 꽤 어려웠으며, 수풀을 헤치며 걷다 보니 속도가 더뎌진다

<구룡령 등산로 안내>

 

<구룡령 옛길 초입>

 

  우거진 숲 사이로 살짝 들어오는 햇살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는 높다랗게 날아들며 우짖는 산새들 소리와 바람결에 따라 우는 나뭇잎들의 속삭임이 스며들었고, 그 옛날의 굽이굽이 걸어 넘던 선조들의 고된 삶이 그대로 전해지는 숲길이었다. 바람이 싣고 온 향기와 봄부터 자란 나물들의 냄새가 어우러지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풀 섶이 덮여 길은 보이지 않고, 옛 조상님들의 고된 추억만 그 속에 숨어있다

<구룡령 옛길>

 

  옛길은 보통 명개리 명지거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초입 구간은 완만한 숲길로 이루어져 있어 천천히 걷기를 즐길 수 있다. 명지거리에서 영골약수를 지나면 물길을 만나는 지점인 <서서물나들>이라는 곳에 다다른다. 이 이름은 말을 타고 고개를 넘다가 말에 탄 채로 서서 물을 받아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진짜 이곳에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구룡령 옛길을 넘기 위한 숨을 고른다

<서서물나들>

 

  장마 중에 수량이 많아진 계곡은 신발을 신은 채 건너기가 무척 힘들다. 물길에 미끄러지지 않을까 하는 노심초사(勞心焦思)만 덩달아 넘쳐나고, 뿌리 채 뽑힌 나무들은 바라보는 사람 없이 외롭게 구룡령 옛길을 지킨다. 손으로 들기 버거운 돌을 흐르는 물 가운데로 던져 징검다리를 만들어 가며 시냇물을 10여 번 가까이 건너서야 구룡령 옛길 정상에 오른다. 오늘 우리가 지나온 길을 사람들이 계속 다닌다면 앞으로 반듯한 길이 될 것이요, 발길이 끊긴다면 다시 잊혀 진 옛길이 되리라

<물이찬 계곡을>

 

<조심 또 조심>

 

  지속적인 습기에 젖어 이끼가 뒤덮은 바위들의 미끈함도 지나고 나면 위험했다는 기억 보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둔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상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각 자 정성으로 준비한 도시락 반찬을 진열해 놓으니 산상(山上)의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올라와 정상에서 식도락(食道樂)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이 순간 이 맛을 즐기는 사람들의 참 맛은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끼 낀 길과 바위>

 

  옛길 정상은 꽤 넓다. 정상에는 주막 터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홍천의 곡식과 양양의 해산물을 이곳에 있었던 주막에서 서로 교환하고 막걸리 한잔으로 소통하며 정을 나누던 곳이다. 이 길을 통해 양양 사람들은 소금, 간수, 고등어, 명태 등을 가지고 영서 지방으로 가서 콩, , 수수, 녹두, , 좁쌀 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구룡령 옛길을 바꾸미 고개, 또는 바꾸미 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구룡령 옛길 정상>

 

  옛길 정상에서 양양 갈천리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급해도 길이 갈지자 형태로 대부분 되어 있어 비교적 수월한 것 같으나 모래 같은 작은 마사토들이 신발의 바퀴가 되어 더 미끄러워 몇 번인가 미끄럼을 탄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영동과 영서지방의 나 식생(植生)은 구별이 되는 것 같다영서지방인 홍천 쪽은 참나무를 비롯한 활엽수가영동지방인 양양지방은 금강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가 비교적 많이 자란다

<박달나무>

 

  7부 능선쯤 내려오니 횟돌반쟁이라는 푯말이 나온다. 반쟁이는 반정(半程)이란 말로 여정의 반을 의미한다고 한다. 묘에 나무뿌리가 못 들어오게 뿌리는 횟가루가 나와서 횟돌반쟁이라 했고, 조선시대 때 경복궁 복원에 사용된 곧고 우수한 아름드리 금강소나무가 꽉 차 있어 <솔반쟁이>라 했으며, 걷는 도중 아름드리 소나무 그루터기가 곳곳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횟돌반쟁이 안내판>

 

  특히 묘반쟁이에 있는 묘는 조선 시대에 양양과 홍천의 경계를 정할 때 수령을 등에 업고 달려 고개 너머까지 차지하게 한 양양 청년의 묘가 있는 곳으로 힘든 때 쉬어 가는 곳이란다. 이 때 양양의 한 청년이 양양의 지역을 조금이라도 넓히고자 열심히 달리다가 지쳐 죽어 그 공적을 기려 이 묘를 만들었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온다

<묘반쟁이 안내판>

 

  조금 더 내려오면 옛날삭도라는 푯말이 나온다. 역시 일제가 자원수탈을 한 곳으로 깊은 산속에 주민들을 동원하여 캐낸 철광석을 삭도(索道)를 통해서 빼갔다. 이러한 것들로 보아 문화재청이 왜 구룡령 옛길을 명승길로 지정(29, 2007 12)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원형이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문경새재길, 문경토끼비리길, 죽령옛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단 4개 뿐인 명승길이다

<옛날삭도 표지>

 

  인류가 생활을 영위하면서부터 근현대사까지 길고 오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길로 옛길의 원형과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다. 더 빠른 길, 더 편한 길을 찾기 시작하며 서서히 사라져 간 옛길이 되살아나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살아가던 옛사람들의 지혜를 전해준다. 백두대간에 가로막힌 마을과 마을을 잇고 사람과 사람의 삶을 연결한 옛길은 수많은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을 품고 굽이굽이 이어져 있다. 그래서 구룡령 옛길은 옛 것을 지킴으로서 새 것을 아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길이었다

<갈천리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