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영산강 물길 따라(세 번째-5 完)

와야 정유순 2022. 7. 5. 22:55

영산강 물길 따라(세 번째-5 )

(영산포목포, 2022 6 2526)

瓦也 정유순

  2008 1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이 작업에 방해되는 전봇대 2개를 뽑아내어 더 유명해진 대불산업단지(大佛國家産業團地)는 영암군 삼호읍 일대에 있는 산업단지다. 1997년부터 입주가 시작되어 가동하였으나, 처음에는 부지매각이 잘 안되어 분양가격을 30% 할인하는 등 활성화 방안을 꾀했으며, 한라중공업을 인수한 현대삼호중공업의 입주로 인해 관련 중소기업을 유치하면서 지역경제에 활성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대불국가산업단지 지도>

 

 

  대불공단이 있는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에서 목포시 옥암동과 사이의 영산강 하구를 가로막은 둑이 영산강하굿둑이다. 이 둑은 영산강유역 대단위농업개발계획 핵심사업으로 1981년 완공되었으나 최근 기후변화로 증가된 홍수량을 안전하게 조절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해 2014년 영산강하구둑 구조개선사업을 통해 배수갑문을 확장하고 경관을 개선하였다. 길이는 4,351m, 높이는 20m이다. 둑에는 8(八連)의 배수갑문이 설치되어 있다

<영산강하굿둑>

 

  30t급의 선박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통선문(通船門)이 설치되어 있다. 하굿둑 위에는 너비 10m의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목포영암 간을 쉽게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하굿둑의 건설로 거대한 인공호인 영산호(榮山湖)가 형성되어 영산강 하구 일대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여 5 6000톤의 쌀 생산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고, 32.5에 달하는 새로운 농경지가 조성되었다. 또한 전라남도 남서 해안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등장하여 전국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영산강하굿둑 배수갑문>

 

  원래 영산강 유역은 우리나라의 주요 곡창지대임에도 불구하고 홍수 시와 갈수 시의 하천 유량 차이인 하상계수(河狀係數) 1:682로 매우 커서 수해와 가뭄이 극심했으나 하굿둑이 건설된 이후에 가장 큰 이점은 농토 확대와 더 이상 하천이 범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목포시와 영암군이 도로로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해졌으며 수자원 확보도 대폭 증가하였다

<하굿둑에서 본 유달산>

 

  그러나 건설로 인해 영산강의 수질은 계속 심각하게 악화되어 왔고, 영산호의 수위는 토사가 쌓여 점점 올라가고 있으며, 강의 폭이 줄어들고 하구에 펼쳐져 있던 갯벌이 감소한다고 한다. 그리고 하굿둑으로 생긴 이후 교통량이 대폭 증가하여 교통 체증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자연환경의 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 앞선다

<하굿둑 배수갑문 표지석>

 

  영산강하굿둑에 들어섬으로서 담양군 용면 가마골 용소에서 시작한 <영산강 물길 따라> 150의 여정은 끝났다. 원래 영산강 하구는 하굿둑에서 7 더 내려가야 하나 하굿둑으로 물길이 막혀 줄어들었다. 영산강의 물길을 따라 걸어오는 동안 주변을 꼼꼼히 챙겨보려 했으나 주어진 환경과 시간은 여유롭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영산강 8()>을 유유자적하며 흐르는 물길에 세월을 띄워 보내는 재미도 쏠쏠했다

<영산강지도-네이버 두산백과 캡쳐>

 

  <영산강 물길 따라> 걷기를 마치며 덤으로 하굿둑에서 가까운 목포의 다른 명소를 더듬어 본다. 우선 출렁거리는 <평화교>를 건너 <연인의 거리>를 따라 <갓바위>로 향한다. 천연기념물(500)로 지정된 목포 갓바위는 서해와 영산강이 만나는 강의 하구에 위치해 있으며 오랜 기간에 걸쳐 풍화작용과 해식작용을 받아 만들어진 풍화혈(風化穴, tafoni)이다. 갓바위 일대는 저녁노을이 비치는 바다와 입암산의 절벽에 반사되는 노을 빛이 아름다워 일찍이 입암반조(笠岩返照)라 하였다

<평화교>

 

<연인의 거리>

 

  한 쌍으로 이루어진 갓바위에는 몇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에 병든 아버지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한 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양지바른 곳에 모시려다 실수로 관을 바다 속을 빠뜨리고 말았다. 불효를 저질러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며 갓을 쓰고 자리를 지키던 아들도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는데, 훗날 이곳에 두 개의 바위가 솟아올라 큰 바위는 아버지바위’, 작은 바위는 아들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갓바위>

 

  이는 바위의 모양이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삿갓을 쓴 사람의 모양 같아서 유래한 것 같다. 또 하나는 부처님과 번뇌를 끊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성자인 아라한이 영산강을 건너 이곳을 지날 때 잠시 쉬던 자리에 쓰고 있던 삿갓을 놓고 간 것이 바위가 되어 이를 중바위(또는 스님바위)라 부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갓바위 측면>

 

  갓바위는 두 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큰 것이 8m이고 작은 것이 6m 정도이다. 목포8경의 하나이며, 2008 4월에 영산강변을 따라 해상보행교가 설치되어 있어 바다 위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보행교의 길이는 298m이며, 밀물 때 약 1m 정도 올라왔다가 썰물 때에는 바닷물을 따라 내려가는 부교(浮橋)로 되어 있다고 한다. 부교를 따라 주변에 <목포문학관>이 있어 그곳으로 발길을 향한다

<갓바위 주변의 풍혈암>

 

  목포문학관까지의 거리는 약1 남짓으로 갓바위산 아래로 <갓바위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해안 쪽으로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목포문화예술회관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산비탈 쪽으로는 문예역사관, 목포자연사박물관, 목포도자생활박물관, 남농기념관 등이 있어 그 앞을 지나는 도로명이 <남농로>로 되어 있다. 그리고 맨 끝에 소설가 박화성, 극작가 김우진, 극작가 차범석, 문학평론가 김현 4인의 삶과 문학을 기리는 유품, 친필원고, 서적 등을 소장 및 전시하는 목포문학관이 있다

<목포문화예술회관>

 

  원래 목포시 대의동에 1991년 개관한 박화성문학기념관이 그 전신이며 박화성문학기념관이 용해동 갓바위 문화타운으로 이전하면서 김우진, 차범석, 김현 3인을 추가로 확장한 것이 목포문학관이다. 규모는 대지면적 2,825.94에 이르며 지상 2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상 1층에는 대한민국 최초로 장편소설을 집필한 소설가 박화성과 사실주의 극작가 차범석 전시실이, 지상 2층에는 극작가 김우진과 평론가 김현의 전시실이 있다

<목포문학관>

 

  소설가 박화성(朴花城, 1903~1988)의 본명은 경순(景順), 화성은 아호이자 필명이다. 목포에서 태어나 12세 때 목포 정명여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숙명여고보를 거쳐 1926년 한국여성으로는 최초로 일본여자대학교 영문학부에 입학했다. 21세 때 최초의 단편소설 <팔삭동> <자유예원>에 발표하였고, 이광수(李光洙)의 추천을 받아 1925 <조선문단> <추석전야>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1958년 목포시문학상, 1966년 한국문학상, 1970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4 3·1문화상 등을 받았다

<박화성>

 

  극작가 차범석(車凡錫, 19242006)은 목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서중학교와 광주사범학교를 거쳐 1966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1955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밀주>가 가작 입선되고, 1956년 같은 신문에 <귀향>이 당선됨으로써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전쟁을 겪은 전후문학 세대로서 사회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 의식이 강한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차범석>

 

  극작가 겸 시인인 김우진(金祐鎭, 1897~1926)은 당시 장성군수였던 아버지 김성규(金星圭, 18631936)의 장남으로 태어나 목포에서 활동했다. 한국 연극의 개척자였으며, 시는 표현적 자유와 표현의 창조를 강조하면서, 다른 길을 걸었다. 한 개인의 삶 속 절망적인 내면적 상황을 낭만적으로 노래하는 듯이 표현하였다.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尹心悳)과 일본 유학 중 사랑에 빠져 현해탄에서 동반 자살했다는 설이 있다

<김우진>

 

  평론가 김현(金炫, 1942~1990)은 본명이 광남(光南)으로 진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불문과를 졸업하여 1971년 서울대학교 전임강사가 된 뒤 1990년까지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62년 평론 <나르시스의 시론(詩論)>으로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프랑스의 현대문학과 사상, 특히 실존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실존적 정신분석 방법에 비평의 기초를 두었다. 한국문학사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1989년에 제1회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김현>

 

 

 

 붙임 : <영산강8(榮山江8)>

 

제 1경 영산낙조(榮山落照)은 영산강 저녁노을이 환상적인 하굿둑

제 2경 몽탄노적(夢灘蘆笛)은 곡강(曲江)이 감싸고 흐르는 여울이 꿈 길 같은 식영정(息營亭)

제 3경 석관귀범(石串歸帆)은 돌아오는 황포돛대와 영산강 절경이 어우러지는 석관정(石串亭)

제 4경 죽산춘효(竹山春曉)는 봄철 새벽 이슬 머금은 들꽃이 손 흔드는 죽산보(竹山洑)

제 5경 금성상운(錦城祥雲)은 상스러운 구름이 지평선 위에 누워있는 나주평야(羅州平野)

제 6경 평사낙안(平沙落雁)은 극락강과 황룡강 물길이 손잡고 흐르는 승촌보(昇村洑) 일대의 넉넉한 경관 

 7경 풍영야우(風詠夜雨)는 명필 한석봉(韓石峯)이 쓴 <제일호산(第一湖山)> 편액이 걸린 풍영정(風詠亭)

제 8경 죽림연우(竹林煙雨)는 담양의 대나무 숲에 피어오르는 물안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