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영산강 물길 따라(세 번째-1)

와야 정유순 2022. 6. 30. 05:25

영산강 물길 따라(세 번째-1)

(영산포목포, 2022 6 2526)

瓦也 정유순

  오늘 영산강 물길을 따라 걷는 길은 죽산보에서부터 시작한다. 죽산보(竹山洑)는 나주평야 일대 농업용수 확보 등을 대비하기 위해 총 공사비는 약 1,635억이 투입하여 2년만인 2011 10월에 완공되었다. 보의 길이는 184m, 보의 교각 상부에는 공도교(公道橋)와 관리용 전망대가 있고, 4대강의 보() 중에서 유일하게 선박이 통과할 수 있는 통선문(通船門)이 있으나 건설 8년 만에 보해체가 결정되었다. 풀 섶을 해치고 가까이 갈수록 오염하천 특유의 조류 악취가 진동하여 그냥 발길을 돌린다

<죽산보>
 

  보 아래 하천부지에는 경비행기체험장이 있으나 지난달 초 경비행기 추락사고로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보가 있는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는 풍수지리상 와우(臥牛)형국이라고 전하나 이곳 출신 금호그룹의 창업자 박인천(朴仁天)은 거북지형(地形)이라고 하였다. 즉 거북이가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형태로 소요정이 그 머리이며, 돌캐산 다섯 봉우리가 거북의 알이다. 또 동산의 창고 터를 일명 사석바우라 한다. 죽산리는 죽지(竹池), 산두(山頭), 조등(鳥嶝), 절구(杵九), 화동(化洞) 등 다섯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죽산리 뒷산>

 

<경비행기>

 

  죽산리 죽지마을에 있는 소요정(逍遙亭)은 전라우수사·함경도북병사·전라좌수사·병조참판 등을 지낸 이종인(李宗仁, 14581533)이 건립한 정자로, 이종인의 호를 따서 소요정이라 이름 붙였다.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하다가 1865(고종 2)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정면 5·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대청형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하나 들르지는 못했다

<소요정-네이버캡쳐>

 

  대신 화동마을의 <장춘정>으로 간다. 전라남도 기념물(201)인 나주 장춘정(羅州 藏春亭) 1561(명종 16)에 고흥유씨 유충정(柳忠貞, 15091574)이 세웠으며, 1818(순조 18)에 중수를 거쳐 1930년에 다시 중건한 건물로 옛 모습을 잘 보전하고 있다. 장춘정이란 이름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숲과 사시장절(四時長節) 피는 꽃들이 항상 봄을 간직한 듯 하는 정자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동마을>

 

  장춘정은 화동마을의 구릉지에 위치하며, 동남향으로 서있는 전면에는 넓은 들과 마을이 내려다보이며 우측으로 영산강이 흐른다. 정자 주위로는 동백나무 숲과 느티나무·은행나무 등 노거수가 울창하고 수려한 공간이 조성되었다. 건물은 단층 팔작지붕으로 정면 3, 측면 2칸의 재실형이다. 뼈대가 굵고 가구 구조가 건실하며, 치목이 잘 되어 있다. 대청의 우물마루와 빗살창, 선자 서까래나 활주 등에서 세련미를 나타낸다

<장춘정>

 

  장춘정을 중심으로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기문(記文) <장춘정기(藏春亭記)>(1561), 송순(宋純, 14931583), 오상(吳祥, 15121573), 박순(朴淳, 15231589), 임제(林悌, 15491587), 안위(安瑋, 14911563), 임억령(林億齡, 14961568) 등의 <장춘정제영(藏春亭題詠)>이 걸려 있다. 유충정은 1534(중종 29) 무과에 급제하여 부안·강진현감, 김해·장흥·온성부사 등 수령을 지낸 뒤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 강상(江上)에 장춘정을 지었다

<장춘 유공유허비>

 

  장춘정을 나오면 강 건너 공산면 산곡리에 있는 <나주영상테마파크>가 멀게 보인다. 이곳은 고구려의 고도를 재현해 놓은 세트장으로 역사체험과 함께 인기 드라마의 촬영장이다. 조선과 신라는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사극 촬영에 문제가 적은데, 고구려와 백제는 유적이 별로 없어서 종합세트장이 단양과 나주에 마련되었다. 이중 나주의 테마파크가 훨씬 크고 왕궁, 도성, 요새는 물론이고 고대 마을·저잣거리가 다채롭게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나주영상테마파크 원경>

 

  강변으로 서있는 미루나무는 어릴 적 추억을 끄집어낸다. 미루나무는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미국 원산이며, 미국에서 들어온 버드나무라는 뜻에서 미류(美柳)나무라고도 부른다. 높이는 30m이며 옛날에는 까치가 집을 많이 지었다. 이식이 잘되기 때문에 가로수로 많이 심었으며, 한때 목질이 부드러워 나무도시락이나 나무젓가락으로 많이 이용되기도 했다. 미루나무는 양버들의 일종인 이탈리아포플러에 의해 도심에서 밀려났다

<미루나무>

 

  미루나무 길을 따라가면 황포돛대와 영산강 절경이 볼만한 석관정이 영산강 제3경인 <석관귀범(石串歸帆)>이다. 석관정(石串亭) 1530(중종25) 경 함평이씨 신녕현감 석관(石串)이진충(李盡忠)이 정자를 지어 석관정(石串亭)이라 하였다. 1755(영조31) 8세손 이시창(李時昌)에 의하여 초가(草家) 두어 칸을 세웠으며, 1906년과 1937년에 후손들이 협력 중건·중수하고, 1998년 정면 2·측면 2칸 석조8작 지붕으로 중건 석관정기(石串亭記)’를 비롯한 기문과 시문을 적은 현판들이 걸려 있다

<석관귀범>

 

<석관정>

 

  석관정 아래에는 황포돛배가 오가던 옛 나루터를 복원한 나무 데크가 마련되어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영산강의 물결을 바로 앞에서 바라볼 수 있어 관광객과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이곳 <석관정나루터>는 석관정(石串亭)에서 공산면 신곡리로 건너는 곳이었다. 석관은돌고지(또는 돌곶)’으로 강 쪽으로 바위가 툭 튀어나온 곳을 의미한다. 강 건너편에는 금강정이 있다. 금강정(錦岡亭)은 광산김씨 문중의 정자로서 규모는 팔작지붕 단층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형 구조라고 한다

<석관나루>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 석관정에서 차량으로 이동한 사포(沙浦)나루터는 함평군 학교면 곡창리에 있으며, 예전에 서호(西湖)라고 불리던 나루터로, 인근 대곡마을에는 조선시대 전라도 수군 지휘본부가 있었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였으나, 1981년 영산강하굿둑이 축조되면서 해수유입이 없어져 메기·붕어·잉어 등 담수어가 크게 늘었다. 1984년 낚시터 겸 휴게소가 건립되고, 1992년 학교면과 나주시 동강면 사이에 동강대교가 완공되어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낚시꾼과 관광객이 늘고 있다

<사포나루터 안내>

 

<동강교>

 

  동강대교 부근에는 함평천이 흐른다. 함평천(咸平川)은 영산강 제1지류로 국가하천과 지방2급 하천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방2급 하천은 함평군 신광면(新光面)과 대동면(大洞面)의 경계에 있는 대동저수지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함평군 대동면에서 대동천과 합류하면서 국가하천으로 바뀌며, 이후 계속 흐르다가 함평군 엄다면(嚴多面)에서 영산강으로 흘러든다. 1997년부터는 생태하천 복원 및 테마공원을 조성하여 6의 하천 양안둔치 수변광장에서는 해마다 5월 초순에 함평나비대축제가 열린다

<함평천>

 

  함평천변에 넓게 자리 잡고 있는 함평우시장은 평균 700여 마리가 사고 팔릴 정도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전라남도의 소값을 좌우한다고 한다. 주변에 민물고기생태관, 용천사(龍泉寺), 생활유물전시관 등 관광명소가 있고, 함평천과 고막천(古幕川)을 따라 죽암리고분(전남기념물 152), 마산리 고분군(전남기념물 122), 금산리 방대형고분(전남기념물 151) 등 고분군과 고조선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138기 분포되어 있으나 들르지는 못했다

<곡창교차로>

 

  함평군 학교면(鶴橋面)은 동쪽으로 나주시 문평면(文平面다시면(多侍面), 서쪽으로 엄다면(嚴多面), 남쪽으로 영산강을 경계로 나주시 동강면(洞江面공산면(公山面), 북쪽으로 대동면(大洞面)에 접한다. 동쪽은 고막천(古幕川), 서쪽은 함평천(咸平川), 남쪽은 영산강에 면하여 유역에는 넓은 학교평야가 전개된다. 광주목포 간, 영광나주 간 국도가 동서와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호남선의 함평역이 있어 광주·목포·함평 방면으로 교통이 편리하다. 학교(鶴橋)는 일명 학다리로도 부른다

<영산강(학교)>

 

 

  영산강을 따라 하천부지에는 지금 꽃이 닭 벼슬 같이 활짝 피는 자귀나무가 눈에 많이 보인다. 콩과식물인 자귀나무는 낯에는 잎이 빗살처럼 떨어져 있지만 밤이 되면 떨어졌던 잎들이 서로 마주보며 접혀진다. 그래서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는 합환수(合歡樹)라 하여 산과 들에서 자라는 나무를 부부침실 앞 정원에 많이 심는다고 한다. 그리고 나무를 깎고 다듬는 자귀대의 손잡이를 만드는데 사용되기 때문에 자귀나무라고 하며, 소가 잘 먹는다고 소쌀나무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자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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