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여주 여강길(6코스 왕터쌀길)

와야 정유순 2021. 3. 31. 22:39

여주 여강길(6코스 왕터쌀길)

(2021 3 27,

세종대왕역사문화관상백2리마을회관)

瓦也 정유순

  왕터쌀길은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서 여주보를 지나 상백2리 마을회관까지 걷는 길이다. 여주지역은 선사시대부터 벼농사를 지어왔을 정도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쌀의 고장임이 여주시 흔암리에서 발견된 탄화미(炭火米)가 증명한다. 또한, 태종이 여주 땅을 순찰할 때 여주 현감은 임금의 수라상에 여주 쌀로 밥을 지어 올리자 태종은 여주 쌀을 최고의 쌀이라 극찬하였다고 한다. 기름기 좔좔 흐르는 여주 쌀밥이 그립다. 

<여강길 6코스 지도>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제17대 효종대왕의 영릉(寧陵)이 있는 여주시 능서면에 위치하며, 3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 영상실, 카페,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세종대왕과 효종대왕 그리고 조선왕릉에 대한 이해를 돕고, 세종대왕께서 후손에게 남긴 훌륭한 업적들과 그 업적의 바탕이 된 애민정신을 느껴볼 수 있도록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꾸며져 있다

<세종대왕역사문화관>

 

  특히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는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세종실록)”는 기본으로 과학기술을 연구하고 기구를 발명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 혼천의(渾天儀) 등 천문관측기구,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와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 등을 만들었으며, 우리 실정에 맞는 농사직설(農事直設)을 제작하여 널리 배포하였고 아악(雅樂)을 정리하였다. 이러한 업적의 바탕에는 세종의 애민정신이 짙게 깔려 있다

<세종대왕>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서 출발하여 세종대왕릉 교차로 밑의 실개천을 따라간다. 옛날 봄 같았으면 부지깽이도 농사일에 동원해야 할 정도로 일손이 턱없이 모자랐을 터이고, 모처럼 봄나들이 가려면 일손이 바쁜 농촌을 우회하여 지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그 모자란 인력을 농기계들이 대신한다. 뿌려지는 씨앗마다 싹이 터서 풍성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봄갈이>

 

  지방도로 333호 효종교 다리 밑을 지나면 여주시 전천후양궁훈련장 옆을 지난다. 2014 1월에 개장한 양궁훈련장은 겨울철이나 야간에도 훈련할 수 있는 전천후 시설로 지상 1, 연면적 298 규모의 건물과 부대시설 등이 들어섰다고 한다. 양궁장은 여주시청 양궁단은 물론 여흥초, 여주여중, 여강고 등 각급 학교 양궁 꿈나무들의 훈련장으로 사용된다. 여주시는 과거 김경욱, 이은경 등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양궁 도시다

<여주시 양궁훈련장>

 

  양궁훈련장 앞 세종산림욕장 아랫길을 이용하여 여강 변에 도착하면 양섬이 보이고 세종대교가 남한강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내 발걸음은 강변을 따라 유유자적한다. 버들가지가 물기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여강의 많은 생명에게 봄기운에 스며들어 잎들은 벌써 녹음을 준비한다. 촉촉이 내리는 봄비 소리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대합창이다

<세종산림욕장>

 

  여강 하류 쪽 선왕등고개 절벽에는 <笠巖(입암)>이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다. 입암은 옛 여주 팔경 중 하나로, 해동지도 등에 제6경 입암층암(笠巖層巖)으로 기록된 여주시의 자연경관이다. 상세지도인 1872년 지방도에는 笠巖(삿갓바위)이 층층이 쌓여 있는 형태로 묘사돼 있다. 바위에는 <笠巖>이라는 글씨와 함께 이인응(李寅應)과 민영목(閔泳穆)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경오막추각(庚午莫秋刻)’이라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경오년(1870) 늦은 가을에 글씨를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선왕등고개-입암>

 

<입암>

 

  지금 지나고 있는 능서면(陵西面)은 여주시의 서북부에 위치하고, 주민의 절반가량이 농업 종사하고 있으며, 평야 지대가 펼쳐진 전형적인 농업지역으로 여주 쌀의 주산지다. 조선 4대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인 영릉(英陵)과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쌍릉인 영릉(寧陵)이 왕대리에 소재한다. 면 이름을 세종대왕면으로 개칭하려고 하였으나 찬반이 엇갈려 잠정 보류되었으며, <영릉면·명품면·왕터면> 등의 명칭이 제안되기도 하였다

<여강길 개나리>

 

  물의 흐름이 느려지고 강이 호수처럼 보이는 것은 4대강 정비 사업으로 2009 11월에 착공하여 2011 10 15일 일반에 공개된 <여주보>가 있기 때문이다. 보의 길이 513m, 높이 8m. 보 전체가 가동보로 이루어졌으며 12개의 수문이 설치되어 있다. 보의 교각 형태는 용을 형상화했으며 보의 우측에는 앙부일구(仰釜日晷)를 형상화하여 디자인한 세종광장이 있다

<여주보>

 

  좌안(左岸)에는 총 연간 발전량은 2,970 kwh(1,650kw 발전기 3)의 시설용량을 가지고 있는 소수력발전소가 있으며, 발전소 외벽에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이 새겨져 있다. 보의 상부에 설치된 공도교는 일반보행과 자전거 통행만 가능하며, 야간조명을 설치하여 관광명소로도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여주보 홍보를 위한 물 문화관과 전망대(높이 40m)가 여주보와 함께한다

<물문화관과 전망대>

 

<여주보 수력발전소>

 

  여주보를 지나면 능서면 내양리(內陽里)가 나오는데, 조선 시대에는 <양화나루터>가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고, 대신 <강변칠우(江邊七友) 사건> 현장이 있다. 이곳은 광해군 5(1613)에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가 영창대군과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계축옥사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고관대작의 서자(庶子)로 벼슬에 진출하지 못하는 일곱 사람이 처지를 한탄하며, 춘천 소양강에 무륜(無倫)이란 정자를 짓고 시와 술로 세월을 보내며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모방해 스스로 <칠우>라 불렀다

<강변칠우사건 현장>

 

  이들은 광해군 집권 초기에는 이곳 양화천 주변에 모여 살며 식량이 없으면 도둑질을 했으며, 문경 새재[조령(鳥嶺)]에서는 은() 상인을 죽이고 수백 냥의 은을 강탈했다가 모두 붙잡혔다. 이때 대북파의 이이첨(李爾瞻) 등의 꾐에 빠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왕으로 모시기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선조의 장인 김제남(金悌男)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허위로 자백하여 김제남과 영창대군을 죽게 하였다. 이들은 이곳에서 적서(嫡庶)를 떠나 평등 세상을 갈구하였으며, 후세 사람들은 당집을 짓고 장승제를 올렸다고 한다

<양화천>

 

  양화천을 건너면 여주시 흥천면이다. 흥천면(興川面)은 본래 긴 내(복하천)가 흐르고 있어 길천면(吉川面)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흥곡면(興谷面)과 길천면이 통합되어 흥천면이라 했다. 흥천면은 법정리 14, 행정리 25, 자연마을 50개로 구성되었다. 복하천은 흥천면 중앙부를, 양화천은 동쪽 면계(面界)를 북동류하여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양화천교>

 

  양화천과 복하천 사이의 마을이 흥천면 상백리다. 여주시 흥천면 상백리는 매년 5월이면여주 상백리 보리축제 with 놀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축제 기간 중 평일에는 보리밭 산책길, 화전체험, 유채꽃배, 건강 보리간식, 다양한 보리체험 등을 음식이나 간식거리를 제외하고는 모든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주말에는 평일의 프로그램에 보릿고개 다섯 마당, 보리 장난감 만들기 체험을 추가한다고 한다

<여강의 모래톱>

 

  흥천면 삼백리 백양포라고 불리는 곳에는 찬우물나루터가 있었다. 찬우물나루터는 인근 이천(利川)의 부발과 백사의 곡물들이 모이는 큰 포구였고 강 건너 대신장이나 양평 곡수장에 갈 때도 흥천 사람들이 찬우물나루터를 많이 이용하였다. 그리고 흥천 사람들이 강 건너 양촌에 땅이 많이 있어서 찬우물나루터에서 나룻배를 이용해서 건너가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찬우물나루터>

 

  인근 강변에는 일군(一群)의 바위들이 모여 있는데, 백정이 산적들과 싸우다 죽으며 꽂힌 칼이 바위가 된 칼바위’, 장구배기라는 험상궂고 외로운 장수가 사람들을 그리워하던 중 산에서 내려오는 큰 바위를 몸으로 막다가 묻힌 고래바위’,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간 서방님을 매일 따뜻한 밥을 해놓고 기다리다 지쳐 물속에 빠져 죽은 여인이 바위로 솟은 모양이 붕어 닮았다 하여 붙여진 붕어바위가 옛날의 기억을 회상해 준다

<칼바위>

 

<고래바위>

 

<붕어바위>

 

  목련꽃 화사한 마을을 지나 상백2리 마을회관에 당도하여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오기 위해 여주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으나 시간이 넘어도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리다 택시를 불러 세종대왕릉역까지 이동하여 경강선에 몸을 의지하는데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선명하다

<상백2리 목련>

 

<상백2리 마을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