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강화 고려산과 고인돌

와야 세상걷기 2017. 4. 17. 00:22

강화 고려산과 고인돌

(2017415)

瓦也 정유순

   강화도에는 봄이면 진달래로 더 유명한 고려산이 있다. 연개소문의 출생지로 알려진 고려산의 진달래를 보러가기 위해 새벽부터 집을 나서 버스에 오르자마자 눈꺼풀은 사정없이 짓누른다. 고려산(高麗山, 436)의 옛 이름은 오련산(五蓮山)으로 416(고구려장수왕4)에 중국동진의 천축조사가 오련지(五蓮池)에 핀 연꽃을 하늘에 날려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연꽃 색에 따라 백련사, 청련사, 적련사(적석사), 황련사, 흑련사를 지었다고 한다.

<고려산 진달래>

   여기서 나오는 오색(五色)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각 기운과 직결되는 청() () () () ()의 다섯 가지 기본색인 오방색(五方色)이다. 청은 동방(東方), 백은 서방(西方), 적은 남방(南方), 흑은 북방(北方), 황은 중앙(中央)으로 오방이 주된 골격을 이루며 양()의 색이다. 또한 동방은 좌청룡(左靑龍, ), 서방은 우백호(右白虎, ), 남방은 전주작(前朱雀, ), 북방은 후현무(後玄武, ), 중앙은 황웅(黃熊, )을 표시한다.

<고려산 오련지 이야기>

<오방색도-네이버 캡쳐>


   강화역사박물관 앞에서 하차하여 <부근리 지석묘>에 먼저 들른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는 탁자식 고인돌로 분류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인돌이다. 해발 약30높이의 능선에 세워진 이 고인돌은 흙으로 바닥을 수 십층 다진 뒤 받침돌[지석(支石)]을 좌우에 세우고, 안쪽 끝에 판석을 세워 묘실을 만들고 주검을 넣은 후 판석을 막아 무덤을 만들었으나, 두 끝의 막음돌은 없어진 상태여서 석실 내부가 긴 통로처럼 보인다.

<강화도 고인돌[지석묘]>


   덮개돌의 규모(길이 6.40, 너비 5.23, 두께 1.34, 전체 높이 2.45, 무게 약53)가 커서 일부에서는 제단(祭壇)기능을 한 고인돌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우리나라는 고인돌[지석묘(支石墓)]이 많기로는 세계적으로 으뜸이란다. 특히 강화도 고인돌은 동북아시아의 흐름과 변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되는 유적으로 200212월에는 고창, 화순 고인돌 유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문화유산등재 기록-동판>


   강화 지석묘를 둘러 본 후 강화나들목 17코스를 따라 고려산 진달래능선으로 향한다. 강화하점일반산업단지가 있는 묵숙촌 마을어느 집 담 옆에는 앵두나무꽃이 벚꽃보다 더 화사하다. 260년 넘게 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를 지나면 부근리 <점골고인돌>이 나온다.

<앵두나무>

<수령 260년 이상 느티나무>


   점골고인돌은 방금 보고 온 강화 지석묘와 같은 북방식 탁자형으로 고려산 북쪽 주능선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고인돌로 상석과 4매의 지석이 잔존해 있는 전형적인 지석묘이다. 상석은 타원형으로 규모(장축 428, 단축 370, 두께 65, 전체높이 185)는 강화고인돌 보다 작다. 현재의 형태는 상석과 지석이 동쪽으로 기울어 붕괴되어 있던 것을 2009년 실시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해체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점골고인돌>


   점골고인돌을 지나 새로 지은 집들이 들어선 마을 앞을 지난다. 어느 집은 개나리를 하트모형으로 꽃을 피웠고, 담장의 벚꽃도 봄을 활짝 열었다. 강화에서 원주민과 외지에서 이사 온 주민을 구별하는 법을 알려 주신다. “원주민은 담이나 울타리가 없고 이주민은 담이나 울타리가 필수적으로 있다고 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마 자기가 거주하는 땅의 경계를 표시하는 일환이 아닌 가 생각해 본다.

<하트 개나리>

<벚꽃>

<돌담집>


   하점면 삼거리마을을 지나 고려산 서쪽 능선으로 들어서면 <강화 삼거리 고인돌 군()>이 나온다. 이곳에는 북방식 고인돌무덤 9기가 일렬로 분포되어 있다. 이곳에 있는 어느 고인돌무덤은 덮개돌 위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 패여 있는데 이러한 모양을 남한에서는 성혈(性穴)이라 하고, 북한에서는 별자리와 연관 짓고 있다. 이곳 고인돌무덤 가까이에는 돌을 때낸 흔적이 남아 있는 채석장이 있다고 한다.

<삼거리고인돌군>

<삼거리고인돌>

<삼거리고인돌>


   고려산 정상을 향해 가까이 다가갈수록 선홍색 진달래가 무리지어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간간이 다른 나무 숲속에서 꽃모양이 산수유를 닮아 오해를 받는 생강나무도 한번쯤 봐달라고 모둠발을 한다. 생강나무는 잘라낸 가지에서 생강냄새가 난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잎은 식용으로, 껍질은 타박상이나 어혈 등 산후조리에 약재로 사용한다고 한다.

<생강나무>


   낙조봉과 적석사로 가는 길과 고려산으로 가는 삼거리에서 진달래 밭을 따라 고려산으로 능선을 탄다. 소나무 숲으로 터널을 이룬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진달래가 온 계곡을 덮는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 꽃∼♬∼김소월의 진달래 시()구절이 저절로 입술을 비집고 튀어 나온다. 능선 정상의 데크에는 구경나온 상춘객(賞春客)들이 몰려들어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다.

<고려산 진달래>

<고려산 진달래>

<고려산 진달래>

<고려산 진달래>


   진달래는 참꽃 또는 두견화라고 한다. 꽃은 전국 산야에서 4월에 잎보다 먼저 핀다. 꽃잎을 따서 화전(花煎)을 만들어주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진달래로 담근 술 두견주(杜鵑酒)맛이 좋아 앉아 마시다가 자기도 모르게 취해 일어나지 못한다하여 일명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한다. 전망대에서 겨우 자리를 비집고 꽃에 취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사람에 떠밀려 통신시설(?)이 있는 정상을 뒤로 하고 다시 삼거리로 내려와 낙조봉으로 향한다.

<고려산 진달래>

<고려산 정상>


   몇 그루의 소나무는 허리가 없이 앉은 자세로 가지를 위로 올린 앉은뱅이 소나무가 눈에 보인다. 조금 더 이래로 내려오니 또 <고천리 고인돌 군()>이 나온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무덤으로 지석묘(支石墓)라고도 한다. 고려산의 서쪽 능선을 따라 해발 350250지점에 18기의 고인돌이 세 곳에 군집(群集)을 이룬다. 우리나라 고인돌이 있는 평균고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데, 대부분의 고인돌은 무너져 원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앉은뱅이 소나무>

<고천리 고인돌>

<고천리 고인돌>

<고천리 고인돌>


   낙조봉(落照峰)은 강화8경이기도 하지만 부처님이 모셔진 법당이다. 불규칙한 바위 위에 나무데크로 너른 광장을 만들어 놓아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둥근 얼굴에 반쯤 잠긴 눈으로 미소를 머금으며 중생(衆生)들의 업보를 다 안아 주시는 것 같다. 멀리 고려저수지를 바라보고 서쪽으로 약간 기운 햇살을 받으며 적석사를 향해 경사가 심한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

<낙조봉 불상>


   적석사(積石寺)416년 천축조사가 연꽃을 날려 떨어진 곳에 세운 적련사(赤蓮寺)가 지금의 적석사이다. 절 이름에 붉을 적()’자가 들어 있어 산불이 자주 난다고 하여 쌓을 적()’자로 바꿨다고 한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사적비(事蹟碑)와 범종루(梵鐘樓관음굴(觀音窟산신각(山神閣) 등이 들어서 있다. 이곳의 약수터인 감로정은 나라에 변고의 조짐이 생기면 우물이 마르거나 물이 흐려져 마실 수 없게 된다고 전해지는데 찾아보지 못했다.

<적석사 대웅전>


   대웅전 아래에 있는 적석사 사적비는 1714(숙종40)에 세워진 비로 불교의 전래 및 사찰의 중건·중수상황과 고려시대 때 몽골침입에 대항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겼을 때 적석사가 임금의 거처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을 담고 있다고 한다. 전체높이 394, 비신(碑身)의 높이 304, 너비69로 대리석에 새긴 비문은 육안으로 자세히 보아야 보이고, 비의 위에 크게 새겨져 있는 高麗山積石寺之碑(고려산적석사지비)”라는 글씨만 보인다.

<적석사 사적비 상층부>


   적석사에서 내려오는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지만 경사가 가파르다. 길 따라 평지로 내려오면 모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수도원을 지나면 <강화 오상리 고인돌 군()>이 나온다. 고려산 남쪽 해발75의 나지막한 언덕에 12기의 고인돌이 한곳에 모여 있다. 2000년 발굴조사 결과 모두 북방식 고인돌이고 대··소형으로 구분되며, 묘실은자 형태이다. 구석기시대의 구형석기(球形石器)와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조각들이,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조각들이 함께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대롱옥, 반달돌칼, 돌화살촉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오상리 고인돌군>

<오상리 고인돌군>


   강화군 내가면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외포리(外浦里)항으로 나가 갯바람을 맞는다. 석모도로 가는 뱃고동소리도 여전하고 때지어 몰려드는 갈매기도 여전한데, 강화도에서 석모도로 연결되는 연도교(連島橋)가 공사 중이라니 얼마 안 있으면 이 풍경도 전설 속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 같다. 어시장에는 싱싱한 생선들이 아가미를 날름거리고, 입맛 댕기는 젓갈들도 손짓한다. 노점(露店)에 나와 있는 냉이와 머위, 쑥 등 나물들이 봄을 더 푸르게 노래한다.

<외포리 포구>

<외포리 젓갈수산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