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을 걸으며(고덕산길)
(광나루역∼고덕역, 2017년4월13일)
瓦也 정유순
서울지하철5호선 광나루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미세먼지 황사가 심하다고 일기예보를 한다. 봄에 특히 더 찾아오는 불청객 황사(黃砂)는 우리나라의 지리적 여건으로 볼 때 인간이 이곳에 터를 잡은 그 때부터 불가분의 관계로 건강과 환경 등에 나쁜 영향을 준 반면에, 농토의 객토효과와 바다의 적조발생 억제 등 보이지 않게 좋은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의 미세먼지나 황사는 중국의 공업화에 따른 독성물질이 다량으로 혼입되어 바람 따라 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서울둘레길3코스 광나루역-고덕역 지도>
<서울둘레길3코스 광나루역>
광나루역은 1995년 11월 서울지하철5호선이 개통되면서 업무를 시작했다. 옛날부터 경기도 광주로 건너가는 한강의 “넓은 나루”가 있다고 하여 광진(廣津)으로 한자화 된 것 같다. 서울 광진구(廣津區)나 지금 건너고 있는 광진교(廣津橋)도 이런 연유로 붙여진 이름 같고, 서울시립 광진청소년수련관과 광진구민체육센터는 광진지역의 위세를 나타내는 것 같다.
<광진청소년수련관과 광진구민체육센터>
광진교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 10월에 준공하여 한강대교 다음으로 한강의 두 번째 오래된 다리이다. 한국전쟁 때에 폭파한 것을 1952년 미군에 의해 복구하였으나 노후 등으로 인해 1994년 철거되었다가, 1997년 3월 같은 자리에 새로운 교량을 착공해 2003년 11월에 길이 1,056m의 4차선으로 개통하였다. 양쪽으로 자전거도로와 발코니형 돌출전망대가 눈길을 끌고, 공연장과 화랑 등을 갖춘 문화복합 공간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광진교>
<천호대교 북단>
<한강순시선>
<광진교 인도>
광진교 건너 강동구 천호동과 암사동 한강변은 옛날 여름피서를 못가는 서울시민을 위해 수영장을 개방한 3곳 중의 하나다. 한강대교 노들섬의 한강백사장, 뚝섬한강공원 이전의 뚝섬백사장 그리고 광나루지구한강공원 이전의 광나루백사장이다. 빛깔 고운 모래가 어느 해수욕장 보다 넓게 펼쳐진 자연 그대로의 수영장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곳에 인공풀장을 비롯해 축구장, 농구장, 테니스장 등 각종 체육시설을 설치해 시민들의 손길을 기다린다.
<광나루 체육공원-옛 백사장 터>
<강북의 아차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암사생태공원에도 봄의 전령들이 화사하게 찾아와 엊그제 소식이 와서 서둘러 찾아왔건만 양지 바른 쪽의 먼저 핀 꽃들은 벌써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 잎 두 잎 땅에 떨어지고, 빈자리에 붉은 꽃의 박태기가 대신한다. 박태기는 밥알모양의 꽃이 피기 때문에 일부 지방에서는 밥티나무라고도 한다. 두 달 전만 해도 AI(조류인플루엔자)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여 출입이 안 되었던 생태탐방로도 조팝나무 꽃이 일렬로 도열한다. 겨울에 찾아오는 AI도 자연을 무시하는 인간에게 던지는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박태기나무>
<광나루생태공원>
<조팝꽃이 핀 생태공원 탐방로>
강변에서 올림픽도로 토끼굴을 지나 암사동 주거지역으로 나와 선사마을로 향한다. 아파트 옆 넓은 밭에는 번호판이 일정하게 꽂혀 있는 것으로 보아 도시인을 위한 남새밭 주말농장 같다. 역시 봄은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힘이 있고, 겨우내 숨 죽였던 생물들을 흔들어 깨워 기지개를 켜게 한다.
<암사동으로 통하는 통로>
<주말농장>
암사동선사유적지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한강의 범람으로 유물들이 지상으로 드러나면서 많은 석기와 빗살무늬토기 조각들이 나왔는데, 일제강점기 때라 많은 유물들을 일본인들이 빼내고 조사내용은 간단하게 “시굴했다”는 내용만 있고 구체적인 내용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선사마을 표지석>
<암사동선사유적지>
암사동선사유적지는 한강이 곡류(曲流)하는 지점에 위치하여 강 건너 아차산을 마주하고 있다. 한강유역의 현존하는 대표적인 신석기 유적 중 최대의 마을 유적이다. 신석기문화층은 방사선탄소연대측정에 의해 지금으로부터 약6000년 전 유적으로 밝혀졌다. 중서부지방의 대표적 토기인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해 갈돌과 어망추, 탄화된 도토리 등이 출토되어 신석기시대의 생활을 추측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한다. 복원움집(9기)과 체험움집(1기), 전시관, 체험마을 등이 조성되어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움집>
<빗살무늬 토기>
<선사유적체험장-시간의 길>
그러나 해방 후 지금까지 이곳을 중심으로 유물과 유적들을 여러 번 발굴해 왔지만, 팔당댐에서 한남대교에 이르는 한강변 좌우에 부지기수로 널려 있던 그 많던 유물과 유적이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 사라지고 암사동선사유적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관계자들의 역사에 대한 무지로 있는 역사도 시나브로 뭉개버리거나, 실증이나 고증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한번 되새겨 볼 일이다.
<선사사유물 전시장 내부>
<선사유물 전시장>
<선사유적지 내의 능수버들>
암사동선사유적지를 나오면 암사3동이다. 이곳은 신라시대의 아홉 개의 사찰이 있어 구암사(九岩寺)라 하였고, 그중 속칭 바위절 또는 암사로 불리는 백중사가 있었다고 전해져 내려와 암사동(岩寺洞)이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 되었다고 한다. <ISO 22000(식품안전경영시스템)국제인증획득>하여 서울의 수돗물 아리수가 국제적 안전식품으로 인정받았다는 암사정수센터 앞으로 하여 고덕산으로 향한다.
<구암사 터에 있는 구암정>
<암사정수센터 입구>
<ISO 22000 국제인증 획득 현수막>
화사한 벚꽃도 바람에 날리고 외래종인 노란 서양민들레에 치어 쪽을 못 쓰는 토종 하얀 민들레가 쳐다보는 사람 하나도 없이 외롭다. 고덕산으로 접어들자 산벚나무도 만개하여 기다리고, 꽃말이 “사랑의 노예”인 복사꽃도 붉은색을 띄며 활짝 웃는다. 이렇게 좋은날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은 오늘을 축하해주는 하늘의 축수(祝水) 같다.
<토종 민들래>
<산벚나무>
고덕산(高德山, 108m)은 낮은 야산이라 원래 이름이 없는 야산이었다. 고려의 절의충신(節義忠臣) 석탄 이양중(石灘 李養中)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와 은둔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조선 조정에서는 한성판윤(현 서울시장)을 제수하고자 했어도 이를 거절하고 고려의 신하임을 끝까지 고수하여, 사람들은 그가 있던 우거지(寓居地)의 이름 없는 산을 고덕산이라고 명명(命名)한 것이란다. 즉 이양중의 인격이 고매(高邁)하고 덕성(德性)이 훌륭하여 <고덕(高德)>으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고덕산 정상 지척에는 지적측량의 기준점이 되는 지적삼각점(1995년 11월 설치)이 있다.
<지적삼각점>
고덕산에서 방죽근린공원으로 가는 길목에는 이은상시인의 <그리움>이 “뉘라서 저 바다를 밑이 없다고 하시는 고/백천길 바다라도 닿이는 곳 있으리라/님 그린 이 마음이야 그럴수록 깊으이다//하늘이 땅에 이었다 끝 있는 양 알지마오/가보면 멀고 멀고 어디 끝이 있으리오/님 그린 저 하늘은 그럴수록 머오시다(이하생략)” 마을 뒷동산 같은 고덕산은 ‘이은상의 그리움’처럼 비록 산은 낮을지언정 깊은 속정은 가보면 멀고멀어 어디가 끝인지 모를 일이다.
<산벚꽃>
<고덕 꽃길>
산벚나무와 야생복숭아나무가 어우러진 고덕뒷길을 따라 마지막지점 고덕역까지 오는 내내 내 얼굴에는 복사꽃이 살포시 내려와 젊은 날의 사랑을 일깨워 준다. 종달새 노래하는 고향의 뒷동산도… 달구지 덜컹거리는 신작로도… 고향의 봄은 하룻밤 풋사랑처럼 휙∼ 지나가겠지.
아! 나도 그런 날이 있었던가?
지나간 날은 모두모두 그립다.
자꾸자꾸 그리워진다.
<복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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