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소양강둘레길
(2017년 2월 11일)
瓦也 정유순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재작년 몹시도 무더웠던 여름에 한번 와서 아름다운 추억을 켜켜이 쌓아 두었는데, 오늘은 두 번째로 겨울풍경을 더 하려고 알람으로 잠 깨는 시간을 약속해 놓았으나 마음이 설레었던지 몸이 먼저 일어나진다. 올겨울에 내린 눈들이 산 계곡에 쌓인 모습은 솜이불처럼 포근하게 다가와 버스에 앉아마자 눈꺼풀을 무겁게 짓누른다.
<자작나무 숲 종합안내도>
이십대 초반 군에 입대하여 춘천 샘밭에 있는 보충대에 며칠간 대기병으로 있을 때, 대기병들 사이에서는 첩첩산중 오지에 있는 강원도 인제 땅을 가리켜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오겠네”하며 그곳으로 배치되기를 무척 꺼려하며 기도하던 모습들이 선명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왜 인제 오나 원통해서 어떻게 참았어”로 바뀌었다고 한다. 교통의 오지로 사람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던 인제와 원통이 자연이 살아 있는 경치 좋은 곳으로 변했다는 얘기다.
<인제군 관광 안내도>
주차장 길 건너 입구 산림청 산림초소에서 간단하게 입산신고를 하고 임도를 따라 간다. 길은 차가 교행 할 정도로 넓게 정비 되어 있는데 입구부터 흰 눈이 쌓여 아이젠을 꿰차고 뽀드득 거리는 눈길을 숨이 차게 올라간다. 여름에 무성했던 길옆의 야생화는 눈 속에서 봄을 맞이하려고 순한 잠을 자는 듯 기척이 없다.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자기 살을 내주었는지 임도 옆의 경사진 법면을 볼 때는 가슴이 아려온다.
<자작나무 숲 가는길>
<자작나무 숲 가는길 법면>
원래 이곳은 산림청 소속 국유지로 소나무 숲이었으나, 솔잎혹파리가 휩쓸고 지나간 뒤에 소나무를 벌채한 후 산림청에서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자작나무 70만 그루를 심어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 조성된 곳이다. 2008년부터 숲 유치원으로 개방하면서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이후 찾아오는 사람이 꾸준하게 늘어나면서 진입로와 탐방로를 만들었으며,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일반인에게 개방하였다.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는 섭씨 영하 20∼30도의 혹한에서도 잘 자란다고 한다. 표피에 는 종이처럼 얇은 껍질들이 겹겹이 쌓이고 기름기가 하얀 분가루처럼 축적이 되어 추위를 이겨낸다고 한다. 그래서 불이 잘 붙어 불쏘시개로 사용하고 타는 소리가 “자작자작”난다고 하여 붙여진 순 우리말이다. 또한 결혼식 때 쓰는 화혼(華婚)도 자작나무 불꽃같다고 하여 얻어졌다고 한다. 즉 “자작나무로 화촉(華燭)을 밝힌다”라는 뜻이란다.
<자작나무 움막>
그리고 목질이 박달나무처럼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하여 벌레가 안 생기고, 오래도록 변질되지 않는 특성을 가졌다고 한다. 두드리면 금속소리가 난다고 하며, 껍질이 희고 매끄러워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쓸 수 있고, 닦으면 광택이 좋아져서 많은 공예품의 재료로 이용된다고 한다. 합천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의 일부도 자작나무라고 알려졌고, 경주 천마총의 말안장을 그린 천마도의 재료도 자작나무 껍질이라고 한다.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천마도-네이버캡쳐>
여름에는 푸르디푸른 잎을 머리에 이고 아주 희게 쭉 뻗은 각선미를 자랑했을 자작나무들이 거추장스런 옷을 훌훌 털어버리고 하얀 눈발이 하늘로 솟은 양 20여m 높이의 미끈한 각선미를 뽐내고, 자작나무들이 속삭이는 사랑노래가 바람결에 조용히 들려온다. 아니 겨울요정들의 천국이로다.
<자작나무 숲>
그리고 나무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은 입술사이를 비집고 저절로 나오는 나의 감탄사다. 얇게 벗겨지는 껍질에 사랑편지를 써서 그대에게 보내고 싶다. 확 타오르는 불길처럼 그대 가슴에 불 지르고 싶다. 사랑의 테마형 의자에 앉아 달콤한 자이리톨(Xylitol) 향에 흠뻑 취하고 싶다.
<사랑의 테마 의자>
특히 자작나무는 빈 땅이 생기면 먼저 찾아가 뿌리를 내려 빨리 자라 숲을 이루고 다른 나무들이 찾아와 자기보다 키가 더 자라면 새로운 주인에게 미련 없이 자리를 양보하고 조용히 사라진다고 한다. 내손으로 일군 부(富)를 대대로 세습(世襲)하겠다는 인간들에게 욕심을 버리라고 고상하고 단아한 외모처럼 한마디 하는 것 같다.<정유순의 원대리 자작나무 숲(2015. 7) 인용>
<자작나무 숲속 교실>
오후에는 인제군 남면 남전리 군척교로 이동하여 소양강둘레길 2코스로 향한다. 군척교는 제44호 국도(양평∼홍천∼인제∼양양)가 지나가던 구도로의 교량이고, 옆으로 도로를 확장하여 인제대교가 소양강 상류를 가로지른다. 이곳 인제대교 밑 소양강은 해마다 1월 하순부터 2월 상순까지 <인제빙어축제>가 열려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가 모여드는 곳이다.
<인제대교>
군척교를 건너면 바로 인제읍이다. 소양강둘레길 2코스는 소류정에서 군척교를 지나 인제대교 밑으로 하여 38대교까지 이어지는 9㎞의 길이다. 소양강하면 노래 <소양강처녀>가 떠오르고, 호젓한 춘천을 언뜻 떠올리지만, 소양강은 인제군 서화면 북쪽 무산(巫山)에서 발원하여 인제의 내린천과 만나면서 비로소 소양강 상류가 되어 인제읍내를 흘러 소양호에 머물다가 춘천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든다.
<소양강 상류-군척교에서>
인제 소양강둘레길은 행정안전부의 공모사업으로 인제군에서 야심차게 만든 걷기길이라고 한다. 우리가 걷고 있는 2코스는 자동차도 교행이 가능할 만큼 넓은 길이었으나 응달진 곳이 많아 덜 녹은 눈이 소복하여 양지 바른 곳을 제외한 지역은 미끄러운 길이었다. 도로의 심한 굴곡과 길바닥이 패인 부분이 많고 낙석지역이 많아 비오는 날에는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소양강둘레길-2코스 지도>
<소양강둘레길-2코스 푯말>
길 중간 지점쯤 되는 곳에 설치한 전망대는 인제대교에서 38대교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전망대에 올라 주변의 산과 강이 어우러지는 장관은 자연이 만든 걸작이다. 그리고 그 어느 길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 할 수 있는 길이라고 나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소양강은 겨울답게 꽁꽁 언 얼음 위로 하얀 눈이 쌓여 있는 그 위로 자동차 바퀴 같은 자국들이 선명하다. 아마 군사 훈련이나 빙어축제기간 중에 다닌 찻길이 아닌 가 추측해 본다.
<소양강의 얼음과 눈>
<소양강 주변의 산>
<소양강 전망대에서>
멀리 국기게양대에는 태극기가 맑은 햇살을 받아 바람에 펄럭인다. 종점인 38대교가 가까워진 것 같다. 38이라는 숫자는 북위38°를 가리키는 것으로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고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이 패전국인 일본을 독일처럼 분할하여 통치를 하여야 하는데도, 일본 대신 당시 일제 식민지였던 대한민국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은 민족 비극의 선(線)이다. 그 38선이 지나는 곳에 교량을 건설하여 38대교라 부른다.
<38선 표시와 태극기>
38공원이 있는 인제군 남면 관대리는 소양강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육군3군단을 비롯한 많은 부대들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강원도 내륙의 교통중심지 역할을 하였고, 남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던 곳이란다. 그러나 소양강댐이 준공되면서 군부대들이 모두 이전하고 주민 상당수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40여명의 주민만 남았다고 한다. 수몰지역이 되어 육지 속의 외딴섬이 되었던 이곳에 2009년 10월에 다리를 완공했다고 한다.
<38공원 정자>
당시에는 40명을 위한 366억 짜리 다리라는 비난을 많이 받았지만, 38대교 개통 후 이곳 주민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의 반출효과가 발생하여 농작물의 종류도 불루베리 등 특수 작목으로 바뀌었고, 농가소득이 증가하자 귀촌·귀농하는 인구가 증가하였다고 하며, 땅 값도 무려 수십 배 크게 올라 경제를 비롯한 모든 생활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인제38대교>
<인제38대교 표지석>
38공원에는 분단의 역사를 상징하는 상징탑과 38이 표시된 언덕에 대형 태극기가 관제탑처럼 서있다. 주변에는 주민들을 위한 체육시설이 설비되어 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벌써 해는 옆으로 누워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분단의 상징탑>
춘천 샘밭 보충대에서 운 좋게 원주 통신부대 본부로 배치되어 소양호 수몰지역 통신시설 이설을 위해 당시 출장을 자주 왔던 관대리지역의 기억은 아무리 짜내도 나오질 않는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거나, 이곳 세상이 많이 변했거나……
<소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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