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숲을 연계하여 한강 걷기
(군자역→옥수역, 2016년 11월 24일)
瓦也 정유순
이십사절기 중 스무 번째인 소설(小雪, 11월 22일)이 엊그제 지나자마자 날씨도 차갑게 사나워졌다. 아침 공기를 가르고 군자역으로 가는 길은 본격적인 겨울을 알리는 신호인지 시린 코끝은 붉어지고 장갑 낀 두 손도 자꾸 호주머니만 찾아 들어간다. 군자역에서 동일로를 건너 송정동 골목길을 지나 중랑천 뚝 방 길로 나설 때는 두 귀도 귀마개로 가려야 했다.
<중랑천 뚝 방길>
비록 추운 날씨지만 자전거와 사람이 같이 갈 수 있는 길을 따라 하늘도 맑게 빛난다. 멀리 북한산 능선이 가깝게 보이고, 남산의 서울타워도 한결 가까워 보인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악취가 진동했던 중랑천에는 백로와 왜가리가 외다리를 꼬며 망중한을 즐기고, 중랑천을 따라 들어선 동부간선도로는 일상생활에 바쁜 사람들로 차량이 붐빈다.
<북한산 능선>
<중랑천과 동부간선도로>
뚝 방길 아래 좁은 길에는 세월의 무게에 눌려 떨어진 은행잎이 푹신한 쿠션을 만든다. 봄에 연노란 잎을 틔워 여름의 무성함과 화려함을 뽐내다가 가을에는 그 많은 미련을 다 버리고 밑으로 떨어져 내려 자연의 무상함에 대한 감상에 젖기도 하지만 지난날의 풍요로움을 추억 속으로 묻으면서 더 풍성하고 울창한 내년을 기약한다.
<은행나무 낙엽 길>
조정의 말을 기르던 곳이 있었던 송정동 큰 길 건너 화양동(華陽洞)은 조선시대에 이곳에 새워진 화양정(華陽亭)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속설에는 “병자호란 때 인질로 끌려간 부녀자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환향녀(還鄕女)’들이 살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졌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으나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단종(端宗)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영월로 쫓겨 갈 때 부인 송씨와 이별하며 회행(回行)하기를 기원했다하여 회행리(回行里)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중랑천>
지금 걷고 있는 이 땅은 우리가 소위 ‘뚝섬’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조선 태조부터 성종까지 약100여 년간 151차례나 왕이 직접 사냥을 나온 사냥터였다. 그리고 매년 음력2월 경칩과 음력9월 상강에 왕이 직접 군대를 사열하거나 출병하면서 독기(纛旗, 소꼬리나 꿩 꽁지로 장식한 큰 깃발)를 세우고 독제(纛祭)를 지냈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강과 중랑천에 둘러싸인 지형이 마치 섬처럼 보인다고 하여 ‘독기를 꽂은 섬’이라 하여 독도(纛島)로 불리다가 ‘뚝도 또는 뚝섬으로 소리가 바뀌었다고 한다.
<뚝섬의 은행나무 숲>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뚝섬에 있는 서울 숲 공원으로 들어선다. 서울 숲 공원은 당초 골프장과 경마장 등이 있던 공간에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대규모 도시 숲으로 만들기 위해 약35만평에 2,500억 원을 들여 2004년 4월부터 1여 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서울숲공원 안내도>
공원은 5개의 테마로 조성되어 있는데, 제1테마는 ‘뚝섬 문화예술공원’으로 시민들이 다양한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제2테마는 ‘뚝섬 생태 숲’으로 야생동물이 서식할 수 있는 자연 그대로 숲을 재현하였으며 472m의 보행다리는 한강선착장과 연결된다. 제3테마는 ‘습지생태원’으로 친환경적인 체험학습공간으로 제4테마는 ‘자연체험학습원’으로 제5테마는 ‘한강수변공원공원’으로 선착장과 자전거도로 등이 설치되었다.
<서울숲 습지생태원>
서울 숲 공원은 계절의 특성상 낙엽이 떨어진 길 밖에 보이질 않는다. 길을 따라 공원을 배회하다 보니 수도박물관이 나온다. 수도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 생산시설인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건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2008년 4월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박물관은 본관과 별관, 물환경전시관, 완속여과지, 야외정수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성수도상수보호구역 표지석>
박물관 경내로 들어서면 우선 물환경전시관이 나온다. 입구에서는 한강 수돗물의 이름인 ‘아리수’ 1병을 나눠주는데 물맛이 어느 생수 못지않다. 아리수는 고구려 때 큰 강이라는 의미로 한강의 옛 이름이다. 전시관은 생명의 원천이고 자연환경과 인간생활을 통해 물의 소중함에 대해 이해하고, 소중한 물을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수도박물관 입구>
<물환경전시관>
물환경전시관 전시방향을 따라 뒤로 나오면 수도박물관 본관이 나온다. 벽돌과 기와를 얹은 지상1층의 본관은 뚝섬수원지 제1정수장으로 1903년 고종이 헨리 콜브란(Henry Collbran)과 해리 보스트윅(Harry R. Bostwick)에게 상수도 부설 경영을 허가하여 1908년 9월에 준공되어 한국 최초로 수돗물을 생산하여 공급하기 시작한 곳이다. 내부에는 옛 정수시설과 상수도 100년의 역사를 담은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완속여과지와 함께 유형문화재(제72호)로 지정되었다.
<수도박물관 본관>
<수도박물관 본관 건물>
<수도박물관 본관 내부>
본관 옆으로 별관이 있다. 별관은 수돗물이 귀하던 시절 공동수도 앞에서 길게 줄을 서던 모습,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던 모습 등 추억의 사진과 상수도 관련 기술의 발전과정의 소개와 지하 물길 지도를 통해 ‘아리수’가 어떻게 어느 지역으로 공급되고 있는 가를 보여주고, 수질상태를 ‘서울 워터 나우(Seoul Water Now) 시스템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수도박물관 별관 내부>
박물관 내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지하 벙커로 된 완속여과지는 환경친화적인 방식으로 수돗물을 걸러내던 여과시설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 중의 하나다. 지형적으로 주변보다 낮은 곳을 파내어 자연적으로 물이 흐르도록 하고, 바닥의 모래층과 자갈층을 통과하여 물이 여과(濾過)되는 방식이다.
<뚝도정수장 여과지>
<수도박물관 여과지 외부>
삼백년 이상 된 보호수 느티나무는 뚝섬의 아파트 숲과 조화를 이루며 수호신처럼 우뚝하고, 야외공간에는 두레박과 작두펌프를 체험 할 수 있는 야외체험장, 1900년대부터 최근까지 수돗물을 생산∙공급하는데 사용했던 각종 시설들이 전시된 야외전시장, 뜨거운 여름을 식혀주는 아리수폭포, 아리수 생산과정을 견학 할 수 있는 뚝도 아리수정수센터 등이 준비되어 있는데 눈인사만 남기고 지나친다.
<수도박물관 300년 보호수-느티나무>
<수도박물관 야외전시장 수도꼭지 조형물>
무지개터널 쪽으로 하여 바람의 언덕을 넘어 꽃사슴먹이주기 길에서 꽃사슴과 얼굴을 마주치고, 보행자 다리를 따라 생태 숲을 통과하여 한강선착장으로 연결된 보행다리를 따라 나온다. 생태 숲의 능수버들은 치렁치렁 긴 머리 늘어뜨리며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바람의 언덕 상징물>
<서울 숲 꽃사슴>
<서울 숲 능수버들>
<보행자 다리>
한강 쪽으로 나오면 바로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에 당도한다. 한강 건너 압구정 아파트 숲 아래 강물은 오후 햇살에 물비늘이 반짝이고, 용비교 쪽으로 우회전하여 중랑천 초입으로 들어서면 ‘살곶이 벌’이 나온다. 살곶이 벌은 조선조 초기 왕자의 난으로 보위에 오른 태종(이방원)와 함흥에서 돌아오는 태조(이성계)가 만났던 곳으로 태종을 보자 화가 치민 태조가 화살을 쏘았으나 화살이 피해나가자 태조는 “하늘이 뜻”이라며 태종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 후로 이곳을 화살이 꽂힌 벌판이라 하여 ‘살곶이 벌’이라고 한다.
<한강의 물비늘-멀리 관악산이 보임>
<살곶이 벌 안내>
<용비교>
용비교 아래로 난 자전거와 인도를 따라 중랑천 하구를 지나 응봉산 아래 길로 접어든다. 용비교 상판 아래 교각 위에는 검은색 새들이 무리지어 앉아 있다. 멀리서 볼 때 무슨 까마귀들이 물에 내려왔나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조금 가까이에서 보니 가마우지들이 집단 서식하는 것 같다. 원래 도심의 고가다리 상판 아래는 비둘기들의 세상이었는데 언제부터 가마우지가 점령을 하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강에 물고기들이 많아서 먹이를 찾아 온 것 같다. 팔당호에도 그 많던 백로와 왜가리가 가마우지에 밀린지가 오래되었다.
<응봉산>
<가마우지>
적자생존(適者生存)이란 힘의 논리에 의해 새들의 서식지도 변해 가는 게 자연의 순리라고는 하지만 친숙했던 무리가 보이지 않고 낯이 설은 무리들이 점령군처럼 보이는 것이 나만의 심사는 아니겠지 하며 동호대교 북단 옥수역에 도착한다. 성수대교 너머 멀리 롯데월드 빌딩이 보이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에 가을편지를 띄워 본다.
<성수대교>
가을편지(정유순)
술 한 병 들고 찾아 가겠네
그대 아직 날 반기려나
늦가을 낙엽에 쓴
편지를 보내듯이
우리 쌓은 지난 이야기
얼마이던가
긴 시간 보내는 동안
서리 빛 머리칼을 날리며
술 잔 속에서 퍼져나는
우리들의 향기
달처럼 환하게 반기며
따스한 손으로
남은 날들을 맞잡아 가세
<낙엽>
<단풍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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