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茶山) 길을 따라서
(운길산역→팔당역, 2016. 10. 27)
瓦也 정유순
출근시간에 비 출근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길을 나선다는 것은 출근자에게 좀 미안한 생각을 하면서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으로 몸을 움직인다. 부지런히 서두른 덕택에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역 광장을 두리번거리다가 해방된 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일제가 우리에게 멍에처럼 씌워버린 잔재가 버티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더욱이 다산(茶山)선생의 정신과 실학사상이 깃든 다산 길 첫 걸음부터 기분이 흐려진다.
<운길산과 운길산 역>
그것은 마을 안내 표지석인 <진중一리 마진부락>이란 명칭으로 소위 부락(部落)이라는 단어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본의 천민집단의 대명사”이다. 안골, 닭실마을, 빛고을 등 아름답던 우리 마을 이름들이 일본강점기 때 온통 부락으로 바꾸어 조선마을들을 일본의 천민집단으로 강등시켜 버렸고, 일본사람들이 조선에 와서 집단으로 거주하던 지역은 읍(邑)으로 격상하여 차별하던 대표적인 시나브로 우리민족 정신 말살의 일제잔재로 빨리 시정해야할 과제다.
<진중1리 마진부락 표지석>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에 있는 운길산역은 중앙선 복선 전철화에 따른 선로 이설로 폐역이 된 능내역의 대체 역으로 생긴 역으로 인근의 운길산(雲吉山, 610m)의 이름을 따서 대신하였으며, 용문방면으로 새로 건설된 양수철교 앞에 있는 역이다. 운길산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를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특히 이른 아침에 운길산수종사의 다실(茶室)에서 바라보이는 양수리전경은 한 폭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다.
<양수대교와 양수리>
<양수철교>
양수철교 밑으로 난 자전거∙보행 길을 따라 옛 능내역 방향으로 길을 나선다. 새로 단장한 양수대교 밑으로는 북한강 물이 힘차게 합류하고, 자전거 길에 나선 자전거들은 페달을 밟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국도 6호선 조안나들목을 지나면 팔당호 안에는 하늘에서 바라보면 발자국 같아 이름이 ‘족자섬’인 이곳은 원래 왜가리와 백로의 서식지였는데, 요즘은 잠수왕 가마우지가 점령하여 배설물을 쏟아내는 바람에 숲이 훼손되는 등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고 하여 걱정이 앞선다.
<족자섬(중앙의 일자형 능선)>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자 능내역이 나온다.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던 기차역으로 1956년 5월에 생겼다가 중앙선의 이설로 2008년 12월에 페역(廢驛)이 되었고, 대신 운길산역이 신설되었다. 능내역은 기념물로만 남았으며 일부 철길도남아 보존되고 있으며, 역 앞의 자전거길이 나있다.
<능내역>
능내리(陵內里)라는 이름은 계유정란(癸酉靖亂) 때 수양대군(세조)을 도와 정난공신1등에 오르고 우의정과 명나라의 벼슬인 광록시소경(光祿寺少卿)을 하사받은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한확(韓確, 1403∼1456년)의 묘가 있어서 능안 또는 능내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한확의 따님이고, 명(明)나라 성조(成祖)의 여비(麗妃)가 한확의 누이이다.
<자전거∙보행 길>
능내역의 과거 풍경을 회상하며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다산생태공원으로 가는 오솔길로 접어들어 팔당 호안을 따라간다. 여름에 화사하게 피었던 연꽃들은 이미 졌고, 우산처럼 하늘을 받들던 연잎들도 가을을 맞아 시들어 간다. 물가에는 애기부들 등 수초(水草)가 잘 발달되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수질오염물질을 걸러내어 팔당호 물을 더 깨끗하게 정화하는 것 같다.
<연과 수초들>
어려서 소풍가는 것을 원족(遠足)이라고 했다. 원족을 온 기분으로 지참한 도시락으로 익어가는 가을을 음미한다. 머루로 아치형 터널을 만들어 지나가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하고, 멀리 보이는 팔당댐도 4대강 사업 덕분인지 머리에는 활처럼 휘어진 머리핀을 장식하고 있다.
<팔당댐>
<머루터널>
조류(藻類)생태습지를 지나 연꽃단지를 건너 뛰어 당도한 곳은 다산생태공원이다. 공원 내에는 수생식물원, 수변쉼터, 숲속쉼터, 생태습지, 정화습지 등이 자연친화적으로 구비되어 있고, 물억새도 하얀 이삭을 내밀어 가을바람에 살랑거린다.
<물억새 꽃>
<가을국화>
수변 길을 따라 걷다보니 전망대가 가까워진다.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이는 넓은 수면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물비늘이 한 낯의 미리내를 연출한다. 그리고 물 건너에는 조선의 관요(官窯)가 있었던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가 지금은 ‘붕어 찜’ 마을로 변하여 얼큰한 양념과 시래기냄새가 실바람 타고 실려 오는 것 같다.
<팔당호의 물비늘>
<팔당호-멀리 희미하게 분원리가 보인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실학박물관 쪽으로 이동한다. 실학박물관은 다산의 고향인 능내리 마재마을에 세워진 역사박물관으로 조선후기에 나타난 실학사상을 소개하고 연구하는 박물관이다. 박물관 전면에는 <하피첩의 귀향>이라는 특별전이 전시되고 있는데, 관람하지는 못했다. 하피첩(霞帔帖)은 다산이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부인 풍산 홍씨가 보낸 치마에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글을 적은 서첩이다.
<실학박물관>
박물관을 지나 바로 앞에 있는 다산의 생가로 간다. 생가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던 것을 1986년에 복원한 것으로 집 앞에는 강이 흐르고, 집 뒤로는 낮은 언덕이 있는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집의 당호(堂號)는 여유당(與猶堂)으로 다산이 1800년(정조24년) 봄에 모든 관직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다산생가-여유당>
여유(與猶)는 노자(老子)의 도덕경의 한 대목인 “여(與)함이여, 겨울 냇물 건너듯이, 유(猶)함이여, 너의 이웃을 두려워하듯이”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으로 조심조심 세상을 살아가자는 뜻이라고 한다. 즉 “겨울 냇물은 무척 차갑고 뼛속까지 추위를 느낄 것이니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냇물을 건너지 않을 것이며, 또한 세상이 두려운 사람은 함부로 행동할 수 없고,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항상 따르니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다산은 전남 강진 유배지에서 얻은 호이고, 여유당은 이곳에서 만년을 보내며 지은 호다.
<다산생가의 외양간>
집 뒤 언덕에는 다산부부의 합장묘가 있어 올라가 본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학자이다. 조선의 개국이념인 주자학을 신봉하던 당시에 조금이라도 사상적 이념에 어긋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든 서슬 퍼런 시기에 그는 오히려 유배지에서 뜻을 드높이고 학문을 완성하여 오늘의 시대에도 새겨들을 내용으로 광활한 학문의 세계를 이루었다.
<다산 정약용의 묘>
다산은 유배기간동안 자신의 학문을 연마해 일표이서(一表二書 :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하였고, 이 저술을 통해 조선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리고 다산은 비록 남인의 가계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조상이 당쟁의 중심인물이 되지 않았음을 자랑하였고, 그 아들들에게도 당쟁에 가담하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문벌과 당색을 타파하고 고른 인재등용을 주장했다.
<다산생태공원의 저술목록의 일부>
지나가는 바람처럼 다산의 유물과 생각들을 휙 돌아보고 나오는 게 좀 아쉽지만 어쩌랴∼ 지구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것을∼ 시간에 쫓겨 돌아 나와 생태연못 옆으로 하여 작은 언덕 같은 쇠말산(85.6m)을 넘어 다시 팔당역으로 가는 자전거∙보행 길로 들어선다. 옛날 중앙선 철도가 놓였던 자리는 철로가 걷어지고 자전거도로와 보행 길로 변신해 있다. 봉안터널을 지날 때는 칙칙폭폭 하며 열차가 지나가던 그 때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쇠말산 언덕>
<봉안터널>
수도권 2천만 명에게 공급되는 생명의 젖줄인 팔당호를 벗어나 댐 아래 강변을 따라 팔당역으로 간다. 검단산과 예봉산의 협곡을 지나는 한강변에는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된 가시박이 넝쿨을 이뤄 강변을 뒤덮는다.
<한강변 가시박>
팔당은 조선조 까지 경기도 광주 땅이었으나, 일본강점기 때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양주 땅이 되었고, 넓은 나루가 있어 바댕이 또는 팔당(八堂)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예봉산이 수려하여 팔선녀가 내려와 놀았고, 그 놀던 자리에 여덟 당을 지어서 팔당(八堂)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팔당역 광장에는 한강으로 달릴 자전거가 주인을 기다린다.
<팔당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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