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폭포에서 용이 날다
구룡폭포에서 용이 날다
(2016. 8. 13)
瓦也 정유순
말복을 이틀 앞둔 오늘도 새벽부터 끈적거리고, 극성을 부리던 매미도 더위에 지쳤는지 울음소리도 잦아든다. 계절상으로 여름휴가의 마지막이고 더욱이 광복절 연휴 첫날이라 서울도심을 빠져 나가는 차량행렬이 고속도로를 꽉 메운다. 그래도 버스전용도로가 있어 버스를 타고 쉽게 빠져 나가는 우리 모습이 다른 차에 비해 우쭐해지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는 보통사람이다. 약4시간여인 11시 경에 남원시 주천면 은송리 내송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내송마을 어느 집 아주 작은 연못에 핀 연꽃이 반갑게 반겨준다.
<내송마을 연꽃>
이곳은 지리산둘레길 1코스 입구이기도 하지만 오늘 우리가 목표로 하는 구룡폭포순환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포장된 마을길을 따라 개미정지 쉼터까지 가는 길은 복사열이 숨구멍으로 뜨겁게 들어온다. 그러나 개미정지 부터는 숲이 우거져 그런대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어떤 나무는 세상사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지 나무 밑에 포탄이 뚫고 지나간 양 구멍이 뻥 뚫려 있다.
<구룡폭포 순환코스>
<구멍 뚫린 나무>
경사진 계단 길을 따라 솔정지를 지나고 구룡치 언덕에 도착하니 오전이 후딱 지나친다. 대충 너른 길목에 자리 잡고 점심을 한 후 이 고개가 마지막이겠지 하며 힘을 내어 가면 또 다른 언덕이 기다린다. 역시 산은 편안한 길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산도 지리산 자락이라서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것 같다.
<구룡치를 알려주는 유일한 푯말>
<구룡폭포 가는 길>
구룡폭포와 지리산둘레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구룡정으로 잠깐 다가가서 살펴보는데, 구룡정은 어느 보통 기와집 같고 그 앞에 있는 육각정이 정자 같은 느낌이다. 정자 옆의 비석에는 구룡정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구룡정에서 계곡을 건너는 나무다리를 지나 구룡폭포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나 거리가 더 멀다고 하여 삼거리로 다시 와서 구룡폭포로 내려간다.
<구룡정 삼거리>
<구룡정>
구룡계곡(九龍溪谷)에는 음력 4월 초파일이면 아홉 마리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 군데 폭포에서 각각 자리 잡아 노닐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며, 본래 열두 계곡이 있었으나 숫자 중에 ‘9’가 가장 큰 수인지라 구곡이라 칭하고 곡마다 용이 노닌 소(沼)와 호(湖)가 있다하여 용호구곡(龍湖九谷)이라고도 한다.
<구룡폭포 안내>
그러나 조선조 때 일명 성리학(性理學)으로 불리는 주자학(朱子學)이 국가이념의 근간이 되면서, 주자(朱子)가 복건성(福建省) 무이산(武夷山)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지어 무이산의 아름다움을 구곡(九曲)으로 노래하였는데, 조선의 선비들이 주자학의 완성은 ‘구곡문화(九曲文化)’라고 인식하여 경치 좋은 곳에서 학문을 도야하고 후학을 가르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우리나라 도처에 있는 명승지에 구곡을 붙인 이름이 무려 15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열두 계곡인 용호계곡이 아홉 계곡인 구룡구곡 또는 용호구곡으로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구룡폭포>
구룡폭포(九龍瀑布)는 용이 놀던 자리라 그런지 떨어지는 물방울조차 범상치가 않다. 지리산에서 발원하는 원천천(元川川)의 상류구간인 구룡계곡의 가장 위쪽에 있는 폭포라 하여 원천폭포라고도 부른다. 구룡계곡의 아홉 절경을 구룡구곡(九龍九曲)이라 하는데 구룡폭포는 그중 제9곡으로 구룡구곡의 백미로 꼽힌다. 가파른 절벽에서 급하게 낙하하는 폭포가 아니라 비교적 완만한 경사의 바위를 타고 미끄러지듯 떨어지는 두 갈래의 폭포이다. 폭포 아래쪽에 형성된 작은 소(沼)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용 두 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것 같은 모습이라 하여 ‘교룡담(交龍潭)’이라고도 한다.
<구룡폭포>
수령 500년쯤 되어 보이는 소나무가 장군바위 틈새를 비집고 용케도 버텨온다. 구룡폭포에서 가파른 계단을 타고 한참을 내려오니 거대한 암석층이 계곡을 가로질러 물 가운데 우뚝 서 있다. 바위 가운데가 대문처럼 뚫려 있어 물이 그 곳을 통과한다고 하여 ‘석문추’라 하는데 바로 이곳이 8곡이며 ‘경천벽(擎天壁)’이라고도 한다. 擎天壁(경천벽)이란 암각이 있다고 하는데 아무런 안내표시가 없다.
<장군바위와 소나무>
<옆으로 뻗은 소나무가지>
아래로 내려오니 거의 90도 각도로 깎아지른 것 같은 ‘문암’이라는 암석층이 있는데, 이에 속한 산이 ‘반월봉’이고 여기서 흘러내린 물은 층층암벽을 타고 내려오는데, 아름다운 물보라가 생기며 만들어지는 모양이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하여 이를 ‘비폭동’이라 하며 이곳이 9곡 중 7곡이다. 물이 떨어지는 소(沼)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으니 몸 전체에 퍼지는 시원함이 용이 되어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비폭동 안내>
<비폭동 소(沼)>
<반월봉>
한30여분을 걸어 출렁다리를 지나 아래로 내려온다. ‘구룡산’과 그 밖의 여러 갈래 산줄기에서 흘러내린 계곡 물이 여기에서 모두 합류하는 것 같다. 둘레에 여러 봉우리가 있는데 제일 뾰족한 봉우리가 계곡물을 내지르는듯하여 그 봉우리 이름을 ‘지주대’라 하는데 이곳을 6곡이라 한다.
<지주대 안내>
급경사를 이룬 암반을 미끄러지듯 흘러내린 곳에 깊은 못이 5곡인 ‘유선대’이다. 유선대 가운데에 바위가 있는데 금이 많이 그어져 있기 때문에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때 신선들이 속세 인간들에게 띄지 않기 위해서 병풍을 치고 놀았다 하여 ‘은선병’이라고도 한다.
<유선대 안내>
<유선대 아래 계곡>
유선대를 지나 사랑의 다리 아래에서는 피서 나온 사람이 맑은 물에서 다슬기 잡기에 여념이 없고, 그 밑으로 챙이소(서암)가 나온다. ‘챙이’란 전라도사투리로 ‘키’를 나타내는 것으로 수확한 곡식을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를 말하는데, 빠른 물살에 패인 바위의 모양이 ‘챙이’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챙이소’라 부르고 있다. 또한 중이 꿇어 앉아 독경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바위가 있어 ‘서암’이라고도 불린다.
<다슬기 채취>
<챙이소로 떨어지는 물>
육모정을 향해 또 한참을 내려온다. 유난히도 흰 바위가 물에 닳고 깎여 반들거리고, 구시처럼 바위가 물살에 패여 있다. ‘구시’는 소나 말의 구유로 이곳의 사투리다. 또 거대한 바위가 물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가 하면 건너편 작은 바위는 중이 꿇어 앉아 독경하는 모습과 같다 하여 ‘서암’이라고 하며, 일명 ‘구시소’로 더 알려져 있는데 이곳이 4곡이다.
<구시소 안내>
<구시소>
조선(朝鮮)말기 전라도 지방을 중심으로 발달한 우리 민족 고유 음악의 하나인 판소리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편제(東便制)와 서편제(西便制)로 구분한다. 남원(운봉) 구례 순창 등 섬진강의 동쪽에서 성행한 판소리를 동편제라고 하는데, 이는 소리가 우렁차고 구절의 끝마침이 명확한 것이 특징이다.
<폭포수>
반면에 광주 나주 보성 해남 등지에서 성행한 판소리를 섬진강의 서쪽에서 발달했다 하여 서편제라고 하는데, 이 소리는 부드럽고 구성지며 소리의 끝이 길게 이어져 이른바 꼬리를 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동편제는 남원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는데, 과거에 많은 소리꾼들이 지리산 자락인 이곳 구룡계곡에 찾아와 소리를 얻기 위해 피를 토했던 곳이란다.
<판소리 설명>
구시소에서 조금 내려오니 육모정이 보인다. 황학산 북쪽에 암석층이 있는데 이 암벽 서쪽에 ‘조대암’이 있다. 이 조대암 밑에 조그마한 소가 바로 3곡인데, 학들이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해서 ‘학서암’이라고 하는데 들르지 못했다.
<육모정>
구룡폭포에서 육모정까지 오는 길은 한마디로 혼을 앗아간다. 그 자리에 서있는 내 자신이 신선이 된 것 같다. 제2곡인 ‘불영추’와 제1곡인 ‘약수터’는 뒤로하며 조선여인의 절개(節槪)의 표상인 춘향이의 묘를 먼발치로 구경한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맛본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의 가치를 진한 땀을 흘리지 않은 사람들이 어찌 그 맛을 알랴! 돌아가는 발길이 한없이 가볍다.
) --> <춘향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