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가리에 빠지다
아침가리에 빠지다
瓦也 정유순
2014년 8월 2일 토요일, 말복을 5일 앞둔 주말, 아침가리계곡으로 트레킹 가는 날, 새벽부터 세상이 붐비고 바쁘다. 기대 반 두려움 반의 설렘으로 밤잠을 설친 탓인지 버스에 앉자마자 눈꺼풀이 무겁다. 가는 길도 막히고 휴식을 위해 들른 휴게소도 꽉 찼다. 세상에 움직이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밖으로 다 나온 것 같다.
<고속도로 공사>
버스는 비선도로로 가는지 고속도로가 아닌 뒷골목 같은 도로로 질주한다. 물론 열심히 달려도 약속된 시간에 당도하기는 어렵다.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약수터에 도착하면 ‘점심을 먼저하고 트레킹’한다는 안내가 나온다. 구절양장(九折羊腸)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열한시 반쯤 힘겹게 도착하여 노찬야식(路餐野食)을 한다.
<방동주차장 점심>
옛날에는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오겠네”하던 강원도 ‘인제’와 ‘원통’이 지금은 “왜 인제 오나 원통해서 어떻게 참았어”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람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던 인제·원통이 자연이 살아 있는 경치 좋은 곳으로 변했다는 얘기다.
<아침가리의 자연>
‘방동리약수터’를 옆으로 하고 방태산 임도를 따라 불볕더위를 머리에 이고 가파른 길을 걷는다. 포장도로에서 뿜어내는 복사열은 콧구멍을 자꾸 막는다. 가끔 좁은 도로를 비집고 달리는 자동차는 삼복염천(三伏炎天)을 더 부채질 한다. 그러나 어쩌랴. 지금 이 순간 방태산자락을 걸으며 헉헉 거리는 것도 살아 숨 쉬는 자의 특권인 것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순간 안내센터(감시초소)에 당도한다. 그곳에서 마신 한모금의 맥주는 뼛속까지 시원하게 한다.
<아침가리 올라가는길>
이제부터 내리막길로 ‘조경동교’까지 걸어가면 ‘아침가리’트레킹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노루오줌’은 만발한 꽃망울을 솜털처럼 부풀려 '기약 없는 사랑'으로 오가는 길손을 맞이한다. 조경동교 아래 너른 바위에서 인증 샷을 하다가 땅벌의 공격을 받아 허겁지겁 물길 속으로 들어간다.
<아침가리 조경동교>
‘정감록(鄭鑑錄)’에 ‘3둔 4가리’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둔이란 펑퍼짐한 산기슭을 가리키고, 가리(거리)란 사람이 살 만한 계곡으로서 난리를 피해 숨을 만한 피난처를 뜻한다고 한다. 홍천군 내면의 ‘살둔(생둔)’ ‘월둔’ ‘달둔’과 인제군 기린면의 ‘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 ‘명지거리(결가리)’를 가리키는 데, 아침가리란 햇볕이 짧아 아침에만 밭을 갈 수 있는 곳 이라는 뜻으로 한자로는 조경동(朝耕洞)이라 표기한다고 한다.
<아침가리 계곡 시작>
아침가리골짜기는 구룡덕봉(1,388m) 기슭에서 발원하여 20㎞를 흘러 방태천으로 들어가는 골짜기로 계곡 트레킹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번쯤 가고 싶어 하는 코스로 4가리 중에서 가장 깊고 긴 골자기라고 한다.
<아침가리에 풍덩>
시오리(약6km)길 조경동교부터 진동계곡과 만나는 지점까지 아침가리계곡 트레킹 코스는 길이 따로 없다. 그래서 트레킹에 참여한 일행들이 흥분하는 것 같다. 평소에는 비만 조금 내려도 비옷을 입고 우산으로 가리는데 조금도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물을 자근자근 발로 밟고 엉덩이로 아예 깔아 뭉긴다. 산길 자갈밭을 걸을 때는 ‘무당이 작두 타듯’ 날선 돌 위로 온몸을 의지한다.
<아침가리 계곡>
한번 들어가면 끝날 때까지 빠져 나올 수 없는 곳. 계곡물을 가슴으로 받으며 붕 떠 있고, 생과 사가 순간순간 교차하며 희열을 느끼는 곳. 아침가리계곡의 치명적인 유혹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 곳. 그곳이 참 좋았다.
<아침가리계곡 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