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신비의 섬 굴업도

와야 정유순 2022. 6. 21. 21:46

신비의 섬 굴업도

(2022 6 1314)

瓦也 정유순

  대한민국의 자연 그대로의 신비를 간직한 굴업도! 인천항 연안부두에서 서남방으로 90km 떨어진 굴업도를 가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먼저 동인천역에서 택시로 인천연안여객터미널로 이동하여 덕적도 진리항에 도착한 다음 약 1시간 정도 기다리다 굴업도 가는 배를 갈아탔다. 덕적도와 굴업도를 오가는 배는 문갑도에 잠깐 들렸다가 갈매기의 호위를 받으며 굴업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갈매기>
 

  굴업도(掘業島)는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13 거리에 있다. 이 섬의 옛 이름은 구로읍도(鷗鷺泣島)’인데 나라 잃은 고려의 유신들이 이 섬으로 도망가자 갈매기와 백로조차 울고 갔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대동지지덕적도진조에 굴압도는 사야곶 서쪽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굽은> 굴()자와 <오리> 압()자로 지형이 물위에 구부리고 떠있는 오리의 모양과 비슷하여 붙여졌다

<굴업도지도>

 

  1910년경부터는 굴압도가 굴업도(屈業島)로 바뀌었고, 1914년에는 <> ()자와 <> ()자를 써서 덕적면 굴업리(掘業里)가 되었다. 굴업(掘業)은 땅을 파는 일이 주업이라는 뜻으로 굴업도는 쟁기를 대고 갈만한 농지는 거의 없고, 모두 괭이나 삽 등으로 파서 일구어야하기 때문에 사람이 엎드려서 일하는 것처럼 생겼다 해서 굴업(掘業)이란 지명이 되었다

<굴업리 표지석>

 

  선착장에서 내리자 숙소의 트럭이 와서 우리들의 짐 보따리를 챙겨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트럭에 짐만 올려놓고 마을까지 고개를 하나 넘어 이 섬에 하나 밖에 없는 큰말까지 걸어간다. 샛길 초입 오솔길은 가파른 계단이고 언덕에 올라서면 마을이 포근하게 다가온다. 담장 밑에는 영하 20도에서도 잘 자란다는 토종선인장 천년초가 노란 꽃을 피워 수줍게 맞이한다

<천년초>

 

  숙소에서 대충 짐정리와 점심 요기를 하고 길을 나선다. 선착장에서 들어 올 때 넘었던 고개를 넘어 목기미해수욕장으로 나간다. 굴업도는 두 개의 모래톱이 하나 된 섬으로 두 섬을 연결해 주는 곳이 목기미해변의 사빈이다. 사빈은 해안의 퇴적지형 중 특별히 모래로 구성되어 모래사장이 넓게 나타나는 지형으로 순수한 우리말이 없어 사빈(沙濱)으로 표현하는데, 우리말로 쉽게 풀어쓰면 모래해변이다

<동도와 서도를 연결하는 목기미해변>

 

<목기미해변>

 

  모래바닥에 사슴발자국이 찍힌 목기미해변을 지나 왼쪽 사구(砂丘)로 기어오르면 북쪽으로 연평산이 보이고 해변 바닷가에는 코끼리바위가 파도와 맞서 있다. 코끼리바위는 뒤의 절벽 배경에 숨은 그림처럼 서 있었고, 위에서 보면 그냥 박혀 있는 큰 바위 같이 보인다. 앞서 가던 도반께서 일러주어 모래언덕 경사를 타고 해변 가까이 내려가 본다. 바람과 세월이 다듬어 놓은 작품으로 밀물이 들어오면 코와 다리가 바닷물에 잠기는 것 같다

<코끼리바위>

 

  코끼리바위를 보고 언덕으로 올라와 연평산으로 향한다. 해변의 길의 일부는 날카로운 바위들이 하늘을 향한 너덜길이다. 조심조심 더듬어 나오면 세사토(細沙土)로 이루어진 모래언덕이라 두 걸음 나가면 한 걸음은 뒤로 미끄러져 걸음의 속도는 자연히 느려진다. 그래도 모래밭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소사나무들 때문에 타잔이 밀림을 휘젓듯 힘을 지탱하며 경사가 급한 곳은 사다리 오르듯 기어가며 돌산에 오른다

<연평산(뒤)>
 

  연평산(128) 정상에 올라서니 한 눈에 굴업도가 다 들어온다. 돌무더기를 쌓아 정상 표지목을 세웠으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움직인다. 저 멀리 이곳에서 내려가면 석양의 노을을 보기 위해 가봐야 할 서도의 개머리능선이 보인다. 다시 올라왔던 길을 더듬어 내려가 동도와 서도를 연결하는 목기미해변을 지나 숙소에 들려 숨을 고르다가 일몰을 보기 위해 개머리동산으로 향한다. 큰말해수욕장을 지날 때는 굴업도의 감동이 다시 꿈틀댄다

<연평산 정상>

 

  굴업도 마을 남쪽에는 큰말해수욕장이 있다. 조그만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盆地) 속에 있는 마을은 서해의 강한 바람을 피하기에 좋은 장소에 터를 잡았다. 때 묻지 않는 자연풍광과 자연생태계가 어느 섬보다 잘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밖에 없는 마을 앞에 시원하고 광활한 모래밭이 눈앞에 펼쳐진다. 큰말해수욕장 길이 400이며, 썰물 때 너비는 300로 웬만한 학교 운동장 10여 개를 합친 넓이라고 한다

<큰말해변-네이버캡쳐>

 

  물이 너무 깨끗하고 바닥의 모래가 흰 모래밭에 황금색을 띠고 있다. 이곳의 모래는 손으로 모래를 잡으면 모두 빠져 나갈 만큼 아주 고운 사질(沙質)이다. ‘큰말해변은 남쪽을 향해 반원형으로 팔을 벌려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할 자세다. 널찍한 모래사장이 아름답다. 이곳의 백사장은 곱고 하얀 모래로 여름철 해수욕과 모래찜질을 즐기는 데 그만일 것 같다

<모래 위의 사슴발자국>

 

  큰말해변에서 굴업도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개머리언덕까지는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고 멀지 않아서 힘들이지 않고 다녀올 수 있다. 깊은 숨 한번 몰아쉬고 산길을 조금만 따라가면 통신시설이 위치한 봉우리에 올라서게 되고, 여기서 다시 조금 더 올라가면 개머리능선으로 연결된다. 개의 머리모양을 닮았다는 개머리언덕은 넓은 구릉(丘陵)이다. 그리고 끝없는 초원(草原)이 펼쳐지면서 바다와 함께 어우러지며 장관을 이룬다

<개머리언덕>

 

  이 초원은 오래전에 굴업도 주민들이 소와 염소를 방목(放牧)하기 위해 초지를 만들면서 나무를 베어낸 것이라고 한다. 굴업도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인 20년 전의 일로 가축의 방목이 중단된 다음부터는 초지로 그냥 남아있다. 개머리 언덕 곳곳에는 텐트족들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이지만 백패커들의 요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머리언덕 초원>

 

  대머리 밑 둥 머리 같은 숲을 지나면 넓은 초지가 펼쳐지고 사슴의 무리는 한가로이 풀을 뜯다가 이방인의 출현에 귀여운 눈망울로 불청객을 바라본다. 넓은 초원을 이용해 사슴과 흑염소를 20년이 넘게 방목을 하여 사슴은 그 수가 200여 마리가 넘는다고 하며, 이곳의 흑염소나 사슴은 모두 다 야생이라고 한다. 연평산에 갈 때 목기미해변에서 본 짐승 발자국은 이곳 사슴들의 나들이를 한 증거일 것이다

<개머리언덕 꽃사슴>

 

  이곳은 백패킹의 명소로 소문이 나면서 찾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이와 못지않게 자연 훼손과 쓰레기와 화장실 문제 등이 골칫거리라고 한다. 이곳은 화장실이 한 곳도 없고 사유지(私有地)이기 때문에 공중시설을 함부로 세울 수도 없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이곳에 텐트를 치는 것은 탁월한 조망과 눈앞에 펼쳐지는 사방의 모든 풍경이 꿈결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며, 아울러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 밤하늘의 별들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흐린 날씨로 서해 낙조를 볼 수가 없었다

<개머리언덕 아래 해바위>

 

  음력 오월 보름밤을 곤히 자고 다시 큰말해수욕장으로 아침 산책을 한다. 분가루 같이 고운모래는 발이 반쯤 빠져 걸음을 더디게 하지만 파도가 밀려와 간질이면 백사장이 까르르 환하게 웃는다. 파도는 바다의 숨소리다. 고운 숨을 쉬면 파도소리는 고요하고, 조금 거친 숨을 쉬면 찰랑거리는 소리도 커진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 파고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힘껏 솟구친다. 멀리 보이는 삼형제바위가 어제는 시야가 흐렸는데 오늘은 좀 선명하다

<삼형제바위>

 

  다시 섬을 떠날 준비를 하고 짐은 트럭에 맡긴 채 몸은 굴업도에서 제일 높은 산인 덕물산을 향한 발걸음은 마을 앞 고개를 넘어 목기미해수욕장을 걷는다. 목기미해변에는 살아 움직이는 모래해변이라고 하는데, 이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2급인 검은머리물떼새가 봄에 알을 낳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개를 넘어 해변으로 들어올 때 바람에 뿌리가 뽑힌 소사나무는 생명의 질김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목기미해변>
 

 

  덕물산을 가기 위해 목기미해변을 지나 첫 언덕에 올라서면 곰솔과 소사나무가 어우러진 숲 사이로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1920년대 초까지 굴업도는 해마다 백령도에 이어 민어 파시가 열렸던 어업전진기지였으며, 한국전쟁 뒤에도 많은 주민이 살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자녀교육과 다른 일자리를 찾아 외지로 떠나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집터 흔적>

 

  보통 어느 산이고 멀리서 바라보면 완만한 곡선을 그리지만 가까이 가보면 함부로 대할 산은 아무 곳도 없다. 서쪽의 개머리능선에서 바라보이던 덕물산도 가까이 다가갈수록 절벽 같은 바위벽을 타야하고, 네 발로 기어야 하는 곳도 있다. 덕물산(138)은 굴업도의 가장 높은 산으로 동섬의 우측에 있다. 이웃의 연평산과 함께 두 팔이 되어 너울너울 춤을 추는 멋을 한껏 부리는 것 같다. 그 사이로 주변 암석의 특징으로 붉은 모래해변이 펼쳐진다

<덕물산 올라가는 길>

 

  이렇게 아름다운 섬에 인구가 감소와 화강암의 단단한 지층구조로 되어 있다는 조건과 해상수송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1994년 핵폐기물 처리장 시설지로 지정되었다가 지진대로 알려져 이듬해 취소되었다. 한편으로는 굴업도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시제이(CJ)그룹은 2006년 섬 전체를 깎아 골프장과 레저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이 섬은 또다시 논란의 대상이 됐다

<붉은 해변과 연평산>

 

  그 바람에 굴업도는 덩달아 세상에 알려져 주민들의 직업도 농어업에서 숙박 등 서비스업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섬은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 환경부장관 상 등을 받으며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굴업도의 관광단지 개발과 토끼섬의 천연기념물 지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목가미해변과 덕물산>

 

  덕물산에서 내려와 굴업도의 유일한 부속섬인 토끼섬에 가려 했으나 물이 빠지지 않아 들어가지 못하고 아쉽게 돌아선다. 토끼섬에는 굴업도 최고의 백미인 해식와가 있다. 해식와(海蝕窪)는 해안가 절벽이 움푹 파여 마치 작은 동굴이나 터널처럼 보이는 커다란 구멍이 형성된 해안지형으로 소금기가 있는 바닷물이 잔물결과 큰 물결로 해안에 들고나며 오랜 시간 암석이 깎여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토끼섬의 해식와는 길이 120m, 높이 약 4m로 국내 다른 지역보다 큰 규모로 알려졌다

<토끼섬>

 

  굴업도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덕적도를 거쳐 인천항으로 귀환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사는 곳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나, 이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파도에 밀려오는 폐어구 등 각종 쓰레기가 섬 곳곳에 박혀 있고, 방문객이 어쩔 수 없이 배출하는 쓰레기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무심코 버린 것들은 다시 우리 속으로 파고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사랑하는 이여

언제나 임 오실 날

기다릴지니

아니 오신 듯

다녀가시옵소서

<섬 쓰레기>

 

<인천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