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 보 이상 걷기 1,000일 달성
하루 만 보 이상 걷기 1,000일 달성
(2022년 2월 3일)
瓦也 정유순
인생의 전반기도 훌쩍 지나고 이제는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시간이 되었는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지나온 과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내 딴에는 그래도 바르고 곧게 살아왔노라고 자부했는데, 그 궤적을 이어보면 얽히고 설킨 실타래 같아 살며시 낯짝이 붉어진다. 아마 시대에 따라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많이 굴절되었나 보다.
그래도 이렇게 길을 걸으며 <나를 돌아본다는 것> 참으로 너무나 소중한 성찰의 기회이고, 이런 기회가 나한테 왔다는 것이 행운이다. 아장아장 걸음마 배울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끌려 재롱을 피웠을 것이고, 어머니 손잡고 고개 넘어 외갓집 갈 때는 조금 걷다가 다리 아프다며 업어 달라고 떼를 썼을 것이다. 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시나브로 호연지기(浩然之氣)에 몰두하며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세상을 걸으면서 목적지에 다 왔나 싶어 뒤돌아보면 그곳이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도 해보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보고 겪었지만, 돌이켜 보면 보이는 것은 하얀 백지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보려고 오늘도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지만 본 것도 보이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기분 좋아서 걸은 게 아니라 걸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같은 해가 뜨고 매일 찾아오는 하루지만 길을 나설 때는 항상 새로웠다. 자연이란 큰 스승이 함께한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항상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서 걸어와서 어디로 걸어가는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어떤 길인가? 그리고 지금 나는 어디 쯤 서 있는가?
이렇게 자문할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여기에 대한 답을 알 수 없다. 아니 영원히 그 답은 안 나올 수 있다. 그러니 답이 나올 때까지 걸을 수밖에 없다. 그래 걷자. 가슴이 설렐 때 더 많이 걷자. 이것이 내가 사는 세상이다. 이것이 내가 걸어갈 세상이고 답이다. 세상을 걷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여물게 하는 양서(良書)이자 스승이며 양식(糧食)이다. <정유순의 ‘걷는다는 것’ 중에서>
걷기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00일을 달성했다. 옛말에 “약(藥) 보다는 음식(飮食)으로 몸을 돌보고, 음식보다는 걷는 것이 건강(健康)에 최고(藥補不如食補 食補不如行補, 약보불여식보 식보불여행보)”라는 말이 있다. 오늘의 건강을 위해 내일도 모래도 계속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