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족산(鷄足山) 황톳길
계족산(鷄足山) 황톳길
(2020년 7월 11일)
瓦也 정유순
대전 동쪽엔 계족산(鷄足山, 423m) 서쪽엔 계룡산(鷄龍山, 845m)이 자리한다. 계룡산은 지형이 닭벼슬을 닮았고, 계족산은 닭발처럼 퍼져 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계룡산은 닭의 머리요 계족산은 닭의 발이며, 그 사이 닭의 넓은 몸통이 한밭[대전(大田)]이다. 계족산은 가뭄이 심할 때 이 산이 울면 비가 온다고 해서 비수리 또는 백달산이라고도 한다.
계족산 황톳길을 걷기 위해 새벽에 서울을 출발하여 신탄진 IC를 빠져나와 대덕구 장동 산림욕장 입구에 당도한다. 입구에는 이미 일찍 찾아온 차량들로 북적이고 가로(街路)에는 이팝나무가 둥근 열매를 맺어 반긴다. 이(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것이 소원(所願)이던 시절 쌀밥을 <이밥>이라 했다. 꽃 모양으로 보아 이팝나무는 이밥나무에서 유래된 이름 같다. 계족산은 대전 8경 중의 하나이며 1995년 6월에 개장한 장동삼림욕장 등이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다.
계족산이 있는 장동에는 6개 자연마을이 있는데, “진골에 가서 징을 냅다 쳤더니, 요골 놈들이 욕을 하므로 욕을 얻어먹고, 샛골로 가서 색색한다, 쳐다보니 텃골이 보여 텃골로 올라와 턱 쉰 후 새뜸에서 한바탕 놀고 신디로 와서 집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일주일 전 일기예보로는 이 마을에 장맛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물기를 머금은 후덥지근한 햇빛이 대신한다.
장동산림욕장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계족산 황톳길이다. 황톳길은 산림욕장 입구의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 보면 해발 200∼300m의 높이에서 펼쳐지는 14.5㎞의 본격적인 황톳길이 나온다. 반쪽은 황톳길이고 다른 반쪽은 일반 산책길이다. 황톳길은 봄부터 가을까지 체험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맨발 걷기를 유행시킨 계족산 황톳길은 소주로 유명한 (주)맥키스컴퍼니(구 선양)에서 사비를 들여 조성한 길이다.
이 길을 조성하게 된 계기는 당시 ㈜선양 소주회사 회장이 이곳을 등산할 때 하이힐을 신고 힘겹게 걷고 있는 여성에게 신발을 선뜻 벗어주었고 자신은 맨발로 남은 산길을 내려오게 되었다. 발이 무척이나 아팠지만 오히려 그날 저녁에 숙면(熟眠)을 취하게 되었고 아침이 되자 피로감이 싹 없어졌다고 한다. 그로 인해 맨발 걷기의 효험을 깨닫게 되었고, 이곳에 사비를 들여 맨발로 걷기 편하게 황톳길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휴일이라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맨발로 걷는 황톳길에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원적외선을 배출하는 황토는 생물의 성장에 필요한 물질이다. 안내판에도 ‘혈액순환 개선’ ‘소화기능 개선’ ‘치매예방’ 등 몸에 좋다는 내용뿐이다. 그런데 황토가 계족산 황토가 아니고 외지에서 들여와 공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는 형편에 이렇게라도 해 주는 것이 고맙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사실 황토를 깔았어도 14.5㎞의 황톳길을 맨발로 다 걸으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보통사람이면 1~2㎞만 걸어도 발바닥에 감각이 없어지는 것처럼 아프다. 그만큼 문명의 이기인 신발에 의존해와 감각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로 반죽이 되어 쫀득쫀득 발바닥에 달라붙는 황토의 촉감은 어릴 적 추억을 송두리 채 끄집어낸다. 황토 절벽에 구멍을 파고 둥지를 틀던 물총새가 더 그리워진다. 특히 궂은 날 도회지로 나갈 때는 촌티를 지우려고 황토색 신발을 물로 세척(洗滌)했던 일이 새록새록 하다.
계족산 황톳길은 전체적으로 완만한 숲길이고 자연의 상쾌함이 어우러져 누구나 걷기에 무리가 없는 산책로다. 부모님과 아이들 손 잡고 산길을 거닐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모든 부조화(不調和)가 이곳에 오면 자연스럽게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지금은 코로나 19로 중단되었지만, 매주 토·일요일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공짜로 열렸던 ‘뻔뻔(funfun)한 클래식’ 상설공연장은 맨발의 산책을 마친 등산객들이 무격식으로 잠시 쉬면서 마음의 풍성함을 담아갈 수 있던 곳이다.
임도삼거리를 지나 절고개에서 김밥으로 오전을 마무리한다. 절고개는 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래동과 동구 추동 사이에 있는 고개다. 응봉산 중턱에 자리 잡은 비래암이라는 절 때문에 절고개라 불렀다고 하는데, 비래암고개·용자암고개라고도 부른다. 매우 큰 고개로 현재에도 휴일이면 등산객이 이 고개를 이용하여 계족산이나 질치(迭峙) 또는 질현성(迭峴城) 쪽으로 간다.
계족산성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계족산 허리 자락만 맴돌다가 남쪽 능선인 질현성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계족산성은 백제 때 처음 세워진 석축 산성으로 사적(제355호)으로 지정되었다. 성벽은 높이 7m 정도, 둘레는 약 1,200m다. 산정을 빙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서쪽 성벽은 잘 복원되어 있으며, 동문 근처에서는 수문과 함께 저수지 유적도 발견되었다. 우리나라 성터와 절터의 공통점은 우물터가 꼭 있었다는 것이다.
황톳길을 벗어나 남으로 뻗은 능선을 타고 숲속으로 숨어든다. 푹신한 흙길은 황톳길과 또 다른 포근함이 안겨 온다. 동쪽으로 펼쳐지는 대청호는 한 폭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다. 대전광역시와 충청북도 옥천군·보은군에 걸쳐 있는 대청호는 1975년에 대전 대덕구 미호동과 충청북도 청주시 문의면 덕유리 사이 협곡에 높이 72m, 길이 495m의 댐공사가 착공하여 1980년에 완공되었다. 대전·청주지역의 식수는 물론 생활용수 및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생명의 젖줄로 국내에서 3번째 큰 규모의 인공호수다.
서쪽으로는 대전광역시(大田廣域市)가 자리한다. 한편, 이곳이 대전으로 불린 것은 일제가 1905년 경부선을 부설해 ‘한밭’마을을 그 통과지점으로 삼으면서 한자화하여 대전(大田)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일본인 거류민이 증가해 신사(神社)를 설치하였고 일본불교가 들여오는 등 일본풍의 시가가 먼저 형성되기 시작했었고, 군사 기지화되어 일본의 대륙침략거점이 되었다. 경부·호남선의 부설로 서울과 영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중심지가 되어 현재의 대전광역시로 계속 확장 발전되어 왔다.
질치(迭峙) 또는 질현(迭峴)은 대전광역시의 동쪽 대덕구 비래동에서 동구 주산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경부고속도로 대전 터널 북쪽에 있다. 일설에는 땅이 유난히 질퍽거려서 질티고개라 했다고 하는데, 고개가 길다 하여 길치고개·길티고개로도 불리고 있다. 과거의 경부고속도로 노선에서 이 부분을 지나는 터널을 길치터널이라고 하였고, 고개 위쪽에 백제 시대에 축조된 질현산성(迭峴山城)이 있다.
대덕구 비래동에 있는 질현산성은 질티고개 북쪽 정상의 산세를 이용하여 돌과 흙을 섞어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800m다. 동·서·남벽 3곳에 문터가 남아 있는데, 이중 남문터는 너비 3.8m로, 성으로 드나드는 가장 중요한 통로로 이용되었다. 성안에서는 백제·신라의 토기 조각과 조선 시대 자기 조각이 출토되어 조선 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증명한다. 성을 중심으로 북쪽 능선에는 질현성을 보완하기 위한 6개의 작은 성이 있다. 일설에는 백제부흥운동을 했던 자라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질현산성으로 들어서기 전에는 숲 사이로 아담한 오층석탑이 보인다. 조용히 내려가 살펴보니 ‘대한불교일붕선교종’ 소속 ‘보현사 5층 진신사리석탑’이다. 이 탑에 봉안된 진신사리는 네팔에 있던 1,600년 전 쇼얌부고탑(古塔)에서 출토된 사리를 1995년 6월에 네팔의 고승 로드로 승정(僧正)이 일붕 서경보(一鵬 徐京保, 1914~1996)에게 증정하여 이곳에 봉안하였다.
1965년 10월 도시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최근 명칭이 변경된 길치근린공원은 약 42만 평으로 대전광역시의 동부권에 위치한 주로 산림형태의 공원으로 경부고속도로 대전육교(비래동) 주변의 중앙광장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계족산과 길치근린공원을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숲속 마라톤 풀코스 42.195km의 숲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비래정이란 정자가 있다.
그리고 대전육교가 국가등록문화재 제783호(2020. 6)로 지정되었다. 이 육교는 1969년 10월 경부고속도로시설물로 준공돼 대전시 대덕구 회덕동부터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 구간을 연결해 왔다. 이후 교량 노후와 경부고속도로 확장 공사 시 대전IC-옥천IC까지 구간 노선 변경과 비룡JC 개통으로 1999년 9월에 완전히 폐쇄되었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구조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야간에는 조명시설이 설치되어 밤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계족산 황톳길에서 길치근린공원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초목이 무성하게 우거진 숲 사이로는 한방에서 홍한련(紅旱蓮)이라는 약재로 쓰이는 물레나물이 꽃을 피워 방긋 웃는다. ‘물레’라는 이름은 꽃 모양이 물레 또는 바람개비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꽃말은 추억이다. 길치고개 아래 삼포(蔘圃)에도 삼꽃이 얼굴 붉게 물들었다.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이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 그 길은 사랑의 밀어가 도란도란 속삭이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