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에 살으리랏다
부안에 살으리랏다
(2015년 12월 20일)
瓦也 정유순
부안이라는 이름은 조선 태종 16년(1416)에 부령현(扶寧縣)과 보안현(保安縣)을 합쳐 생겨났다고 한다. 부안의 지형은 북동쪽으로 동진강을 경계로 김제와 맞닿은 곳은 기름진 평야가 펼쳐지고, 남서쪽으로는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에서 뚝 떠내어 던져놓은 것 같은 산 덩어리들이 툭 불거져 반도를 이루고 서해바다와 만나 덩실덩실 춤을 추듯 가슴을 활짝 펴고 변산(邊山)을 이룬다. 오늘은 부안읍내에 있는 기생(妓生) 이매창의 묘를 둘러보고 직소폭포를 거쳐 능가산 넘어 내소사까지 가기 위해 새벽길을 달렸다.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의 서녀(庶女)로 태어난 이매창(李梅窓)은 시인이자 가무의 명인으로 조선의 대표적인 명기(名技)이다. 인조반정 공신 이귀, 홍길동의 저자 허균 등 당대의 관료와 문인, 묵객들과 교류의 폭이 두터웠다. 송도에 황진이, 서경덕, 박연폭포의 송도삼절이 있다면 부안에도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의 부안삼절이 있다. 황진이와 이매창은 명기이었고, 서경덕은 유학자(儒學者)로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친 반면 유희경(劉希慶)은 천민출신 천재시인으로 이매창의 연인이었다.
특히 허균과는 신분과 남∙여 관계를 떠나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는 동지적 관계로 승화하여 홍길동이란 소설을 만든 장본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38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이매창의 시 58수가 전해온다. 묘역에는 “이화우” 등 시비와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맑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이하생략)로 시작하는 허균의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라는 시비가 서 있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리(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매창묘역을 둘러보고 부안군청 부근에 있는 성황산 성터 길을 돌아 부안 서문 안 당산으로 간다. 당산은 우리 토속신앙에서 신이 있다고 믿으며 설치한 대상물이다. 부안 서문 안 당산은 높은 돌기둥과 돌장승으로 되어 있다. 돌로 만든 새를 머리에 이고 있는 돌기둥은 마을 밖의 부정한 것에 대한 침입을 막고 마을의 평안을 위해 세운 솟대의 일종이다. 장승과 솟대는 보통 나무로 만드는 것인데, 이곳은 돌로 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조금 이른 점심을 부안읍내에서 하고 오후에는 내변산에 있는 직소폭포로 가기 위해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탐방로 쪽으로 이동한다. 변산 안쪽 산악지대를 내변산, 그 바깥쪽 바다주변을 외변산으로 구분한다. 탐방센터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실상사를 지나 직소보에 이르니 바람 한 점 없는 명경지수에 내 마음을 비춰본다. 내변산의 중심에 있는 직소폭포는 약30미터의 물기둥이 수직으로 둥근 못으로 바로 떨어져 직소라는 이름을 얻었고 물줄기는 제2, 제3의 폭포를 이루어 구담구소(九潭九沼)를 이룬다.
눈이 녹아 질퍽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 재복이고개에서 한숨을 돌린다. 산 아래로 마을이 보이고 서해바다 곰소만이 흐린 날씨 사이로 아른거린다. 조금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능가산 주봉인 관음봉이 보이나, 시간상 관음봉삼거리에서 내소사로 방향을 틀어 조금 내려오니 내소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오면 “모든 것이 소생한다”는 내소사는 능가산 관음봉 아래에 자리한 천년고찰인데도, 백제를 침공한 소정방이 왔다하여 이름을 얻었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내소사는 백제무왕 때 창건한 사찰로 단청을 하지 않았고, 연꽃 문양의 문살무늬가 유명하다. 해우소 옆으로 나오는 길목에는 가을 벚꽃이 피어 있고, 전나무 숲길이 아름답다. 오는 길에 솔섬에 들러 낙조를 보려했으나 흐린 날씨만 보고 온다.
부안에는 맛과 풍경, 그리고 풍부한 이야기 등 즐거움이 있어 변산삼락’(邊山三樂)이라 불린다고 한다. 특히 영조 때 암행어사 박문수는 어염시초(魚鹽柴草 물고기, 소금, 땔나무)가 많아 부모를 봉양하기 좋으니 ‘생거부안(生居扶安)’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부안 변산반도에는 조선 때 배를 만들기 위해 공급하는 질 좋은 소나무가 있어 장흥 천관산, 태안 안면도와 함께 선재봉산(船材封山)으로도 유명했다.
그 밖에도 변산반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후박나무, 꽝꽝나무, 호랑가시나무 군락들이 있고, 물이 맑은 해수욕장들이 있으며, 채석강과 적벽강 등 아름다운 명소들이 가득하다. 특히 해안을 따라 만들어 논 부안변산 마실 길은 부안의 모든 것들을 안과 밖으로 연결해주는 부안의 보석들이다. 그래서 부안에 살으리랏다. 부안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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