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155마일을 걷다(다섯 번째)
휴전선 155마일을 걷다(다섯 번째)
(양구군 두타연→인제 내설악, 2015. 9. 12∼13)
瓦也 정유순
네 번째 탐사 계획이었던 두타연계곡은 지난 달 남북 간의 긴장으로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바로 화해가 되어 이번에 출입이 가능해져 아침부터 서두른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으로 50여 년 간 묶여 있다가 출입허용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원시의 자연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는 지역으로 알려졌다. 처녀지를 밟는 기분으로 마음이 설레고 들뜨는 것을 감출 수 없다.
월운저수지 앞에서 약1.6km 걸어가면 두타연 출입신청소인 제21사단 비득중대가 나온다. 안내소까지 가는 길목 수리봉에서는 6∙25전사자 발굴현장이 60여 년 전의 동족상잔의 아픔을 떠 올리게 하고, 길옆 산골 논에는 벼가 익어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데, 초입부터 다래와 머루가 침샘을 자극한다. 출입안내소에서 출입신고를 한 후 정해진 길을 따라 간다.
가끔 보이는 탱크저지시설과 철조망이 쳐진 길옆으로 연처럼 걸린 지뢰밭 표시가 을씨년스럽고, 몇 구비 완만한 고갯길을 넘으니 금강산가는 길 푯말이 눈에 띄는데 고개를 돌리니 철조망이 앞을 막는다. 금강산 장안사까지 30km, 남쪽에서 최단거리이나 언제쯤 남의 눈치 안보고 갈 수 있을까? 희망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빨리 그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소원해 본다.
지뢰철조망이 호위하듯 늘어선 길을 가다가 옆으로 빠지는 숲길이 나온다. 두려움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발길을 돌리니 천상의 샘물 같은 맑디맑은 물이 계곡을 적시고, 건너가는 징검다리는 구름을 밟고 가는 꿈길이다. 누가 관리하지 않았어도 비무장지대로 반세기동안 자연이 스스로 가꾼 생태계의 보고다. 이곳에 생각이 깊지 못한 사람들이 그릇된 자(尺)를 들이밀까 두렵다.
두타교를 지날 때는 몸도 출렁이지만 가슴이 더 출렁인다. 우회하여 밑으로 내려와 출렁다리에서 보이는 두타연은 마음을 더 급하게 한다. 원래 두타(頭陀)라는 뜻은 ‘깨달음의 길로 가기 위한 고행의 과정인 “닦고, 털고, 버린다”라는 무소유의 개념으로 청정하게 심신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 한다고 한다. 천 년 전에 두타사라는 사찰이 있어 이름을 얻었다고는 하나, 무소유의 개념이 없었다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자연의 소중한 선물이다.
두타연(頭陀淵)에는 높이 10m, 깊이12m의 폭포가 있으며, 폭포 주위를 따라 20m 높이의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 하고, 동쪽 암벽에는 3평정도의 굴이 있는데 바닥에는 머리빗과 말(馬)구박이 바닥에 찍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열목어의 최대 서식지이다.
조각공원을 지나 이목정으로 가는 근처의 숲속을 지나는데 굉음이 갑자기 난다. 뷰비트렙과 크레모아가 터지고 지뢰가 폭발하는 지뢰밭체험 장이다. 두 눈 부릅뜨고 주시하는 마네킹초병의 눈초리와 민간인출입접근금지 등은 DMZ생태계의 보고로서 자연생태 및 안보체험 관광코스로 딱 좋은 곳 같다. 오전의 약18km의 행군은 이목정에서 마감하고 허기진 배를 채운다.
오후에도 지난번에 못간 을지전망대로 간다. 해발 1,089m 높이에 위치한 전망대는 우선 화채그릇처럼 움푹 페인 펀치볼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남으로 지난번에 걸었던 도솔산자락의 ‘만대벌판길’이 아련히 보이고, 해발 천 미터 이상의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 한 개의 면(해안면)으로 오곡이 무르익어 가을 손길을 기다린다.
전망대 안으로 들어가서 북쪽을 바라보니 흙길로 표시된 북방한계선이 선명하게 보이고, 그 너머로 스탈린고지를 비롯하여 산들이 보이는데 구름에 가린 금강산은 흔적만 마음에 새긴다. 가칠봉, 스탈린고지, 매봉, 운봉, 박달봉, 간무봉, 무산 등이 금강산을 에워싸고 있는데, 가칠봉만 우리가 점령하고, 나머지는 군사분계선 이북이다. 그리고 ‘김일성고지, 모택동고지’ 등 사람이름이 붙은 고지는 혈투 끝에 남으로 편입 되었는데 스탈린고지만 북쪽에 있어 탈환하지 못한 게 아쉽다.
새들도, 구름도 자유로이 오고가는데, 아직도 남∙북 간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이곳에서는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통일 후 완성 될 참전 16개국의 이름을 딴 ‘펀치볼6∙25둘레길’ 계획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려오며 제4땅굴을 그냥 지나쳐 인제군으로 넘어와 서화면의 서화천(瑞和川) 길을 걷는다.
서화천은 인북천이라고도 하며 소양강으로 흘러 북한강 따라 한강으로 유입된다. 물이 깨끗해 1급수의 지표어종인 묵납자루, 쉬리, 꺽지, 무지개송어, 참갈겨니 등 많은 어류 종(種)들이 서식하여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오늘도 곳곳에 낚시 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가령촌교를 건너 ‘복사꽃 피는 마을’ 안내판을 따라 천변을 걷는다. 야생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것을 보니 봄에 피는 복사꽃이 화사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어른들이 열매에 기름을 매끈하게 메겨 손바닥 안에 굴려서 손 운동을 하던 ‘가래’열매(일명 개호두)가 뚝뚝 떨어진다.
해가 산마루에 걸릴 즈음 서화면 서흥1리마을에 당도한다. 이곳이 바로 용늪이 있는 대임산자락이다. 오는 도중 곳곳에 평화누리길 조성을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라 어수선하기도 했지만, 가을의 전령 쑥부쟁이와 구절초, 백당나무 열매들은 초가을 맛을 만끽하기에 충분했고, 잔잔한 강물에 비친 흰 구름과 함께 오늘을 추억 속으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는다.
어제는 인제군 북면 용대리 만해마을에서 별을 세며 밤을 보냈다. 새벽에는 바람이 살 속을 살며시 자극하는 가을바람이다. 어제저녁 자동차 불빛에 붉게 반사되던 것은 주민들이 가로수로 심어 놓은 ‘마가목’열매였다. 만해마을에는 문학관, 기념관, 한국시집박물관, 여초서예관(如初書藝館) 등이 있으나 지나가는 새벽바람처럼 스쳐간다.
육이오 때 설악산전투에서 희생된 장병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한옥 건물을 짓고 붙여진 이름이 장수대(將帥臺)인데, 건물의 규모(48평)로 보나 우수성으로 보아 근래에 보기 드문 훌륭한 산장으로 노송이 우거진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방마다 자물통이 잠겨 있고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점봉산 봉우리는 맑은 가을하늘과 앙상블로, 대승폭포 쪽 바위산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장수대에서 대승폭포까지는 불과 1km가 안 되지만 올라가는 경사는 가파르다. 대승이라는 총각이 절벽에서 석이버섯을 채취할 때 대승아! 대승아! 죽은 어머니가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에 목숨을 건졌다는 전설이 있는 대승폭포(780m)는 금강산구룡포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폭포라고 히는 데 물줄기는 가늘게 88미터 수직으로 떨어진다.
가파르게 장수대로 다시 내려와 여기까지 온 김에 한계령까지 구경한다. 한계령 바람은 역시 추위를 타게 하는데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과 차량이 북적댄다. 점봉산 능선의 바위는 부부싸움을 한 사람처럼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모습이 정겹다. 한계령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천불동계곡의 낙석으로 출입통제 팻말이 눈에 띈다. 한계령 고개사이로 떠 있는 뭉게구름은 가을색이다.
다시 내려와 십이선녀탕길로 접어들어 대승봉 쪽으로 올라간다. ‘십이선녀탕 계곡’은 열두 개의 물웅덩이와 열두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우뚝 솟은 솔밭길이 노무 상쾌하고, 잘 익은 도토리가 머리위로 떨어지며 가을을 노크한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지금까지 쌓여 온 세월의 때가 말끔히 씻어 내려간다.
남교리 마을 쪽에서 진부령 옛길을 따라 용대리 삼거리 쪽으로 내려온다. 용대리자연휴양림을 지나 도로를 따라 내려오니 용대리 ‘매바위인공폭포’가 시원하게 물을 떨어뜨린다. 한 겨울에는 폭포수가 그대로 얼어붙어 빙벽(氷壁)을 타는 등반 객들이 몰려와 땀을 뻘뻘 흘린다고 한다. 주변의 가게마다 이곳 명물인 황태를 파는 가게가 줄을 잇는다. 인공폭포 앞 용대리전망대 광장에서 이번 일정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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