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고원 길 운일암반일암 숲길
진안고원 길 운일암반일암 숲길
(20117년 8월 12일)
瓦也 정유순
북에는 ‘개마고원’이 있다면 남에는 ‘진안고원’이 있다. 그만큼 높은 산들이 이마를 맞대고 있어 붙여진 이름 같다. 이러한 산속의 마을과 마을을 이어 놓은 길이 ‘진안고원 길’이다. 총 14개 코스 중 오늘은 제9코스 운일암반일암(雲日巖半日巖) 숲길을 걷는다. 진안고원은 백두대간이 추풍령을 지나 서남쪽으로 남하하면서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을 뻗어내어 해발 500고지를 형성하여 전북지방의 지붕을 형성한다.
<진안고원 길 운일암반일암 숲길 지도>
운일암반일암은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와 주양리 사이에 있는 계곡절벽과 울창한 수풀로 둘러싸인 협곡으로 1990년 12월에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이 계곡은 운장산(1126m)과 동북쪽의 명덕봉(845.5m)과 명도봉(863m) 사이에 발달된 계곡이다. 약70여 년 전에는 양 옆으로 깎아지른 절벽에 따로 길이 없어 하늘과 돌과 나무만 있고, 오가는 것은 구름뿐이어서 운일암(雲日巖)이라 하였고, 하루 중에 햇빛을 반나절밖에 볼 수 없어서 반일암(半日巖)이라고도 불렀다.
<운일암반일암의 유래>
올 여름의 마지막 피서차량들이 고속도로를 빠져 나가느라 도로가 정체되지만 수도권을 벗어나면서 차량들은 제 속도를 찾아간다. 충남 금산을 경유하여 남이면을 지나면 바로 진안군이다. 진안군 주천면 대불삼거리 주차장에 내려 주자천을 건너는 노적교를 지나 운일암반일암 주차장에서 간단한 준비를 한 다음 숲길 시작점인 삼거를 출발한다. 주자천은 운장산에서 발원하여 운일암반일암 계곡을 지나 15㎞를 흘러 용담호로 흘러드는 금강의 지방하천이다.
<대불삼거리 이정표>
<주자천>
어제 말복이 지났지만 하늘의 이글거리는 태양은 오늘의 더위를 실감케 하지만, 곧바로 우거진 숲속으로 몸을 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고원지대답게 평지의 길이 아닌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고개 마루에는 잠시 쉬었다 가라고 운일정(雲日亭)이란 조그만 정자를 만들어 놓았다. 정자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니 바로 이곳이 진안고원의 제일의 협곡이리라. 밑으로 난 도로가 아득하게 보인다. 운일암반일암에는 절경이 빼어난 곳 28경<붙임참조>을 지정해 놓았다고 하나 숲이 우거져서 그런지 쉽게 눈에 띠지 않는다.
<운일암반일암 숲길>
<운일정>
<운일암반일암 협곡>
가파르게 올라오면 가파르게 내려가는 법, 계단이 없었다면 오르고 내려가기가 몹시 어려운 곳을 내려가서 숲길을 산보하듯 거닐다가 반일암무지개다리를 건넌다. 운일암반일암은 과거 전라감영 전주와 용담현을 잇는 주요한 길로서 현감(縣監)이 부임하는 통로이자 백성들이 물자를 지고 나르는 통로였다. 곳곳에 자리한 깎아지른 절벽을 지나기 위해 나무를 걸고 이동하기도 했다. 이를 사람들은 ‘허공중의 다리’라 불렀는데, 고지도에는 반일암잔도(半日巖棧道)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가파른 계단>
<반일암 무지개다리>
<운일암반일암 협곡>
물 흐르는 계곡마다 피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산수(山水)가 제아무리 절경이라고 해도 찾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절경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데 어찌 명경지수(明鏡止水)가 흐르는 시원한 물을 보고 어느 누가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엉덩이 하나 붙이기 어려운 물가에 어렵사리 자리를 잡고 준비한 도시락으로 배를 채운 후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물속으로 텀벙 들어간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동심으로 빠져든다.
<물속에서 피서>
이지역의 소나무들은 푸른색이 더 짙고 나무와 잎이 실하다. 옛말에 ‘황사가 섞여 내리면 소나무가 무성’하다라는 말도 있는데, 아마 금년 봄에 유난히 많았던 황사(미세먼지) 때문이 아니고 이곳의 토양이 소나무가 잘 자라게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 본다. 주자천변의 소나무 한 그루는 세상의 모든 풍상(風霜)을 머리에 얹어 놓은 양 낙락장송(落落長松)이 고고(孤高)하다.
<주자천변의 소나무>
하늘의 구름도 가을을 맞이하려는지 뭉게구름 지어 한 낯의 무더위를 희롱한다. 제2주차장과 텐트촌을 지나 보(洑)뚝 길과 주양교를 건너 숲속으로 몸을 숨기면 ‘맨 발로 걸을 수 있는 지압보도’도 만들어 놓았고, 여러 가지 운동기구도 설치해 놓은 쉼터가 있지만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잡초에 쌓여진다. 계곡이 흐르는 곳에서 다시 한 번 물에 몸을 담근 후 길을 나선다.
<진안고원의 구름>
<주자천 보뚝길>
<아~ 시원하다>
잘 정돈된 어느 묘역 앞에는 배롱나무 꽃이 한창이지만, 이곳의 소나무들은 홀로 서 있으면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에 나오는 소나무를 연상시킨다. 국보(國寶) 제180호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는 추사가 그린 대표적인 문인화(文人畵)다. 추사는 원래 화가는 아니지만 제주도에 유배 중에도 한결 같은 마음으로 찾아주는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세한도를 그려 주는데, 이상적은 그림을 중국으로 가져가서 중국의 학자들에게 보여주고 제영(題詠)을 받아 다시 제주도의 추사에게 보여드린다. 제영은 정해진 제목에 따라 시를 읊거나 또는 읊은 시가(詩歌)를 말한다.
<배롱나무 꽃>
<세한도를 연상케 하는 소나무>
닥발골 어느 농가에서는 잘 영근 아로니아 수확에 여념이 없다. 아로니아는 북미(北美) 동부지역의 습지대에 분포하는 장미과 관목이다. 주로 관상용이나 열매를 얻기 위한 식용으로 재배한다. 열매는 신맛이 나며 잼이나 시럽, 주스, 와인 등 다양한 식품에 활용한다.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 등이 풍부해 슈퍼푸드의 하나로 알려져 재배농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병충해에 강해 잘 자라지만, 수확시기를 잘 맞춰야 하기 때문에 노동력을 집중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한다.
<아로니아>
길옆의 나무그늘에는 ‘코리아 바나나’로 불리는 주먹만 한 으름이 영글어 간다. 으름은 우리나라 산지에 자생하며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열매는 맛이 달고 식용이지만 씨가 많이 들어 있다. 어린 순은 나물로 무쳐 먹고, 줄기는 바구니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하며, 줄기와 뿌리는 약용으로 쓰이는데 특히 이뇨(利尿)와 진통(鎭痛)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한자명은 목통(木通)∙통초(通草)∙임하부인(林下婦人)이며, 그 열매를 연복자(燕覆子)라 한다.
<으름>
<으름>
운일암반일암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는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오가는 사람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그 옆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꽃다운 목숨을 바쳐 민족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한 호국용사들의 충혼을 기리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한 선조들의 업적을 이어 받아 미래의 뜻 깊은 나라사랑의 가르침으로 삼고자 세운 ‘대한의백(大韓義魄)’비가 외롭게 서있다.
<운일암반일암 종점 표지판>
<느티나무>
<대한의백 비>
계곡의 끝 지점에서 칡이 무리를 이룬 길을 따라 다시 먹고개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간다. 내 건너에는 생김새가 범상치 않은 명덕봉(明德峰)이 보인다. 명덕봉은 ‘봉우리가 짚을 틀어서 바가지처럼 만들어 재래식 벌통 위를 덮는 뚜껑인 멍덕처럼 생겼기 때문에 명덕봉’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누워 있는 사람의 형상으로도 보이고, 기(氣)들이 뭉쳐 하늘로 치솟는 형상으로도 보인다.
<먹고개로 가는 길>
<명덕산>
먹고개 넘어 개천에서 다시 한 번 물에 발을 넣어 양반피서를 한 후 당도한 곳은 운일암반일암 28경 중 제1경인 와룡암(臥龍菴)에 당도한다.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 있는 와룡암은 긍구당 김중정(肯構堂 金重鼎, 1602∼1700)이 1636년(인조 14)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있었으나, 병자호란이 발생하고 남한산성에서 치욕적인 화의가 이루어지자 친명파의 한사람으로 사림에 묻힐 것을 각오하고 조부인 김충립과 함께 낙향하였다.
<용이 누워 있는 형상의 바위에 지은 와룡암>
<와룡암>
1654년(효종 5)에 강당을 짓고 ‘와룡암(臥龍庵)’이라 편액한 후 많은 문인과 학사들을 배출하였다. 긍구당’은 서경(書經)에서 따 온 구절로, ‘조상의 업적을 길이 이어 받으라’는 뜻이라고 한다. 주양리는 주위의 산천 이름이 명덕봉, 명도봉, 화산봉, 주자천 등 명나라를 생각하게 하는 지명에 애착을 느껴 ‘쌍고도덕 대명일월(雙高道德 大明日月)’이라 자위하며 정착하였다. 그의 후손 김재호(金在浩)가 제12경인 대불바위 가슴팍에 <雙高道德 大明日月>이라는 글자를 새긴 연유를 생각하며 주천면사무소에 당도하니 일정이 끝난다.
<주천면사무소>
이미 망한 명나라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여 당시 실세인 청나라를 오랑캐 취급하며 면종복배(面從腹背)한 조선의 실권자들이 세상의 변화를 어찌 알았을까? 쓸데없는 걱정으로 세월만 축내다가 끝내는 일제에 나라가 망하고 민족적 수난을 겪어야 했던 우리가 아니던가. 그 때를 반면교사로 삼아 정신 똑 바로 차려야 한다.
<바위 틈에 자라는 질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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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운일암반일암 28경(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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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경 와룡암(臥龍菴)
제2경 한천(寒泉)
제3경 백록담(白鹿潭)
제4경 조영지(鳥影池)
제5경 견우탕(牽牛湯)
제6경 텃골못
제7경 삼선탕(三仙湯)
제8경 명천(明泉)
제9경 중선바위[僧立岩]
제10경 형제바위[兄第岩]
제11경 천렵바위
제12경 대불바위[大拂岩]
제13경 옥폭연(玉瀑淵),
제14경 열두굴,
제15경 만곡바위[晩谷岩]
제16경 세불연(洗拂淵)
제17경 옥정연(玉鼎淵)
제18경 운일암산장(雲日岩山莊)
제19경 복룡암(伏龍岩)
제20경 용소
제21경 옥정봉(玉鼎峯)
제22경 취저암(吹著岩)
제23경 캠핑장
제24경 칠은산(七隱山)
제25경 태평 봉수대(太平熢燧臺)
제26경 노적봉(露積峯)
제27경 오성대
제28경 운장산(雲長山)
<네이버 한국향토문화대자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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