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두물머리물래길과 세미원 그리고…

와야 정유순 2017. 7. 26. 13:50

두물머리물래길과 세미원 그리고

<2017. 7. 6>

瓦也 정유순

   오늘은 두물머리물레길과 세미원에 가기 위해 양수리 행 전철을 탄다. 경의 중앙선 양수역은 200512월 수도권 광역전철이 개통된 이후 현재는 수도권광역전철만 정차하고 있으며, 일부 급행열차가 출근시간대에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양평군 양서면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편리하다. 그러나 양수역이 위치한 지역은 양수리가 아니고 양서면 용담리이다

<양수역>

   두물머리가 있는 양수리는 양평군 양서면에 있는 섬이었다. 물론 서종면 문호리와 접하는 양수리 지역은 섬이 아니지만, 북한강이 흘러 내려오다가 용늪으로 갈라지면서 섬이 되었으나 지금은 연육교를 놓아 섬 같은 분위기는 전혀 없다. 양수리는 금강산 단발령에서 힘차게 남으로 쏟아내는 북한강과 금대봉 검룡소에서 솟아 나와 느리면서도 장엄하게 뻗어 내린 남한강의 물이 만나는 곳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웃의 용진리와 석장리, 벌리 일부를 합쳐 지금의 양수리가 되었다.

<명아자여뀌>


   양수역에서 데크를 타고 내려오면 애기부들 등 수초가 우거지고 연()이 꽉 찬 용담(龍潭)이 나온다. 용담은 남한강이 마을을 돌아 흐르며 만들어진 큰 늪에 용이 있다고 하여 용담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정리, 양수두리, 석장리, 벌리의 각 일부와 서시면의 월계리 일부를 합쳐 용담리가 되었다. 참고로 양수역은 양평물소리길두물머리물래길의 시작점이다.

<애기부들>

<용담의 연꽃>


  용담의 연꽃 유혹을 뿌리치며 세미원으로 간다. 세미원(洗美苑)관수세심(觀水洗心, 물을 보면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관화미심(觀花美心, 꽃을 보면서 마음을 아름답게 하며) 관산개심(觀山開心, 산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열일이다)”의 장자(莊子)의 글에서 집자(集字)하여 공원 이름을 지었다. 아름다운 꽃들과 맑은 물이 넘쳐나고, 주변의 검단산, 예봉산, 운길산 등을 바라보며 마음을 깨끗이 하고, 아름답게 하며, 마음을 열기에 딱 좋은 곳이다.

<세미원>


   세미원이 있는 이곳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남한강이 흘러 내려오면서 부유물질(浮游物質)이 신양수대교 교각 밑으로 밀려 쓰레기투기장을 방불케 한 지역이었다. 이러한 곳을 이곳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노력으로 쓰레기를 수거한 다음 수질정화능력이 뛰어난 연을 갖다 심었고, 경기도에서는 나중에 규제를 재정비함은 물론 100억 원의 재정지원을 하여 물과 꽃이 어우러지는 세미원이 20045월 개원하였고, 20125월에는 <재단법인 세미원>으로 재탄생하였다.

<신양수대교 교각>


   세미원의 자랑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한창 만발하는 연꽃이다. 매년 이만 때면 사람 키만큼 자란 연들이 연못을 가득 메우고 큰 주먹만 한 꽃들이 연못을 수놓는다. 면적 18규모에 연못 6개를 설치하여 연꽃과 수련·창포를 심어놓고 6개의 연못을 거쳐 간 한강물은 중금속 등 오염물질이 거의 제거된 뒤 팔당댐으로 흘러들어가도록 구성하였다.

<세미원의 연꽃>

 

   연꽃박물관인 향원각(香遠閣)에 둘러보고 매표소를 지나 빨래판 돌길을 지나면 태극기 문양의 불이문(不二門)을 통과하면 연꽃단지가 나온다. 불이문은 대승불교의 경전인 유마경(維摩經)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정토(淨土)와 예토(穢土)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사상(不二思想)”을 통해 절대 평등의 경지에 들어가야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근거를 두고 만든 것 같다. 그리고 빨래판 돌길은 한강의 맑은 물을 보고 마음을 깨끗하게 세탁하라는 상징적 의미로 조성한 것 같다.

<향원각>

<불이문-네이버캡쳐>


   빨래판 돌길을 걸으며 마음을 깨끗이 씻고 안으로 더 들어가면 둥근 돌담으로 둘러진 장독 분수대가 나타나며 물줄기로 한 여름의 더위를 식혀준다. 가지런하게 놓인 장독대와 잘 생긴 소나무가 어우러져 고향의 정겨운 풍경이 만들어 지고, 장독대를 지나면 꽃이 만발한 페리기념연못이 도열한다. 이 연못은 미국의 저명한 연()연구가 고() 페리 슬로컴 선생이 개발한 연꽃들이 자라고 있는 연못이라고 한다.

<장독대 분수>

<페리기념 연못>


   연꽃은 빛을 좋아하는 식물로서 생명의 근원인 물과 태양과는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태초에 세상에는 물만 있었고, 이것을 ‘Nu’라고 하였으며, 그 물속에 연이 있다고 생각했다. 깊이를 잴 수 없을 만큼 깊고 맑은 물을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인식하였고, 물에서 솟아난 연꽃은 생성과 부흥을 상기 시킨다고 믿었다. 또한 진흙 속에 있는 뿌리를 지하의 세계, 물 위에 있는 줄기는 지상의 세계, 꽃은 대기 중에서 자라는 하늘의 세계라고 믿는다.

<세미원의 연꽃>


   불교에서는 연꽃의 의미를 석가 탄생 때 청() () () () ()의 오색 연꽃이 피어나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또한 연꽃은 오랜 수행 끝에 번뇌의 바다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자의 모습에 비유되기도 하고, 더러운 곳에 처해 있어도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며 청정하고 지혜로운 자태는 부처에 비유되기도 한다.

<세미원의 연꽃>

<세미원의 연꽃>


   또한 연꽃이 의미하는 불교의 원리는 활짝 핀 연잎은 우주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잎자루인 엽병(葉柄)은 우주의 축을 의미하며, 연근(蓮根)의 아홉 개의 구멍은 구품(九品)을 말하고, 세 개의 뿌리는 불() () ()의 삼보(三寶)를 뜻하며, 연의 씨는 천년이 지나도 심으면 꽃을 피운다 하여 불생불멸(不生不滅)을 상징한다. 더욱이 연꽃은 인간이 동경하는 이상형의 세계를 상징한다. 이러한 의미로 볼 때 연꽃으로 핀다는 것은 불교의 완성이 아닌 가 생각한다.

<심청이 연꽃>

<세미원의 연꽃>

<세미원의 연꽃>


   6개의 연못을 대충 둘러보고 애련문(愛蓮門)을 거쳐 세한정(歲寒庭)으로 발을 옮긴다. 세한정은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를 기본으로 하여 세미원의 한 부분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소재로 정원을 조성한 곳이다. 세한도에 담긴 송백(松柏)의 늘 푸르른 정신과 스승과 제자 사이에 있었던 변치 않는 공경과 사랑과 신뢰의 장무상망(長毋相忘) 정신을 배울 수 있는 인성 함양의 학습장으로 만들었으며, 정원 안에는 송백헌(松柏軒)이란 집을 지어 세한도의 목판을 걸어 놓았고, 歲寒庭(세한정)松柏軒(송백헌)의 글씨는 추사 글자를 집자(集子)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애련문(愛蓮門)>

<세한정 입구>


   국보(國寶) 180호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는 추사가 그린 대표적인 문인화(文人畵). 추사는 원래 화가는 아니지만 제주도에 유배 중에도 한결 같은 마음으로 찾아주는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세한도를 그려 주는데, 이상적은 그림을 중국으로 가져가서 중국의 학자들에게 보여주고 제영(題詠)을 받아 다시 제주도의 추사에게 보여드린다.

<송백헌 전경>

<송백헌>


   그 후 세한도는 일제강점기 때 추사를 연구하던 후지츠카(藤塚)의 손에 들어간 것을, 서예가 소전 손재형(素荃 孫在馨, 19021981)이 두 달여간의 끈질긴 설득 끝에 1944년 한국으로 찾아온다. 그해 공교롭게도 후지츠카 집이 폭격을 받아 많은 추사의 자료들이 불타 버렸다고 한다. 세한도를 제작하여 송백정에 걸어 놓은 것은 세한도의 험난한 과정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세한도 목판>


   세한정에서 나와 빼다리를 건너 두물머리로 향한다. 배다리[舟橋]배를 일정 간격으로 늘어놓고 그 위에 판재를 건너질러 만드는 부교(浮橋)의 일종이다. 배다리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주나라 문왕(文王) 때이다. 우리나라는 고려 때인 1045(정종11)에 임진강에 설치했던 일이 있고, 조선 때 연산군이 청계산에 수렵을 가기 위해 민선 800척을 동원하여 한강에 배다리를 놓은 적이 있다.

<배다리>


   가장 대표적인 것은 조선 정조 때 양주에 있던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의 현릉원(顯陵園)으로 옮기고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등이 참여하는 주교사(舟橋司)의 주관으로 매년 한강에 배다리를 설치하여 자주 능행(陵幸)을 다녔다. 이러한 우리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섬기고자 했던 정조의 효행과 다산의 학덕을 기리고자 세미원에서 두물머리로 연결하는 245의 구간에 52척의 목선을 물 위에 띄워 폭4의 배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배다리 입구>


   배다리 건너에 있는 상춘원(常春園)은 들르지 못하고 두물머리 느티나무 아레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400년 이상이 된 노거수(老巨樹)로 잎의 푸르름이 주변과 잘 조화를 이루며 존재의 가치를 더 높이며 서있다. 마치 한 그루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우산형의 나무모양을 하고 있다. 느티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면 강과 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두물머리 느티나무>


   예로부터 돌이 많아 돌더미로 불렸던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이 만나는 곳으로 양수리(兩水里)에 속한 곳으로 양수리 중에서도 나루터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옛날에는 강원도와 충청도의 물길이 서울 뚝섬과 마포나루를 이어주는 중간 나루터여서 매우 번창 했다고 한다. 그러나 육로의 발달과 1973년 팔당댐의 완공되어 일대가 그린벨트로 묶이면서 어로행위와 선박건조가 금지되면서 나루터의 기능이 사라졌다. 두물머리는 TV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곳이며 웨딩사진 촬영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두물머리 나루터>


   두물머리 물래길을 걷다보면 친환경농업으로 소비자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농장시설들이 보이질 않고 개망초만 그 자리를 차지한다. 신양수대교 교각 밑으로 하여 데크를 따라 길을 걷는다. 갈대 등 수초들은 충분한 일조량과 수분 공급으로 무성하게 자란다. 길 따라 도착한 곳은 한강물환경연구소이다. 한강물환경연구소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소속기관으로 한강의 수질과 생태 등에 관한 연구를 하는 국가기관이다.

<개망초>

<갈대 등 수초>

<한강물환경연구소>


   이곳에 온 이유는 한강수계관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물 사랑 체험 생태학습선을 타고 팔당호에 대한 수질과 자연생태현황에 대한 선상 관찰을 하기 위함이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한강물환경생태관을 관람하며 잠시 더위를 식힌다. 한강수계관리위원회는 팔당호 수질개선을 위한 팔당호 등 한강수계 상수원 수질관리 특별종합대책(1998.11.20)’에 따라 한강수계 상수원 상류지역의 수질개선 및 주민지원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협의조정기구로 19993월 환경부(한강유역환경청)에 설립된 기구이다.

<물사랑체험생태학습선>

<운항 중인 생태학습선>


   오후 3시가 되어 약속시간대로 생태학습선에 승선한다. 오늘 승선한 사람은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한 사람들이다. 배가 출발하여 북한강 쪽으로 향한다. 양수대교를 지나면 우측으로 67규모의 양수리환경생태공원이 숲을 이룬 채 펼쳐진다. 원래 이곳은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가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려 했으나, 환경부가 수도권 2,500만 명의 식수원인 한강을 보호하기 위해 물 이용부담금으로 매입하여 건설을 중단시키고 생태공원으로 거듭난 곳이다.

<양수리환경생태공원의 도라지 밭>


   19998월에 도입된 물 이용부담금상수원 지역의 주민 지원사업과 수질개선사업의 촉진을 위해 상수원수질 개선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부과하는 부담금으로 부과 및 징수는 수도요금 통합고지서에 물 사용량에 비례하여 물 이용부담금을 병기해 고지하여 징수한다. 이 부담금은 상류지역 자치단체의 환경기초시설 설치, 운영비 지원, 상수원 주변지역 주민지원 사업, 수변구역 내의 토지매입 및 생태공원 조성 등에 쓰인다.

<두물머리와 무궁화>


   생태학습선은 신양수철교를 지나 상류로 올라가면 양수리 노적봉이 보이고,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상수원보호구역 부표가 있는 곳에서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의 삼봉산 쪽으로 회항한다. 해설사가 남양주종합촬영소가 있는 곳을 설명하는데, 배 안에서는 위치 확인이 어렵다. 운길산(610) 수종사(水鐘寺)에서는 낙수(落水)소리가 범종을 울리는 소리처럼 들려오고,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를 지나 족자섬 앞으로 지난다.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

<팔당호 족자섬>


   족자섬은 두물머리 남쪽 한강(팔당호) 한가운데에 있는 섬이다. 팔당댐이 준공되기 전에는 수심이 얕아 사람의 왕래가 있었고, 어느 모기업의 별장이 있었다고도 한다. 소나무 숲이 좋아 백로와 왜가리의 집단서식지였으나 언제부턴가 민물가마우지가 점령하였다. 가마우지는 먹이를 통째로 먹기 때문에 혀가 필요 없어 작게 퇴화되었다. 콧구멍이 없고 위턱 깊숙이 내비공(內鼻孔)이 있어 물에서 자맥질하며 고기 잡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민물가마우지로 황폐해 지는 족자섬>


   족자섬을 지나 다산(茶山)의 숨결이 묻어 있는 다산생태공원 쪽으로 가까워진다. 다산생태공원 안에는 다산의 생가와 묘역, 실학박물관 등이 팔당호 주변에 있어서 다산의 실학사상이 넘치는 곳이다. 팔당댐 가까이서 다시 항로를 바꾸어 수자원공사(팔당관리단) 광역상수도 취수장 앞으로 하여 광주시 남종면 우천리에 위치한 소내섬을 지난다. 다산이 살았던 마재마을과 마주보며 걸어 다녔던 소내섬이 지금은 물이 잠겨 섬이 되었다.

<팔당댐과 예봉산>

<수자원공사 광역상수도 취수장>


   남한강 쪽으로 방향을 틀어 상류로 올라가다가 큰섬을 돌아 두물머리 쪽으로 회항한다. 신양수대교 주변으로 조성된 세미원이 가깝게 보이고 두물머리 느티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1시간여의 팔당호 선상 환경생태체험을 끝내고, 두물머리 물래길을 따라 양수리환경생태공원 앞으로 하여 양수리 자전거다리(구 양수철교)를 건너 운길산역에서 오늘을 정리한다.

<자전거전용 양수교-구 양수철교>

<운길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