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룡소 찾아가는 길
검룡소 찾아가는 길
(2017년 7월 15일)
瓦也 정유순
알람시간보다 일찍 눈을 떴는데 창문을 두들기는 빗방울의 기세는 어마어마하다. 이런 날 산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며 길 나설 준비를 한다. 다행이 집을 나설 때는 많이 잦아들어 몇 방울 떨어지더니 버스가 목적지로 떠날 때는 다행이 그 마저 멈춘다. 그러나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금방 쏟아 부을 기세다. 천등산휴게소를 지나자 흰 구름은 깊은 산골짜기를 휘젓는다. 더욱이 장마철 날씨라 언제 비가 올지 예측이 힘들다.
<금대봉-대덕산 탐방 안내도-네이버캡쳐>
남한에서 제일 높다는 고개 백두대간두문동재에 도착하자 비가 올 확률은 점점 적어진다. 지금 가고자 하는 곳은 1993년 4월 26일 환경부로부터 4,200㎡(약126만평)의 면적이 ‘금대봉∙대덕산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하루 출입인원을 300명으로 제한하고 있어,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하여야 한다. 2016년 8월 태백산이 도립공원에서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어 업무가 태백시에서 국립공원으로 이관된 이후에는 1인 10명까지 예약이 가능하다.
<백두대간 두문동재 표지석>
백두대간두문동재(1268m)는 ‘싸리재’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있다. 두문동재는 정선 땅의 두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싸리재는 정선의 고한에서 태백의 싸리마을로 가는 고개라 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가는 고개 정상에는 태고적 마고할멈이 앞치마에 돌을 한가득 담아와 쏟아 놓았다는 마고할멈 탑이 있고, 그 옆에는 백두대간두문동재 표지석과 태백산국립공원 탐방안내센터가 있다.
<금대봉 입구>
탐방지원센터에서 배부하는 출입허가 표찰을 목에 걸고 들어가는 숲속은 어둠의 터널 같지만 푸른색이 우러나는 환상의 빛이다. 들어가는 초입부터 하얀 꿩의다리꽃이 인사한다. 그러나 야생화 쪽은 원래 문외한이라 반갑게 맞이하는 꿩의다리도 함께 길을 걷는 도반이 알려줘서 겨우 안다. 누가 자세히 알려주어도 ‘눈 감으면 모르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꽃길을 걷는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최대의 행복이 아니던가.
<꿩의다리 꽃>
전에 나무를 심어 조림(造林)한 흔적도 있지만 주목(朱木)을 비롯한 원시림 숲길과 비가 와서 물이 간혹 고인 흙길을 원래 더딘 걸음으로 40여분 넘게 걸어서 당도한 곳은 금대봉이다. 금대봉(金臺峰, 1418m)은 강원도 태백시와 정선군 및 삼척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용소, 제당굼샘을 안고 있는 의미 깊은 산으로 금대라는 말은 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고, 또한 금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참고로 탐방안내센터에서 남쪽으로 백두대간을 따라 가면 은대봉(銀臺峰, 1442m)이 나온다.
<금대봉 표지석-네이버캡쳐>
<탐방예약제 안내센터>
금대봉에서 우측으로 가면 매봉산으로 가는 백두대간 길이지만, 좌측으로 꺾어 대덕산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빨간색 하늘나리는 길 양쪽으로 늘어서서 도열한다. 하늘나리는 다년생 초본으로 해발 800m이상 되는 높은 산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며 꽃이 하늘을 향해 피기 때문에 ‘하늘나리’라고 한다. 꽃이 작고 산뜻한 느낌을 주어 꽃꽂이 등 절화형(切花用)으로 이용될 기대가 크다.
<하늘말나리>
<하늘말나리>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고목나무샘이 나온다. 고목나무샘은 흙벽에서 솟아나 흐르다가 석회암층으로 들어가 다시 검룡소로 흘러나와 한강을 이룬다고 한다. 비록 보잘 것 없는 물구멍이지만 어떻게 보면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 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솟아 나오는 물의 양 등이 정확하지 않아 실질적인 한강발원지라고 주장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고목나무 샘>
길옆으로는 동자꽃이 얼굴을 붉힌다. 동자꽃은 석죽과 여러해살이풀로 고산지대의 깊은 골짜기 또는 표고 1500m 안팎의 산 정상 초원지에서 잘 자라며, 꽃은 6∼7월에 주홍색으로 핀다고 한다. 꽃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고도 한다.
<동자꽃>
그러나 동자꽃은 동자승의 슬픈 전설을 안고 있다. “깊은 산속 암자에 스님과 동자승이 살았는데, 겨울 준비를 위해 동자승 홀로 남겨두고 마을로 탁발을 나간다. 그날따라 폭설이 내려 길이 뚫릴 때까지 기다리다 수 일 만에 암자로 돌아와 보니 동자승은 마을 쪽을 향해 앉은 채로 죽고 말았다. 이듬해 봄이 되자 양지바른 곳에 묻힌 동자승의 무덤에서는 풀이 자라 마을을 향해 꽃이 피었는데” 이 꽃이 바로 동자꽃이다.
<동자꽃>
쉼터를 지나 분주령으로 발을 옮긴다. 분주령(1080m)으로 향하는 길은 숲속을 산책하는 정겨운 길이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낙엽송은 피톤치드를 내뿜으며 몸속 구석구석까지 정화시켜 주는 것만 같다. 분주령은 인제의 곰배령과 함께 대표적인 국내 야생화 군락지로 알려져 있지만 분주령을 알려주는 표지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노루오줌이 대신 숲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인사를 한다.
<노루오줌>
<다래>
가파른 오르막길이 대덕산 정상으로 가는 길임을 알려준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야생화들이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꽃망울을 터트린다. 대덕산(1307m)정상은 큰 나무가 없는 야생화 밭이 늘어선 동산 같다. 다른 많은 야생화들이 공존을 하지만 유독 일월비비추가 우점종이다. 일월비비추는 우리나라 각지의 비옥도가 높은 산의 반그늘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으로 줄기 끝에 하나의 꽃망울이 맺혔다가 망울이 벌어지면 5∼6개의 꽃이 나온다.
<일월비비추 꽃망울>
<일월비비추-군락지>
<일월비비추의 만개>
멀리 백두대간 능선이 구름과 맞닿아 선을 그리고, 바람 길에는 풍력발전기 바람개비가 힘차게 돌아간다. 땅에는 양치류식물인 관중이 키를 쑤욱 키운다. 관중은 우리나라 산지에서 잘 자라는 식물로 생육환경은 습기가 많고 토양이 비옥한 곳에서 자란다. 잎은 길이가 1m 내외로 뿌리에서 바로 나오고, 키도 1m내외이다. 뿌리를 포함한 전초는 약용으로 쓰인다.
<대덕산 정상>
<백두대간과 풍력발전기>
<양치식물 관중>
대덕산 정상 주변 야생화 밭에는 당귀도 가끔 고개를 내민다. 당귀(當歸)는 마땅히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아 ‘당귀(當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중국에서 부인들이 전쟁에 나가는 남편을 위해서 품속에 당귀를 넣어줬다는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기력이 쇠해졌을 때 당귀를 먹으면 원기회복(元氣回復)이 되어 돌아 올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당귀는 혈을 조절하는 약이므로 여인의 중요한 약이라고 한다.
<당귀>
<당귀>
야생화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서둘러 검룡소 쪽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이내 숲은 터널을 이룬다. 분주령에서 내려왔으면 아주 가까운 거리였지만, 대덕산으로 힘들게 더 멀리 돌아왔기에 야생화 천국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에 소개된 야생화들은 어느 특정지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두문동재를 출발하여 금대봉과 대덕산을 경유하여 검룡소까지 내려오는 동안 거의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대덕산에서 검룡소로 가는 길>
검룡소(儉龍沼)는 한강의 발원지이다. 금대봉 기슭에 있는 제당굼샘과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터굼에서 솟아나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이곳에서 다시 솟아난다. 물이 솟는 입구는 약2㎡이며 깊이는 알 수 없다. 일 년 내내 9℃의 수온으로 하루 2,000∼3,000톤씩 석회암반을 뚫고 솟아 20여m의 폭포를 이루며 쏟아진다. 소(沼)의 이름은 물이 솟아나는 굴속에 검룡이 살았다고 해서 검룡소로 붙여졌다. 일설에는 조선의 나라를 세운 국조(國祖) 단군왕검(檀君王儉)의 검(儉)자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검룡소>
<검룡소 앞 폭포>
1987년 국립지리원에 의해 최장 발원지로 공식 인정되었다. 이전에는 오대산(五臺山, 1563m)에 있는 우통수(于筒水)를 한강의 발원지로 했었다. 그러나 검룡소가 발견되면서 다툼을 벌이다가 태백산과 오대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합쳐지는 정선군(旌善郡) 나전(羅田)을 기점으로 실측한 결과 오대산 우통수까지는 62㎞, 금대봉 검룡소까지는 94㎞로 거리가 더 먼 검룡소를 한강의 발원지로 봐야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여 공식화하였다.
<한강발원지 발원문>
“그곳에 서있노라면 모든 세상의 욕심은 사라지고 숙연해 진다. 어떤 미움도, 내 마음의 오욕의 찌꺼기도 다 끄집어내어 깨끗하게 씻어 준다. 태초의 속삭임이 기쁜 눈물이 되어 가슴으로 스며든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마저 잠든 영혼을 일깨운다. 우리민족이 살아온 삶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살아 움직인다.”<정유순의 ‘보석보다 더 귀한 물’ 중에서>
가끔 검룡소에 올 때마다 읊어보는 나의 독백(獨白)이다.
<한강발원지-표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