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몽골(Mongolia)에 다녀와서(3 完)

와야 세상걷기 2017. 7. 7. 18:44

몽골(Mongolia)에 다녀와서(3 )

(201762872)

瓦也 정유순

   바양고비를 출발하여 점심때가 되어 버스그늘이라도 만들어 볼 양 잔머리를 굴렸지만 울란바타르로 가는 길의 초원에는 한 뼘의 그림자도 허용되지 않는다. 정오를 전후하여 태양은 바로 머리 위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버스 좌석에 앉아 도시락을 까는데 그늘 없는 뙤약볕 보다는 백배 낫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밥알 한 톨, 국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목구멍으로 잘도 집어 넘긴다.

<그늘 하나 없는 초원>

   “오래 걸으면 집이 가까워지는 것처럼 오래 달려오니까 울란바타르에 들어 선 것 같다. 먼저 몽골의 주 전력생산 시설인 화력발전소의 높은 굴뚝이 보인다. 울란바타르는 전력뿐만 아니라 난방도 중앙난방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화력발전으로 나오는 더운 물을 각 가정에 공급한다는 것이다. 그라고 보니 첫날과 오늘 마지막 잠을 자야 하는 호텔의 온수도 화력발전소에서 공급되는 온수가 아닌 가 생각해 본다.

<화력발전소>


   몽골의 3대 하천의 하나이며 울란바토르를 가로지르는 톨강(Tuul River)이 차창너머로 보인다. 주변에는 숲이 우거져 있고, 숲 아래로는 주말을 맞은 시민들이 천렵(川獵)을 나왔는지 가족단위로 휴식을 취하는 장면도 간간이 목격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톨강도 우리의 한강처럼 상수원으로 보호되는 식수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몽골올레 2코스 트레킹 때 보았던 그 강과 연결되었다

<톨강>

<톨강변의 숲>


   버스에서 내려 첫 번째 들른 곳은 이태준기념공원이다. 이태준(李泰俊, 18831921)은 경남 함안 출신으로 독립지사이자 의사로서 한국뿐만 아니라 몽골근대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몽골사회에서 하늘이 내린 의사로 존경받았으며 몽골국왕(Bogd Khan)의 주치의로 활동하여 제1급 훈장인 에르데니 인 오치르(금강석이란 뜻)’를 수여 받았다. 그리고 이태준은 의열단원으로서 일제 타도를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나, 1921년 일제와 연결된 백계 러시아군에 의해 울란바타르에서 살해되었다.

<이태준선생 기념공워>


   이태준은 그동안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1980년 건국공로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우리 정부에 의해 수여되었으나 일반국민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었다. 이태준이 주목 받게 된 것은 19903월 한몽 수교 이후 모교인 연세대학교와 뜻 있는 분들의 노력으로 20007월 이곳에 기념비와 가묘가 세워졌고, 20017월에는 기념공원이 준공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몽 친선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기념공원 내의 이태준선생의 묘>


   이태준기념공원에서 계단을 타고 한참을 올라가면 울란바타르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이승 승전기념탑(Zaisan Memorial)이 있다. 자이승 승전기념탑은 소련과 몽골군이 연합하여 일본군대를 1939년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과 희생된 무명용사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승전기념탑을 세운 곳이다. 울란바타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시내 전역을 관망 할 수 있는 곳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자이승 승전기념탑 원경>

<자이승 승전기념탑>


   승전기념탑 아래에는 한국조계종에서 조성한 공원에는 금동불상이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사바세계를 굽어본다. 대로변 광장의 분수대는 물보라가 흩어지며 무지개를 연출하는데, 분수대 마당에는 몽골의 젊은이들이 모여 활력이 넘치는 몽골의 내일을 보여주는 것 같다.

<몽골의 금동불상>

<무지개 분수>


   울란바타르 중심부에는 수흐바타르 광장(Suhbatar Square)이 있다. 수흐바타르는 19217월 중국으로부터 몽골의 독립을 선언한 혁명의 영웅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몽골정부와 국회의사당의 청사가 있고, 울란바타르시 청사와 우체국 건물, 오페라하우스 등이 광장주변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부청사 중앙에는 칭기즈칸의 동상이 앉아 있다. 그래서 지금은 명칭도 칭기즈칸 광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몽골정부청사 및 국회의사당>

<정부청사의 칭기스칸 상>

<수흐바타르 동상>

<울란바타르 시청>

<오페라하우스>


   오늘은 울란바타르를 둘러싸고 있는 복드칸산맥에 있는 산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몽골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체체궁산(2265)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울란바타르 시내를 빠져나와 좁은 도로로 1시간 이상을 버스로 이동한 후 도착한 곳은 KOICA안내판이 있는 만조시르(Manzushir) 수도원이 있었던 자리이다. 700여 년 전 몽골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고려의 후손들이 지금은 KOICA(한국국제협력단)를 통해 이곳까지 손길이 뻗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뿌듯하다.

<KOICA 안내판>


   만조지르수도원은 1733년에 20개의 사원과 300명 이상의 승려들이 사는 몽골에서 가장 큰 수도원이었으며, 종교의식은 승려 1,000명 이상이 모여 함께 했다고 한다. 1930년대 들어선 공산당 정부는 수도원의 모든 사원을 파괴하였으며, 불교 경전 등 가치 있는 유물은 몽골국립도서관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1990년 민주혁명 이후 사원은 재건되고 있으며, 1988년부터는 국가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만조지르수도원 터>


   삼나무 숲이 우거진 초입에서 도시락을 배정 받고 만조지르수도원 터의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올라간다. 잔디가 깔린듯한 초원의 수도원 터에는 사람얼굴을 한 돌기둥과 지석들이 깔려 있고, 우리의 부도 같은 하얀 탑이 위부분과 가슴부분에 황금장식을 하고 있다. 이정표에는 체체궁(Tsetsee gun)산까지 가는 거리를 6로 표시 하고 있으며 한쪽으로는 관광객을 맞이할 게르촌도 만들어져 있다.

<수도원의 탑>

<체체궁 이정표>

<수도원 터와 게르촌>


   자갈이 깔린 걷기 불편한 길도 가끔 있으나 정상으로 가는 길은 대부분 흙을 밟고 갈 수 있는 포근한 길이다. 기둥을 세운 대문 같은 바위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무슨 전설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나 바위에 대한 설명은 없어 눈으로만 즐기며 지나친다. 어떤 때는 숲 사이로 난 길을 찾기가 힘들 것 같으나 쭉쭉 뻗은 나무 기둥에 1에서부터 65까지 번호를 붙여놓아서 번호만 찾으면 길도 찾을 수 있다.

<대문 같은 바위>

<나무에 표시된 숫자>


   중간 쯤 올라가면 잣나무들이 줄을 선다. 잣을 좋아하는 청설모들도 예고 없이 찾아온 이방인들을 보고 놀라 줄행랑치기 바쁘다. 어느 지점에서는 고사목으로 만들어진 움막 같은 무더기도 나온다. 안에는 사람이 왔다간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옆에는 뿌리 채 뽑힌 나무가 누워 있는데, 마치 공작이 날개를 활짝 핀 형상이다. 뿌리가 땅속 깊숙이 내리지 못하고 평면으로 넓게 퍼진 것으로, 이는 나무들이 암반 등의 이유로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다는 이유 같다.

<고사목 움막>

<고사목의 뿌리>


   올라갈수록 나무의 키가 낮아지는 것으로 보아 정상이 가까워지는 가 보다. 습지처럼 질퍽한 길도 나오고, 목초가 발달된 초원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수를 놓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 멀리 체체궁산 정상이 보인다. 비단을 둘둘 말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같은 바위가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박들에게 항로를 알려주는 등대 같다.

<정상 부근의 잣나무>

<정상의 등대 같은 바위>


   그리고 그 뒤에는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핀 자세의 독수리 바위가 신령한 모습으로 체체궁산 정상을 장식한다. 독수리바위 앞에는 몽골의 서낭당 같은 어워에 돌들이 쌓여 있고 형형색색의 천들이 놓여 있다. 이곳을 찾는 몽골사람들이 올라와서 간절하게 기도드리며 치성을 올린 흔적들이다. 독수리바위 뒤로 돌아서면 울란바타르 시내가 멀리 보인다.

<독수리바위를 배경으로>

<독수리바위와 어워>

<제사 때 쓰인 것 같은 돌>


  올라갈 때도 보았지만 내려올 때도 보인 예쁜 야생화들에게는 이름을 몰라 제대로 불러보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대신 나태주시인의 <풀꽃>으로 대신한다. 곳곳에 지천으로 핀 야생화는 몽골을 머릿속에 잡아두는 단단한 끈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체체궁산의 야생화들>


   구름 낀 날씨라 산행하기가 무척 좋은 날씨였다. 일찍 오른 분들은 체체궁 정상에서 이미 점심을 끝냈는데, 해찰하며 늦게 올라온 사람들은 점심을 하기 위해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우래 같은 천둥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쏟아진다. 빗물에 밥 말아먹는 경험을 그 누가 다시 하랴∼∼ 추억이 없는 여행은 낭비라고 했거늘 하늘은 아주 큰 추억을 선물해 준다. 비는 내려오는 도중에 그쳤고, 출발했던 지점으로 되돌아와 펼쳐진 초원은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다.

<체체궁산의 초원>


   다시 울란바타르 시내로 돌아와 몽골민속전통공연장으로 향한다. 이 공연은 예매가 허용되지 않고 공연장 앞에서 선착순 매표를 하여 입장하는 곳이다. 공연 40여분 전에 도착했으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공연은 몽골의 신화와 전설을 각색하여 만든 것 같으나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배우들의 공연과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청아한 목소리, 몸속 깊숙이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한 목소리는 영혼을 깨우는 신의 목소리 같다. 한 시간여의 공연을 관람하고 북한에서 운영하는 평양식당에서 냉면으로 몽골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한국과 몽골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본다.




<민속공연 일부>


   한때는 세계를 정복하고 중국의 중원 땅에 원나라를 세웠으나 명나라에 밀리고 청나라에 복속되었다가 1911년 중국 손문이 주도한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외몽골지역에서 독립을 쟁취한다. 그리고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1920년에는 몽골 인민혁명당을 결성하여 러시아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공산국가가 되었다.

<몽골국기-네이버캡쳐>


   공산정권은 칭기즈칸을 제국주의자 및 전쟁광등으로 낙인찍어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하는 듯 했으나, 1990년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칭기즈칸의 복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지금은 몽골이 칭기즈칸으로 시작해 칭기즈칸으로 끝나는 몽골이 되어 제2의 칭기즈칸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북한과는 1948년에 국교가 수립되었으나 대한민국과는 19903월에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아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태극기-네이버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