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Mongolia)에 다녀와서(2)
몽골(Mongolia)에 다녀와서(2)
(2017년 6월 28∼7월 2일)
瓦也 정유순
테롤지국립공원 내에 있는 허스하드 캠프촌 게르의 아침은 조용히 밝아온다. 조반을 마치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홀로 캠프촌 뒷산 초원으로 산책에 나선다. 입구에는 마분(馬糞) 두 무더기가 쌓여 있다. 우리는 옛날 시골에서 소나 말 등의 똥을 주워 모아 말려서 겨울에 연료로 사용한 경험이 있으나, 이곳에 쌓아 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한 발짝만 움직여도 만나는 게 이들 동물들의 배설물인데 말이다.
<마분(馬糞)>
완만하게 경사진 초원에는 나무 대신 이름 모르는 야생화들이 자리를 메운다. 언덕 정상에 있는 바위들이 지나가는 바람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 같다. 구름에 가린 햇살은 길게 뻗어 테롤지공원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초식동물들의 배설물 냄새가 초원에 쪄들었어도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는 자연의 아침은 언제나 신선하다.
<기암괴석>
<기암괴석>
다시 여장을 꾸려 테롤지공원 안의 거북바위를 보기 위해 이동한다. 아직도 개발 중인지 도로 곳곳이 ‘공사중’이다. 더욱이 거북바위 근처의 산 앞에는 산을 가리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곳에서는 필요에 의해 당연히 건물이 들어서야 하는 이유가 있겠으나 이방인의 눈에 보기에는 한마디로 ‘그게 아닌데∼∼’이다. 자연자산은 어느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전 인류의 공동자산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자연경관을 가리는 건물 공사중>
거북바위(멜키하드)는 아주 오랜 세월동안 풍화작용에 의해서 형성된 자연이 빚은 조각품으로 테롤지국립공원의 명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거북형상을 한 바위는 “장수(長壽)의 상징이자 상서로운 동물로 용(龍), 기린(麒麟), 봉황(鳳凰)과 함께 사령(四靈)”으로 대접했으며, 재복을 가져다주거나 신령한 일이 거북을 통해 일어난다고 믿었었는데, 몽골에서는 어떤 믿음을 주는지 알 수 없다.
<거북바위>
<거북바위>
거북바위 주변으로 펼쳐진 산세들도 만만치 않다. 기암괴석에 둘러싸인 초원에는 관광용 게르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주변의 바위들의 위용이 거북바위 못지않다. 또한 상점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찾아오는 관광객은 꽤 있는 것 같다. 몽골 자연의 특성과 전통에 맞게 개발되어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테롤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기암괴석>
<거북바위 건너편의 게르촌>
바양고비(Bayan Gobi)로 가기 위해 울란바타르로 돌아오는 길에 난리 중에 승려 100여 명이 숨어 지냈다는 바위를 둘러본다. 바위 중턱에 정말 사람이 숨어 있을 법한 공간이 나오는데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잠깐 조는 사이 차가 밀린다. 몽골의 수도답게 도로마다 자동차가 넘친다. 울란바타르의 국제학교도 차창너머로 보인다. 시내에서 점심을 하고 대형 마트에 들려 필요한 물건을 사고 오보르항가이 주(州)에 있는 바양고비(Bayan Gobi)로 향한다.
<피난바위>
<피난바위 대피소>
울란바타르에서 바양고비까지는 남서쪽으로 향하는 도로로 280㎞ 거리이며 버스로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도심을 빠져나가자 교통량은 한산해 진다. 도로 좌우로 넓은 초원이 나무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진다. 지평선 끝에 낮은 산들이 울타리처럼 쳐져있지만 갈색초원은 몽골의 가을을 연상시킨다. 중간 중간에 푸른 띠가 형성된 것으로 보아 혹시 밀농사를 대단위로 경작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스치고 지나간다.
<울란바타르 국제학교>
<바양고비 가는 길>
<초원>
땅덩어리가 좁은 우리와는 토지의 개념이 딴 판이겠으나 저 평평한 땅을 초원으로 놔둔다는 게 너무 아깝다. 목축업 외에 다른 부가가치가 많은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리고 장거리를 달리는데도 중간에 주유소만 있지 쉴만한 곳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공중화장실을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변변한 화장실이 없다는 게 흠이다. 남자들이야 눈치 봐가며 적당히 해결할 수 있으나, 중간에 하나 밖에 없는 몽골식 화장실도 여자들은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닌 것 같다. 버스를 세워 놓고 만들어지는 그늘이 유일한 쉼터였다.
<몽골주유소>
<초원지역의 화장실>
<버스그늘>
버스가 2차선 대로를 달리다가 좌측으로 회전하여 샛길로 접어든다. 5시간 넘게 달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다는 느낌이 온다. 초원의 가축들은 우리가 지나가는 지도 모르는지 고개를 땅에 대고 풀 뜯어 먹느라 정신이 없다. 바양고비에 도착하여 숙소(게르) 배정을 받고 여장을 푼다. 그런데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천둥 번개와 폭우가 쏟아져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자가 발전기를 가동하여 전기를 공급 한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목욕물이 시원치 않다.
<초원의 가축>
<바양고비 입구>
<게르>
초저녁에 반달이 떠서 “별빛 쏟아지는 몽골의 밤”을 기대 했으나, 구름이 가려 “별 볼일 없는 밤”이 되었다. 난로를 가동하지 않아 약간 서늘한 밤을 보냈지만 아침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어둠을 뚫고 찾아온다. 캠프촌 밖에는 오늘 우리 일행들을 태울 낙타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망중한을 즐긴다. 오늘은 아침부터 낙타를 타고 사막체험을 하는 날이다.
<반달>
<바양고비의 저녁>
<낙타의 아침>
이곳의 낙타는 몽골낙타라고도 하는 쌍봉낙타이다. 단봉낙타보다 약간 작으며, 등에 2개의 혹이 있다. 발바닥에 있는 둥근 형태의 육잘 덩어리인 척구(蹠球)가 크기 때문에 발바닥 면적이 넓어서 사막을 걸어 다니기에 알맞다고 한다. 코는 자유자재로 열리고 닫히며, 눈이나 귀 둘레의 긴 털은 사막생활에 알맞게 발달되어 있다. 여름털은 턱·어깨·혹·뒷다리 부분을 빼고 짧으며, 겨울털은 길고 굵으며 색이 어두워진다.
<쌍봉낙타>
단봉낙타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힘이 강하므로 짐을 운반하는 데 이용된다. 등에 있는 혹 속의 지방을 분해하여 영양분을 섭취하기 때문에 며칠 동안 먹이를 먹지 않아도 활동할 수 있다. 쌍봉낙타는 거의 가축화 되어 사육되고 있으며,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지에 야생종이 분포하고 있으나 수가 적어 국제보호동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미 1,000년 전에 가축화 되었으며, ‘사막의 배’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쌍봉낙타>
낙타는 말보다 순하다고 한다. 낙타 등에 타고 일어설 때 뒷발이 먼저 일어서고, 앉을 때는 앞발을 먼저 구부리기 때문에 떨어질 위험이 있으며, 걸어갈 때는 앞의 혹을 살짝 잡으면 안전하다고 설명한다. 길라잡이의 안내에 따라 낙타를 타고 사막의 길을 재촉한다. 뚜벅뚜벅 걷는 모습이 어쩜 내 걸음걸이와 똑 같을까? 모래언덕에 올라서서 여인의 둔부처럼 부드러운 모래곡선을 어루만지듯 조심스럽게 제자리로 돌아온다.
<낙타타고>
이번에는 버스로 이동하여 모래언덕으로 간다. 바람이 만든 급경사진 모래언덕은 썰매를 타기에 제격이다. 남들이 가볍게 타길 레 한번 도전해 보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처음 내려가는 순간은 황홀 그 자체였으나 중간지점부터는 무거운 체중에 모래가 패여 온 몸을 뒤덮는다. 안경을 쓰지 않아 모래가 눈으로 들어갔고, 입을 벌려 입으로도 들어갔다. 분가루만큼 고운 모래는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모래썰매>
바양고비에서 일정을 마치고 나오면서 풀을 뜯는 양떼를 만나 잠시 희롱해 본다. 한 걸음 다가가면 양들은 열 걸음 뒤로 물러선다. 친근하게 대해주려 했는데도 곁을 내 주지 않고 더 멀어진다. 어제 왔던 그 길을 따라 다시 울란바타르로 이동한다. 바양고비는 고비사막의 축소판이라고들 하지만 아직은 완벽한 사막이 아니라 준사막지역이다. 문제는 사막화가 기후온난화와 더불어 가속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방목현장>
과거 공산주의국가였던 몽골은 목초지 등 토지는 국가가 소유하고, 개인은 토지를 이용할 권리만 갖는다고 한다. 가축을 소유한 개인들은 가축의 수를 늘리는데 만 신경을 쓰고, 목초지의 황폐화나 사막화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몽골에서도 사막화로 인한 삶의 터전을 잃은 ‘환경난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방목현장>
한국에서도 몽골의 사막화와 황사 등 미세먼지를 방지하기 위해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몽골지역에 나무심기 등 산림녹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아마 어제와 오늘 왕복으로 달리는 이 도로의 주변 어딘 가에도 숲을 가꾸는 지역이 있을 법하다. 한국의 지리산 바래봉과 황매산의 철쭉이 왜 군락을 이루었는지 살펴보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듯하다. 그 곳은 고원(高原) 양 목장지대였다.
<몽골초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