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산 마루에는 도솔천이 있고
선운산 마루에는 도솔천이 있고
(2017년 3월 11일)
瓦也 정유순
선운사 입구에서 심원면 곰소만으로 인천강이 흐른다. 고창군 고수면 칠성마을 맹매기샘에서 발원하여 31㎞를 흐르는 인천강은 풍천장어 서식지이다. 풍천은 인천강이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10㎞가 넘는 구간을 말하는데, 장어가 짠물에 적응하는 아주 좋은 환경을 갖춘 기수역(汽水域)이 있다. 특히 바닷물의 염도가 높아 장어의 맛이 쫄깃하고 풍부한 갯벌의 영양과 담수의 교차로 장어의 서식지로서의 최적조건이라고 한다.
<인천강 하류>
기수역은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수역을 말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강들은 방조제나 하구둑 또는 제방 등으로 바닷물의 진입을 막아버렸다. 기수역의 경제적 생태적 가치는 경작지 환경의 250배에 달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하여 가장 보호 받아야할 자연환경이다. 또한 해수와 담수의 여과장치로서의 역할이 매우 크다. 그래서 ‘인천강’은 풍천장어의 산지였다. 지금은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실뱀장어 채취를 위해 그물을 쳐 놓았다.
<인천강 실뱀장어 그물-2014. 4촬영>
“호미 한 자루면 바지락 캐서 자식들 다 키우고 대학까지 보낸다”던 아낙은 보이지 않고 갯벌 쪽에 둑을 쌓아 만든 축제식양어장들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풍천장어’의 고장답게 ‘풍천장어 판매’ 간판도 자주 눈에 띤다. 심원면 소재지를 거쳐 연화리 선운산 입구에 도착한다. 실개천 옆의 팽나무 한 그루는 봄을 부른다. 입구에서 배낭을 다시 점검하고 선운산 숲속으로 몸을 숨긴다.
<심원면 연화리 팽나무>
선운산(禪雲山, 336m)은 본래 도솔산(兜率山)이었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禪雲寺)가 있어서 선운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선운(禪雲)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兜率)이란 “미륵불(彌勒佛)이 있는 도솔천궁(兜率天宮)”을 가리킨다. 또한 불교에서는 세계의 중심에 수미산(須彌山)이 있고, 그 산의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있는 욕계(欲界) 6천 중 제4천인 도솔천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유순은 고대 인도의 거리의 단위로, 실제 거리는 명확하지 않지만 보통 약 8㎞로 간주한다.
<돌무더기 탑>
소리재 쪽으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힌다. 한 고개 올라서니 누군가가 정성스레 쌓아 놓은 돌무더기 탑이 길 방향을 잡아준다. 그리고 아직 잎이 나오지 않은 나무 가지 사이로 견치봉(일명 개이빨산, 346m)이 잇속을 드러낸다. 화살대로 많이 사용했던 신우대 터널을 지나 낙조대와 갈리지는 소리재에 도착한다. 우선 바로 밑의 용문굴에서 오전을 마무리 한다.
<개이빨산>
<신우대 터널>
<용문굴>
다시 소리재로 올라와 낙조대로 향한다. 점심으로 배가 불러서 그런지 산을 오르기가 좀 팍팍해진다. 선운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낙조대는 화산암의 일부인 유문암(流紋岩)으로 이루어 졌다. 유문암은 주변의 화산력(火山礫) 응회암(凝灰岩)보다 더 단단하고 치밀하여 풍화에 강한 특성을 보이기 때문에 잘게 부서지기보다는 큰 절리(節理)로 쪼개지는 경우가 많아 가파른 수직 암석 절벽의 수려한 경관을 보인다.
<낙조대>
배맨바위로 가는 깊은 계곡 위로 구름다리가 놓여 있어 멀리서 눈으로만 구경하고, 낙조대에서 가까이 있는 천마봉으로 길을 잡는다. 천마봉도 낙조대와 마찬가지로 유문암으로 이루어진 수직절벽의 봉우리이다. 정상에 올라서니 바로 아래에는 도솔암과 마애불이 가까이 보이고 멀리 선운사도 시야에 확 들어오며, 곰소만 바다건너 변산반도가 아련하다.
<구름다리>
<천마봉>
<곰소만>
도솔암으로 내려오면 거대한 암벽에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크다는 마애미륵불이 있다. 고려 때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 이 불상은 연꽃무늬를 새긴 계단모양의 받침돌 위에 긴 손가락과 우뚝한 코, 두툼한 입술 그리고 세상을 굽어보며 중생들의 모든 고뇌를 보듬는 듯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애미륵불>
명치끝에는 검단선사가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감실(龕室)이 있는데, 조선 말 전라도관찰사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고 전한다. 이 비결록을 19세기 말 동학접주 손화중이 가져갔다고 한다.
<선운산 협곡>
석가탄신일을 맞이하기 위해 벌써 연등을 달아놓은 도솔암 쪽에는 윤장대(輪藏臺)가 보인다. 윤장대는 보통 팔각형으로 되어 있고 내부에 불경을 넣어두어 팽이처럼 돌릴 수 있다. 중국 양(梁)나라 때 선혜대사가 처음 만들었다고 하며, 글자를 모르거나 불경을 읽을 시간이 없는 신도들을 위하여 만든 불구(佛具)로 이것을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는 것과 같은 의미란다.
<윤장대>
도솔암 옆으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선운사도솔암내원궁’이 있다. 천인암이라는 기암절벽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사이에 자리한 내원궁은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상도솔암’이라고도 부른다. 이 불상은 고려후기의 불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고 한다. 그러나 내원궁에는 원래 미륵보살이 모셔져 있어야 하는데, 중생구제를 위하여 하생하셨으니 빈 집을 지장보살이 지키고 있다는 것이란다.
<도솔천 내원궁>
<도솔암 전경>
조금 더 밑으로 내려오니 수령600년 정도로 추정 되는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높이23m의 이 나무는 3개의 줄기로 그 위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부채 살처럼 퍼져 있는데 이곳의 옛 지명을 따 ‘장사송(長沙松)’이라고 하는데 바로 옆에 진흥굴이 있어 일명 ‘진흥송’이라고도 한다. 장사송은 천연기념물 제354호이다.
<장사송>
장사송 바로 옆에는 진흥굴이 있다. 이 굴은 신라 24대왕인 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버리고 머물렀다고 하여 진흥굴이라 부른다. 이곳의 암석은 응회암(凝灰岩)으로 풍화작용을 받아 갈라진 틈(절리)이 커지면서 천정과 옆면의 암석표면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진 박리작용(剝離作用)에 의해 형성된 자연동굴인데, 사람의 손길이 가해져 지금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동굴 내부에는 누가 기도를 드렸는지 촛불이 켜져 있다.
<진흥굴>
<진흥굴 내부>
숲 사이로 난 길은 이미 봄이고, 시냇물은 봄소식을 띠우며 졸졸졸 흘러 계곡을 따라 선운사에 도착한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선사(黔丹禪師)에 의해 창건된 천 년 고찰이다. 대웅보전 뒤에 있는 동백나무 군락지(천연기념물 제184호)는 우리나라 자생 북방한계선으로 봄에 핀다하여 춘백이라고도 한다.
<선운사 대웅보전>
미당 서정주는 “선운사 동구”라는 시에서 “선운사 고랑으로/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은 아직 일러/피지 않았고/막걸리 집 여자의/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라며 활짝핀 동백꽃을 보지 못함을 달랬다. 그리고 늦여름에 꽃 잔치를 벌이는 선홍빛 꽃무릇(일명 상사화)과 가을의 붉은 단풍으로도 유명하다.
<선운사 동백나무 숲>
시인 최영미도 “선운사에서”라는 시에서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아주 잠깐이더군//그대가 처음/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잊는 것 또한 그렇게/순간이면 좋겠네//멀리서 웃는 그대여/산 넘어 가는 그대여//꽃이/지는 건 쉬워도/잊는 건 한참이더군/영영 한참이더군”하며 ‘꽃을 통해 깨닫게 되는 만남과 이별의 아픔’을 노래했다.<정유순의 세상걷기(2017. 3) 중에서, 도서출판 박물관>
<선운사 동백 꽃>
선운사에서 주차장으로 걸어 나오는데, 선운사 입구 시냇가에는 바위에 달라붙어 자라는 천연기념물(367호) 송악이 있다. 이 송악은 가슴높이의 줄기둘레가 80㎝에 이르고 나무의 높이도 약15m나 되는 거목이어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내륙에 자생하고 있는 송악 중에 가장 큰 나무라고 한다. 송악은 원래 따뜻한 섬이나 해변에서 자라는 넝쿨식물로 동해는 울릉도까지, 서해는 인천 앞 바다의 섬들까지 퍼져 있으나 내륙으로는 여기가 최북단이란다.
<송악>
그 옛날 어느 선배가 선운산에 가거든 송악과 장사송을 보고 선운사 뒤뜰에 동백꽃이 붉게 피거든, 그 아래 주막에 들러 풍천장어에 복분자 술을 곁들이고 선운산에서 나는 천연녹차로 입가심을 하면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고 자랑하더니만, 우린 시간에 쫓겨 붉은 동백의 손짓을 뿌리치고 되돌아와 터미널 구석에 앉아 뼈다귀해장국을 안주삼아 소주로 목구멍을 적신다.
<선운산 고릴라(?) 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