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에 돌 던지지 마라
석양에 돌 던지지 마라
瓦也 정유순
섣달그믐이면 어김없이 또 한해가 가고 정월초하루에는 어제 뜬 태양이 동쪽 하늘에서 다시 솟아난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바라보며 새해의 소원을 빌어본다. 그렇게 해마다 반복되는 세월이 몇 해 이였던가! 나이테가 발바닥 각질처럼 쌓이면서 지난날들을 헤아려보니 아! 정말 세월이 살같이 빠르다.
어려서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오는 세월 더디다고 발버둥도 쳐 봤고, 법적으로 성인이 되어도 뭔가 모자라 세월만 가면 저절로 될 것 같은 막연한 희망도 품어 봤지만, 그 조그만 소망들이 이루어지면 또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 다른 것을 찾아 하릴없이 해매이던 날이 얼마였던가.
젊은 날 삶이 힘들고 괴로워 저자거리에서 빨간 입술 아가씨와 막걸리 한 사발로 볼을 비비며 개똥철학을 논하다가 군 입대로 그때의 현실을 탈피하였고, 또 먹고 살길을 찾아 취직을 하긴 했지만 어릴 적 청운의 꿈은 그냥 꿈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힘든 현실을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그 순간만 모면하려는 도망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어서 빨리 오늘만 지났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으로 아무 의미 없는 내일을 맞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세월 안 간다고 깍두기를 안주삼아 독한 소주로 간덩이를 키워 세상을 향해 시비를 걸며 객기를 부리던 때도 있었다.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나서는 어린 아이들 보면서 저놈들이 어서 빨리 커서 독립해야 할 텐데 하면서 죽어라고 월급타서 저축하고 숨 가쁘게 달려 왔어도 그놈들이 다 크고 나니 이제 내 삶을 위해 무엇을 할까 걱정한다. 참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런데 시간이 없다. 새벽을 여는 저 태양을 멀리 있는 무인도에 꽁꽁 묶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왜 나뿐이겠는가.
‘세월호사건’으로 ‘관피아’문제가 대두되자 공직사회는 좀 주춤하긴 하지만 언제부턴가 직장사회에서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정년이전에 퇴직하는 명예퇴직제도가 생겨 조기 퇴직이 유행처럼 번졌다. 처음에는 업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명퇴제도가 도입 되었지만, 나가야 할 사람은 버티고 있고, 있어야 할 사람은 두둑한 명퇴수당을 받고 나가서는 라이벌 회사에 재취업하는 사례가 빈발하여 업무처리 능력과 무관하게 나이를 기준으로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나이순으로 금년에 명퇴해야 할 사람의 명단이 복도통신을 통해 당사자만 모르게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어 결국은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명퇴대상자로 한번 지목되면 조직으로부터 오는 무언의 압력은 보통사람으로서는 버티기 힘들다. 어떤 분은 정년까지 보장하라며 버티다가 대기발령 받아 독방에 안치되어야 했고, 다른 직원들은 그 사람과 식사나 사적으로 만나는 것을 꺼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일부 젊은 후배들은 그에게 응원하기는커녕 그 연세에 후진을 위해서 앞길을 열어 주었으면 하고 자신들의 승진을 기대하며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대 놓고 불평하는 일도 있다. 조직을 위해 좋게 도입된 제도가 변질되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래샴 법칙’이 조직의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직위나 법정정년을 고수하기보다는 떠나가는 선배로써 아름다운 뒤태를 후배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후배들도 당연히 받아들이기 보다는 떠나가는 선배에게 따뜻한 사랑으로 배웅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어차피 때가 되면 떠나가게 되어있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해야 되기 때문이다.
젊은이여! 지금 힘들고 괴롭더라도 석양에 돌 던지지 마라. 인생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인 것을 돌 던진다고 가는 해가 더 빨리 가더냐? 너희들은 인생이 지는 기분을 아는가? 시간이 가면 네 청춘도 저절로 간다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인가. 꼭 맛을 봐야 된장인줄 아는가? 고로 때를 기다리며 인내할 줄도 알아야지…
늙은이여! 젊은이가 어서 가라고 재촉하여도 서러워 마시라. 때가 되면 다 가게 되어있으니, 왕년의 기분을 내려놓는 게 더 어렵고 힘들어도 그냥 빨리 잊어버리시게. 그리고 늙은 그대가 젊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대의 추한 욕심 때문에 젊은 놈이 먼 길로 뺑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주위를 살펴보시게나. 제발…